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마친 임성근…'어차피 탄핵은 각하' 장담 못 한다
입력: 2021.03.01 00:00 / 수정: 2021.03.01 00:00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뉴시스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뉴시스

헌법학자들 "법리·상식·사례상 각하 안 된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탄핵 심판이 일단 멈춰섰다. 임 부장판사의 법관 임기 만료를 눈앞에 두고 지정된 변론 준비기일이 임 부장판사 측의 재판관 기피 신청으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실제 임 부장판사가 지난달 28일 임기만료로 퇴임하면서 법관으로서 헌재 심판대에 오를 일은 없게 됐다. 일각에서는 탄핵소추안 가결 때부터 제기된 '각하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헌정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안 통과'의 종착점은 각하라고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왜 '탄핵 열차'에 오르게 됐나

헌법 제64조는 법관이 직무집행 중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임 부장판사는 형사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위헌 행위를 했다는 판단을 피하지는 못 했다.

임 부장판사는 2014년 2월~2016년 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일하면서 법원행정처 요구에 따라 일선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판결에서 사실로 인정된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임 부장판사는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요청을 법원행정처를 통해 전달받아 일선 재판부에 전달했다.

2015년 초 서울중앙지법은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 기사를 썼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을 심리 중이었다. 임 부장판사는 사건 담당 재판장을 자신의 사무실에 불러 '국격을 높여야 하는 아주 중요한 재판이니 기사 내용이 허위라면 그 점을 재판 중에라도 미리 밝혀라'며 재판 진행에 개입했다.

판결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여성 대통령이 어떤 남성을 만났다는 부분은 아주 치명적인 부분이고 국민들도 관심이 많은 사건이니 명확히 정리해달라', '무죄 판결을 선고하더라도 단순히 무죄라고만 끝내지 말라', '비록 무죄이기는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 달라'고 재판장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아예 선고문 일부를 미리 보내 달라고 한 뒤 '첨삭'을 하기도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임 부장판사는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죄를 함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부분을 놓고 "그쪽(청와대)에서 약간 또는 매우 섭섭해할 것"이라며 빼달라고 했다. 이러한 요구 중 일부는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원행정처에 요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외에도 임 부장판사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의 체포치상 사건에 대해 '(판결 중) 양형 이유에 논란이 있을 만한 표현들이 있으니 톤 다운을 검토하라'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야구선수들의 도박 사건을 맡은 판사가 공판 회부 결정을 하자 그 판사를 따로 불러 '다른 판사들 이야기도 들어보라'고 하기도 했다.

임 부장판사의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는 이 일련의 행위를 사실로 판단하며 '위헌적 행위'라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어떤 외압도 없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할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설명이다.

"피고인의 요청은 그 자체로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절차 진행을 유도하는 재판 관여 행위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다."

"피고인의 구술본(선고문) 말미 수정요청, 판결 내용에 대한 언급, 선고기일에 외교부가 선처를 요청한 공문을 보낸 것을 언급해 달라는 요청 및 피고인이 무죄 판결을 선고하면서 다쓰야 행위가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말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그 자체로 계속 중인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재판의 절차 진행에 간섭하는 재판 관여 행위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다." (1심 판결문 중 다쓰야 재판 개입에 관한 부분)

"피고인의 판결문 양형 이유를 수정하라는 취지의 언급은 그 자체로 계속 중인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불가변경력이 있는 판결문 원본의 수정을 요청한 것으로 재판 관여 행위에 해당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위법한 행위다." (1심 판결문 중 민변 체포치상 재판 개입에 관한 부분)

"OOO 판사가 동료 판사들과 상의했다고 했음에도 피고인이 다시 주변 판사들의 의견을 더 들어보고 결정하라는 취지로 언급한 것은 피고인의 발언 동기 내지 의도를 고려했을 때 그 자체로 계속 중인 특정 사건의 절차 진행을 유도하는 재판 관여 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1심 판결문 중 야구선수 도박 사건 개입에 관한 부분)

