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매할 고의 없어…증거 확보 목적" 인정[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마약 거래를 수사 중인 경찰에게 부탁을 받고 마약을 샀다가 마약사범으로 붙잡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4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혐의를 벗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5부(윤강열·박재영·김상철 부장판사)는 전날(11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카자흐스탄 국적의 한인 교포 A 씨의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통역인을 통해 담당 경찰관의 요청을 전달받고 외국인들의 마약 매매 범행에 관한 증거를 확보해 수사기관에 제출하기 위해 소량의 '스파이스'를 매수하고 사진 촬영한 다음 이를 바로 폐기했다"며 "마약류를 매매할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만일 피고인이 개인적 목적으로 마약을 매수했다면, 매수 직전에 매수 예정 사실을 통역인에게 알리고 매수 직후에 사진으로 촬영해 경찰에 전송할 이유가 없다"며 "피고인 소변과 모발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A 씨는 2018년 10월 경찰에 외국인들의 마약 거래 내용을 제보했다. A 씨는 카자흐스탄 현지에서도 마약사범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은 다음 이들의 범행을 경찰에 알리는 '마약 정보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A 씨는 친척이 마약 중독으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이런 활동을 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A 씨의 제보를 접수한 담당 경찰관은 통역인을 통해 "제보만으로는 명확하게 조사할 수 없으니 가능하면 사진과 같은 증거자료를 확보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통역인에게 이런 내용을 전달받은 A 씨는 마약 거래 조직에 잠입해 5만 원을 주고 마약을 샀다. A 씨는 매매 직후 구매한 마약을 사진으로 촬영해 통역인을 거쳐 담당 경찰관에 전송했다. 이후 구매한 마약은 변기에 넣어 버렸다. 경찰은 A 씨의 제보와 구체적 진술 등을 토대로 모두 8명의 마약사범을 붙잡았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마약류 취급자도 아니면서 역시 마약류를 매매했다'라며 A 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은 "피고인이 타인의 범행에 관한 증거 수집 목적으로 스파이스 매매행위를 한 것이라도 수사기관 지시나 위임을 받지 않고 매매 행위에 나아간 이상 범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에 A 씨는 "수사기관 요청으로 마약류 매매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마약을 매수한 것뿐이고, 매수한 마약 사진을 촬영한 다음 이를 폐기했다"며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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