'사상 첫 법관 탄핵 심판' 막 올라…"재판개입 아닌 의견"
  • 송주원 기자
  • 입력: 2021.03.24 16:59 / 수정: 2021.03.24 16:59
이석태(왼쪽부터), 이미선, 이영진 재판관이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탄핵 심판 변론준비기일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석태(왼쪽부터), 이미선, 이영진 재판관이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탄핵 심판 변론준비기일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회 측 "헌법 가치적 결론 기대"[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탄핵 소추된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 측이 첫 재판에서 "재판 개입이 아닌 의견 제시에 불과했다"고 거듭 밝혔다.

헌재는 24일 오후 2시 소심판정에서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 사건 첫 변론준비기일을 열었다. 변론준비기일은 당사자들이 변론에 앞서 제출할 증거와 변론 방식 등을 정하는 절차다.

임 전 부장판사 측 대리인은 "지난달 28일 임기 만료로 퇴임했기 때문에 탄핵 결정을 할 수 없는 이상 이 사건 심판은 부적법하다. 이미 징계받은 사유로 탄핵 소추되는 것은 헌법상 일사부재리 원칙에도 반한다"라며 심판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일사부재리 원칙이란 판결이 확정된 사건은 다시 공소 제기를 허용하지 않는 원칙이다. 임 전 부장판사는 앞서 일부 재판 개입 혐의로 '견책' 징계를 받았다.

임 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수석 부장판사로 근무하면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 세월호 7시간 명예훼손 사건 △프로야구 선수 약식명령 공판 절차회부 사건 △2015년 쌍용차 집회 관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 체포치상 사건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이날 임 전 부장판사 측은 이 사건 재판 담당 판사에게 의견을 제시한 적 있지만, 수석 부장판사로서 권한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건 아니라고 해명했다.

대리인은 "수석 부장판사로서 보기에 뭔가 적합하지 않아 한 번 더 판단해보면 어떻겠냐, 주변 사람과 얘기해보면 어떻겠냐는 식의 의견을 개진한 것"이라며 "지시하는, 강요하는 의미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는데 탄핵 소추되면서 마치 지시를 한 것처럼 스토리를 만들어놨다"고 설명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가토 다쓰야 사건은 선고문 일부를 미리 받아 '첨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외교부에서 선처를 구하는 공문이 올 것이라며 이를 양형 사유로 밝혀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임 전 부장판사의 형사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이는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통해 요청한 사항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대리인은 우 전 수석과 임 전 차장 사이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선고문에 대한 의견을 전한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야구선수 도박죄 약식명령 공판 절차회부 사건을 두고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크게 다투지 않기로 했다"면서도 "'지시·간섭'이라는 취지는 아니기 때문에 한 번 더 판단해보겠다는 입장이고, 수석부장판사로서 지위 및 권한을 행사한 것처럼 기재된 부분을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민변 변호사 체포치상 사건 역시 "지위를 이용해 판결과 양형 이유 수정을 요구했다는 소추 사실은 사실과 다르다"며 "조금 부적절한 부분이 있는 것 같으니 한 번 더 검토해보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또 변호인은 소추 사실상 임 전 부장판사가 어떤 원칙이나 법률 조항을 위배했는지 행위별로 정리되지 않는 등 소추 사실이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국회 측 대리인은 "저희가 보기에도 탄핵 소추 의견서에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의 어떤 조항을 위반했는지 충분히 개진됐다고 보기 어렵고, 법률가마다 평가가 다를 수도 있다"라며 "각 범죄사실이 법률 조항의 어느 부분을 위배했는지 추가 검토하고, 동일성 범위를 넘지 않는 부분에서 자세한 설명을 올리겠다"라고 답했다.

재판관들은 "사상 최초의 중요한 사건"이라며 "신중하면서도 치밀하게 검토하면서 재판을 하려고 한다. 증거 자료가 정리되는 대로 변론을 열어 바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탄핵 심판 변론 준비기일인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한 방청객이 메모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탄핵 심판 변론 준비기일인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한 방청객이 메모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첫 기일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난 국회 측 대리인 송두환 변호사는 "헌법이 규정하는 아주 귀중한 가치인 사법권 독립이 무엇인지, 사법부 구성원이 사법권을 행사하면서 어떤 행위를 하면 안 되는지 등에 대한 경계선을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법관이 위헌적 행위를 한 경우에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헌재의 신중한 심리를 통해 가장 헌법 가치적인 결론을 내려주길 바라고, 대리인단도 충실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어떤 법률을 위배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에는 "국회 탄핵 신청서에서 맥을 잘 짚고 헌법이나 법률의 어떤 규정을 위배했는지 잘 정리했다고 본다"며 "혹시 일부 수정하거나 추가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기 시작했다. 크게 걱정하실 부분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날 임 전 부장판사 측이 재판 개입 의혹을 놓고 '의견 개진'이라 주장한 것에는 "과연 그런지 근본적 의문을 품고 있다"며 "판사가 업무를 수행하면서 자발적으로 동료나 선배에게 질문한 뒤 독자적으로 판결을 선고했다면 문제 되지 않겠지만, 이 사건의 본질적 성격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앞서 임 전 부장판사는 가토 다쓰야의 명예훼손 사건 재판 등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법원은 임 전 부장판사의 위헌적 행위는 인정하면서도 무죄를 선고했지만, 국회는 지난달 4일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헌재의 첫 변론 준비기일은 애초 지난달 26일이었지만 임 전 부장판사 측이 주심을 맡은 이석태 재판관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장 등 과거 이력을 이유로 기피 신청을 하면서 연기됐다.

헌재가 지난 8일 기피 신청을 기각하면서 재판관 9명 전원이 참여하게 됐다. 임 전 부장판사는 지난달 28일 임기가 끝나 퇴임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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