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의식은 있는 '블랙아웃' 상태였더라도 준강간·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더팩트 DB |
대법 "의식 일부 있었어도 심신상실로 볼 수 있어"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피해자가 의식은 있는 '블랙아웃' 상태였더라도 준강간·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준강제추행죄로 기소된 공무원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술에 취해 심신상실 상태인 10대 여성을 모텔로 데려가 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2심은 1심과 달리 무죄를 선고했다.
모텔 CCTV를 보면 피해자가 부축없이도 계단을 오르내렸고 당시 목격한 모텔·주점 종업원 등도 술에 많이 취해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하는 등 피해자가 준강제추행죄의 전제인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 하는 '블랙아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완전히 의식을 잃지는 않았더라도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대응능력이 없는 상태였다면 준강간죄·준강제추행죄상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에 해당한다"며 이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A씨와 피해자는 10살 차이가 나는데다 당시 처음 본 사이였다. 피해자는 사건에 앞서 다른 일행과 1시간 사이에 소주 2병을 마시는 등 주량을 넘어서 술을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오다 A씨를 만났다. 당시 휴대폰과 외투를 어디에 뒀는지도 기억하지 못 하는 상태였다.
A씨가 심신상실 상태를 이용해 추행했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갑자기 사라진 뒤 일행과 보호자가 신고해 출동한 경찰이 모텔에 찾아오자 피해자의 속옷을 숨기는 등 당황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과 성적 관계에 동의했다고 볼 정황을 확인할 수 없다"며 "이런 고려없이 블랙아웃이 발생해 피해자가 상황을 기억하지 못 한다는 이유만으로 합리적 의심의 근거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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