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경심 동양대 교수 등이 법정에서 구속되며 법정구속 제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대법원. /이새롬 기자 |
실형 선고에도 희비 교차한 피고인들의 사정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경심 동양대 교수 등이 법정에서 구속되며 법정구속 제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정구속이란 불구속 재판을 받던 피고인을 재판부가 실형 선고와 함께 직권으로 법정에서 구속·수감하는 제도를 말한다.
불구속 피고인에게 실형이 선고돼도 반드시 법정구속으로 귀결되는 건 아니다. 실형 선고를 받은 피고인 중에서도 △증거인멸·도주 우려가 있는 경우 △법정에서의 태도가 불량한 경우 △혐의가 중대한 경우 법정구속을 결정한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혐의가 중대하면 이미 해당 혐의로 실형이 확정된 대법원 판례가 많이 축적돼 있고, 항소해도 실형 선고가 뒤집힐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도 작용한다.
최근 각각 징역 2년 6개월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이 부회장과 정 교수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혐의의 중대성이, 정 교수는 증거인멸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의 이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대통령에게 잘 보이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뇌물을 공여하는 경우와 달리, 뇌물을 공여하는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관계 공무원 등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했다는 점에서 죄질에 큰 차이가 있다. 경영권 승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6억 원에 이르는 삼성전자 자금을 횡령해 이를 뇌물로 제공하고 허위 용역 계약을 체결하는 등 범행을 은폐했을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위증까지 했다.'
즉 다른 뇌물 범죄와 비교했을 때 죄질이 나쁘고 그 범행을 은폐·위증하는 등 사안이 중대하다는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 25-2부의 정 교수에 대한 1심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 코링크PE 관계자들에게 동생 관련 자료를 인멸할 것을 지시하고 자산관리인과 자신의 컴퓨터를 반출하는 등 증거인멸 또는 증거은닉 행위를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범행을 은폐했다"며 "1심 판결(실형)이 확정될 것을 우려해 도주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지만 증거를 조작하거나 관련자들에게 허위 진술을 종용하는 등 증거인멸 행위를 재차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설시돼 있다. 아직 1심 단계지만 불구속 상태로 항소심 재판을 받을 경우 증거인멸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이 부회장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남용희 기자 |
반면 같은 실형 선고에도 운이 좋았던 이들이 있다. 1월에만 실형 선고에도 법정구속을 피한 피고인은 5명이다. 사건별로 정리하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군 댓글공작(이태하 전 국군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장) △뇌물수수(원유철 전 미래한국당 대표)가 실형 선고에도 법정구속을 면했다.
이들 모두 증거인멸·도주 우려가 없거나 혐의가 중대하지 않았던 것일까? 먼저 국정원 특활비 수수 사건은 파기환송심으로 최종심에 가까운 단계였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 당시 최대 21억 원가량의 특활비를 청와대에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비춰 봐도 무거운 액수 범위에 속한다. 그럼에도 국정원 특활비 수수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13형사부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에 대해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재상고심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함께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이 전 기조실장 역시 법정구속을 피했다.
이 전 단장은 파기환송심 단계에다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데도 법정구속을 피했다.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댓글을 부하들이 작성하게 하고, 관련 증거를 인멸하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이 전 단장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5부는 이 전 단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으나 "현재 구치소에서 1000명 이상 수용자들이 코로나19에 확진되는 등 감염병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에 만 67세의 고령으로 우울증과 협심증, 간 기능 장애 등을 앓는 피고인은 감염에 취약할 것으로 보이는 사정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하지 않겠다"고 했다.
5000만 원가량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 전 대표 역시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나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3부는 원 전 대표의 상황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이병기(왼쪽),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특활비 상납' 관련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14일 서울고등법원 재판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
이처럼 실형 선고를 받았어도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해 법정구속하지 않는 사례가 나오면서 일각에서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급심에서 법정구속은 헌법상 '무죄추정원칙'에 반한다는 지적도 있다. 헌법적 가치와 부딪히는 복잡한 문제지만 법정구속을 규정한 기반은 연약하다. 법률인 형사소송법에는 따로 조항이 없고 대법원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 57조에 기준이 등장한다.
이 조항은 최근 개정됐다. 1997년 만들어진 뒤 24년 만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 1일 자로 "피고인에 대해 실형을 선고할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정에서 피고인을 구속한다"는 기존 조항을 "피고인에 대해 실형을 선고할 때는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법정에서 피고인을 구속한다"로 바꿨다. 구속을 원칙으로 예외 사정을 따진 기존 조항과 달리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더 엄격히 따지겠다는 취지다. 이달 원 전 대표 등이 법정구속을 면한 건 바뀐 예규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법정구속처럼 파급력이 큰 제도는 더 구체화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수사·재판에 성실히 임하고 혐의도 다툴 여지가 많은 의뢰인이 최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구속 사유도 판결문에 따로 기재되지 않고 '도망 우려'라는 사유만 고지서로 받았다"며 "제반 사정을 고려할 기준을 정량화하는 데 한계는 있겠지만 지금보다 기준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1심에서 법정구속 건수는 상승 추세인 만큼 기준 정비가 시급하다는 시각도 있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1심 법정구속 건수는 △2016년 9962건 △2017년 1만 1363건 △2018년 1만 1156건 △2019년 1만 2314건 △2020년 1만 2482건으로 2018년을 제외하면 매년 늘어나고 있다. 강신업 변호사(법무법인 하나)는 "불구속 수사 원칙에 따라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 발부율이 낮아지자 반대로 법원의 법정구속률이 높아졌다. 시류에 맞게 기준을 재정비할 시기"라며 "대법원 양형기준처럼 법정구속 기준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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