비록 법리상 이유로 직권남용죄는 무죄 판단을 받았지만, 재판 개입 행위가 사실로 인정되고 위헌적이라는 판시가 나온 만큼 각계에서는 헌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회는 1심 선고 뒤 1년여가 지난 이달 4일 임 부장판사의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제안한 법관(임성근)에 대한 탄핵소추안의 법제사법위원회로의 회부 동의의 건이 부결되고 있다. /남윤호 기자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제안한 '법관(임성근)에 대한 탄핵소추안의 법제사법위원회로의 회부 동의의 건'이 부결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조금 늦어도 본안 판단 가능하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에 임 부장판사 측은 탄핵 소추의 근거가 없다며 반발했다. 임 부장판사가 10년마다 다가오는 법관 재임용 절차에서 재임용을 희망하지 않은 점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파면할 직이 없기 때문에 심판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본안 판단 없이 각하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탄핵안 가결 날짜를 기준으로 약 20여 일 남짓 남은 임기 동안 헌재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했다.

임 부장판사 측이 변론기일을 앞두고 이석태 헌법재판관 기피 신청을 내면서 '현직 법관 임성근'이 헌재 심판대에 오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됐다. 헌재는 애초 지난달 26일 오후 2시 변론 준비기일을 열 예정이었지만, 헌재는 임 부장판사 측이 기피 신청을 낸 다음날(24일) 기일 변경을 통지했다.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기피 신청이 들어올 경우 민사소송법 절차를 준용한다. 민사소송법은 기피 신청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소송 절차를 멈춰야 한다고 규정한다. 탄핵안 심리 본격화는 임 부장판사의 퇴직 뒤에 이뤄지게 됐다. 탄핵안 가결 무렵부터 나온 '각하론'이 다시 유력한 형국이다.

하지만 헌법학자들은 법리와 기존 사례, 상식 측면에서 헌재의 본안 판단에 무리가 없다고 분석한다. 임기 만료된 법관에 대한 탄핵 심판은 불가능하다고 명시된 법규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는 '늦은 탄핵' 선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적절한 행위를 저지른 공무원이 직에서 물러났다고 면죄부를 받는 상황을 방치하면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임 부장판사가 한 행위는 사법권 독립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행위이기 때문에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판시하기 위해서라도 헌재가 본안 판단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관 탄핵에 관한 선례와 법률도 뚜렷하게 없는 상황이니 헌재가 독자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재판소법상 탄핵 심판 중 징계로서 파면된 공직자의 경우 심판 청구를 기각해야 한다. 기각이란 본안 판단은 한다는 얘기"라며 "직이 상실된 상황은 똑같은데 임기가 만료됐다고 각하 가능성만 점치는 건 법리적으로도 어폐다. 당위론적 측면에서도 헌재는 본안을 판단해야 하고 법적 측면에서도, 아무리 소극적으로 판단하더라도 기각을 하면 했지 각하는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파면은 단순한 면직이 아니라 징벌적 성격을 갖는다. 한국 같은 경우 면직과 함께 5년간 변호사·공무원 취업 제한이 강제된다. 이런 측면에서 단순히 '임기 만료로 직이 없어졌으니 심판 이익이 없어 각하한다'는 논리는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내 탄핵제도의 모델이 된 미국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1876년 윌리엄 벨크냅 육군성 장관은 뇌물 혐의로 탄핵안이 발의된 뒤 사임했지만, 탄핵 심판은 중단되지 않았다. 그 기조가 지금까지 내려와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 절차는 임기 만료랑 무관하게 진행 중이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이 없다고 심판 이익이 없다는 건 공무원이 임기 말에 어떤 짓을 해도 심판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건 무서운 일"이라고 했다.

임성근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퇴임 인사글을 올렸다. 그는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너무도 송구스럽다는 말씀드린다.그동안 저로 인해 고통이나 불편을 입으신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청한다"고 밝혔다. 다만 자신의 '위헌적 행위'를 놓고는 언급하지 않았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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