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우면 이직' LH 사건 '강용석 아나운서 비하' 닮았다
입력: 2021.03.18 05:00 / 수정: 2021.03.18 05:00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비판이 거세지자 아니꼬우면 (LH로) 이직하라는 등의 글을 올린 작성자가 명예훼손·모욕 혐의로 고발당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비판이 거세지자 '아니꼬우면 (LH로) 이직하라'는 등의 글을 올린 작성자가 명예훼손·모욕 혐의로 고발당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해외 플랫폼 범죄 이대로 방치하나' 비판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비판이 거세지자 '아니꼬우면 (LH로) 이직하라'는 등의 글을 올린 작성자가 명예훼손·모욕 혐의로 고발당하면서, 처벌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피해자를 특정하지 못해 무죄 판결이 난 '강용석 아나운서 비하'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주장도 나온다.

17일 경찰은 '블라인드' 앱 운영사인 팀블라인드를 압수수색했다. LH가 블라인드에 회사 명예를 실추시키는 내용의 글을 올린 작성자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했기 때문이다. 이 작성자는 블라인드 게시판에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내부에서는 신경도 안 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는 '어차피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진다',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련다', '꼬우면 니들도 이직하든가' 등의 내용이 적혔다.

블라인드에 가입하려면 소속 회사의 이메일 계정으로 인증을 받기 때문에 작성자는 실제 LH 직원으로 추정된다. LH 측은 "허위사실 기반의 자극적인 글이 게시된 뒤 다수의 언론에 보도되면서 공사의 명예가 현저히 실추됐고, 이로 인해 사태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이 저해됐다"라고 고발 취지를 밝혔다. 사건을 넘겨받은 경남경찰청은 수사에 착수했다.

이 작성자는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처벌 받을 수 있을까. 형법 307조는 공연히 사실 또는 허위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최대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LH와 같은 법인(사람처럼 법적 주체의 지위를 인정받은 결합체) 역시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대법원은 명예훼손죄에 대해 "어떤 특정한 사람 또는 인격을 보유하는 단체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일관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법률가들은 글 내용상 적시된 사실과 이로 인해 명예가 훼손된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워 형사 처벌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검사 출신 A 변호사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A라는 사람이 도둑질했다'처럼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만한 구체적 사실을 특정해야 한다. 이 글은 전반적으로 LH를 조롱하고 있지만, LH에 관한 구체적 사실을 특정해 명예를 훼손한 부분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글 내용 중 '털어 봐야 차명으로 다 해놨다'라는 부분의 경우 사실 적시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남승한 변호사(법률사무소 바로)는 "(LH 측은) 차명으로 투기했다는 부분을 허위 사실 적시로 주장할 텐데 이는 재판에 넘겨 심리할 만한 사안"이라고 봤다. 다만 남 변호사는 "LH 직원 전체를 향한 것인지, 차명 투자한 일부 직원에 대한 사실 적시인지 모호해 피해자 특정이 어렵다"라며 "또 '털어봐야 차명으로 해놨는데 어떻게 찾을 거냐'는 문장을 보면 사실 적시가 아닌 개인의 추측성 글로 판단할 여지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LH가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이라는 점에서 처벌을 피할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은 2011년 판결에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A 변호사는 "국가기관은 업무상 행위에 대한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며 "수사기관에서 적시된 사실·피해자가 특정됐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기더라도 처벌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LH는 정부나 다른 국가기관과 달리 고유의 브랜드 가치가 있기 때문에 형사처벌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LH는 국가·정부와 달리 LH는 일반 사기업처럼 지켜야 할 브랜드 가치가 있고, 개인의 언행으로 그 가치가 충분히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비판이 거세지자 아니꼬우면 (LH로) 이직하라는 등의 글을 올린 작성자가 명예훼손·모욕 혐의로 고발당하면서, 처벌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이새롬 기자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비판이 거세지자 '아니꼬우면 (LH로) 이직하라'는 등의 글을 올린 작성자가 명예훼손·모욕 혐의로 고발당하면서, 처벌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이새롬 기자

LH 측은 "LH 직원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공연히 모욕했다"며 모욕 혐의로도 고발했지만, 모욕 혐의 역시 '피해자 특정'의 벽이 높은 상황이다. 서혜원 변호사(변호사 서혜원법률사무소)는 "모욕 혐의는 피해자가 특정돼야 한다"며 LH 측 주장처럼 모든 국민, 즉 LH에 다니지 않는 국민을 상대로 모욕했다는 사실만으로는 피해자가 특정됐다고 보기 힘들다. 기소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2014년 여성 아나운서를 비하하는 발언 등을 한 혐의로 기소된 강용석 변호사 사건에서 "여성 아나운서 일반을 대상으로 한 발언을 개개인에 대한 모욕으로 인정한다면, 모욕죄 성립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할 우려가 있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했다.

기소와 처벌에 앞서 피의자 색출부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찰이 LH 본사, 블라인드 운영사 '팀블라인드'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지만 블라인드의 독특한 시스템에 발목을 잡힐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블라인드는 소속 회사 이메일로 가입이 이뤄지는데, 가입이 완료되면 이메일 주소는 지워지고 서버에도 저장되지 않는다. 이 서버마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기 때문에 수사를 위해선 국제사법공조가 불가피하다. 수사기관이 협조할 의지가 있을지도 미지수다.

허윤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블라인드뿐만 아니라 해외에 서버가 있는 플랫폼 모두 작성자 파악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국제사법공조를 한다면 승산이 있겠지만, 웬만큼 큰 사건이 아니고서야 사법 공조까지 가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서버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가짜뉴스' 유포 등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데 사실상 수사가 이뤄지지 못하는 건 큰 문제"라며 "수사기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ilraoh@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