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했다며?" 대놓고 물어본 70대 명예훼손 '유죄'
입력: 2021.02.23 05:00 / 수정: 2021.02.23 07:04
최근 법원은 전해 들은 사실의 적시도 명예훼손 혐의의 사실 적시가 될 수 있고, 이를 기정사실처럼 표현했다면 명예훼손의 고의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진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자료사진. /이새롬 기자
최근 법원은 전해 들은 사실의 적시도 명예훼손 혐의의 '사실 적시'가 될 수 있고, 이를 기정사실처럼 표현했다면 명예훼손의 고의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진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자료사진. /이새롬 기자

법원 "사실 적시 방법에 제한 없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질문해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전해 들은 사실의 적시도 명예훼손 혐의의 '사실 적시'가 될 수 있고, 이를 기정사실처럼 표현했다면 명예훼손의 고의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 8-1부(김예영·이원신·김우정 부장판사)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70대 남성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1,2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경로당 지회장 A 씨는 여러 명이 모인 경로당에서 B 씨에게 "C 씨에게 성폭행당했다며?"라고 물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실제로 B 씨가 C 씨에게 성폭행당하지 않았는데도 A 씨가 허위사실을 적시해 두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A 씨를 재판에 넘겼다.

A 씨 측은 재판과정에서 'C 씨가 B 씨를 성추행했다'는 수군대는 소리를 듣고 지회장으로서 사실 확인을 위해 경로당 한쪽 구석으로 B 씨를 불러내 물어본 것일 뿐, 두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성폭행 피해 여부를 질문했다고 적시된 공소사실과 달리, 성추행을 당했는지 물어본 것이라고도 했다.

1심 재판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전해 들은 소문에 관해 물어본 일이 '허위 사실 적시'에 해당하는지, 또 A 씨의 질문에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고의성이 있었는지다.

대법원은 '사실 적시' 범위를 넓게 봐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1심 재판부 역시 대법원 판례대로 판시했다. 적시된 사실이 피고인이 직접 경험한 것이든, 타인에게 들은 '전문'이든 상관없다는 취지다. 또 A 씨가 B 씨의 성범죄 피해 내용을 '웅변을 하듯이 큰소리로', '다그치듯 확인하는 식으로' 물어본 점에 비춰 명예훼손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질문을 들은 피해자 B 씨 역시 "제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해도 수치스럽게 계속 얘기했다. 소문이 사실이냐고 물어보는 차원이 아니라 망신 주려고 하는 투였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피해자 B 씨를 비롯한 경로당 회원들이 '성추행이 아닌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들었다'고 일관되게 증언함에 따라 이에 대한 A 씨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범죄사실이 명백함에도 피해자들을 탓하고 범행을 부인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고 있지 않다"며 "피해자들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피해자에게 용서받지도 못해 이에 상응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라며 A 씨에게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에 A 씨는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 역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명예훼손죄에서 사실 적시 방법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질문 방식이라도 그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경우 사실 적시라고 볼 수 있다"라며 "B 씨가 성범죄를 당한 사실이 없는데도 '당했다며', '당했다는데'라는 질문 형식을 취해 기정사실처럼 표현한 것은 허위 사실 적시"라고 판시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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