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 시각에 '장애인 강간' 무죄…대법이 파기환송
입력: 2021.02.25 13:31 / 수정: 2021.02.25 13:31
성폭력처벌법상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은 신체적 기능이나 구조 등의 문제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새롬 기자
성폭력처벌법상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은 '신체적 기능이나 구조 등의 문제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 할 정도로 장애가 심하지 않더라도 신체적 제약만 있으면 성폭력처벌법상 가중처벌 요건인 장애인 강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5일 성폭력처벌법 위반(장애인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 피고인 A 씨는 소아마비를 앓는 이웃 B 씨를 지속해서 추행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 B 씨는 소아마비를 앓아 보행이 어렵고, 오른쪽 눈 시력을 사실상 잃어 지체장애 3급 장애인으로 등록됐다.

검찰은 A 씨에게 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 강제추행·장애인 강간 혐의를 적용하고, 예비적 공소사실로 강제추행·강간 혐의를 추가했다. 성폭력처벌법상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항거불능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일반 성폭력 범죄보다 가중처벌한다.

원심은 이 규정에 해당되려면 피해자가 지적장애 등급을 받은 장애인이라도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장애를 갖고 있다'는 점이 증명돼야 하고, 가해자도 이를 인식해야 한다고 봤다.

원심은 "성폭력처벌법상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 행사를 특별히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을 정도의 신체적·정신적 장애 상태라고 볼 수 없다"라며 장애인 강간 등 혐의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B 씨의 외형과 신체적 특징·능력, 평소 생활 모습과 법정 진술 등을 종합하면 성적 자기 결정권 행사를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정도의 장애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다만 예비적 공소사실인 강제추행·강간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A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상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이란 신체적 기능이나 구조 등의 문제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한다"라며 사건을 파기환송 했다.

대법원은 "장애를 앓는 피해자 상태는 개인별로 모습과 정도에 차이가 있고 그러한 모습과 정도가 성폭력처벌법이 정한 신체적 장애를 판단하는 본질적인 요소"라며 "신체적 장애를 판단할 때는 해당 피해자의 상태가 충분히 고려돼야 하고 비장애인의 시각과 기준에서 피해자의 상태를 판단해 장애가 없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의 취지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의 의미와 범위, 판단기준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최초의 판결"이라며 "성폭력처벌법으로 보호받는 장애인 여부를 판단할 때, 자칫 비장애인의 시각과 기준에서 이를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되고, 해당 피해자의 상태를 충분히 고려할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장애인의 권리 보호에 충실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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