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법관 박범계' 판결 보니…왕따·가정폭력에 엄벌
입력: 2021.01.21 05:00 / 수정: 2021.01.21 05:20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폭력 남편 살해사건 변론도…나라슈퍼 오심은 '흑역사'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2001년 방영된 KBS 청소년 드라마 '학교3'. 극 중 인물 박홍근은 말이 조금 느렸다.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학급 폭력배들은 '유희의 대상'으로 박홍근을 타깃 삼아 괴롭혔다. 날이 갈수록 괴롭힘의 강도는 세졌지만, 선뜻 그를 위해 나서주는 친구는 없었다. 방관자가 되거나 일부는 가해자 무리에 합류했다.

일기장에나마 고통을 호소하던 박홍근에게는 환각 증상까지 나타났다. 아들의 속사정을 알게 된 박홍근의 아버지는 학교로 찾아가 가해 학생 엄벌을 요구했지만, 학교는 거절했다. 명예 실추를 우려한 학교는 박홍근이 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며 집단 괴롭힘을 덮으려 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왕따가 없었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받기도 했다.

◆ 대전지법 소년부 시절 '사이버 불링' 사건 판결

이 이야기는 1998년 대전 D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피해 학생 A군은 집단 괴롭힘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A군의 아버지는 학교 교장과 교감, 학생부장, 담임교사, 가해 학생 부모 등을 대상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내용을 다룬 '학교3' 에피소드가 방영되자 D고교 졸업생 등이 A군에 또다시 폭력을 가했다. 인터넷에 A군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올려 사이버 폭력을 저지른 것이다. 5명의 학생이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각각 2년~6개월의 보호관찰과 80~4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당시 판사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다.

2001년 5월 대전지방법원 소년부에 있던 박 후보자는 왕따 사건의 피해자에게 다시 인터넷상으로 언어폭력을 가한 것은 처벌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당시만해도 사이버 범죄에 대한 인식이 빈약했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2007년보다 훨씬 이전임을 감안하면 가해자들에게 상당한 엄벌을 내린 셈이다.

이밖에도 <더팩트>가 박범계 후보자가 판사로 재직한 1996~2002년 맡은 주요 사건 등을 살펴본 결과 특히 소년범죄·가정폭력 사건에서 단호한 판결이 눈에 띄었다.

박범계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기자실을 찾아 브리핑을 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박범계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기자실을 찾아 브리핑을 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가정폭력 남편 살해사건' 변론 맡아 집유

박 후보자는 1998~2001년 전주지방법원 재직시 형사단독 외에도 영장과 가정보호사건을 전담했다. 1998년 7월21일 사실혼 관계의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남성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는데 당시 가정폭력범죄처벌특례법 시행 초기 보기 드문 사례로 알려졌다. 수도권의 한 변호사는 "가정폭력으로 신고해도 가해자를 훈계하고 집에 돌려보내는 게 관행이던 때"라며 "법이 있어도 법원이 솜방망이를 휘두르던 시절인데 쉽지않은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듬해에는 전주지법에 접수된 가정폭력 사건을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가정폭력 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변호사 시절에는 오랜 가정폭력에 시달린 한 여성이 저지른 살인사건 변론을 맡아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이끌어낸 적이 있다. 2006년 4월 대전에서 수십년간 남편에게 폭행과 폭언을 당한 여성 B씨가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다.

같은 해 10월18일 선고된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남편은 사건 당일 술을 마시고 귀가해 B씨를 여러 차례 밀쳐 넘어뜨리고, 반려견을 B씨의 얼굴에 집어 던지는 등 심각한 폭력을 행사했다. B씨가 반려견을 안고 화장실에 숨자 남편은 문을 두드리면서 욕설과 함께 장인·장모에게도 폭언을 퍼부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을 앓던 B씨는 잠이 든 남편을 둔기로 살해했다. 법정에서는 남편이 친정 식구들을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변호를 맡은 박 후보자는 B씨가 극도의 불안 상태에서 범행한 것이라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법원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례적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지속적인 학대에 따른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검찰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지만, 대전고법은 이를 기각했고 양측 모두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아직 가정폭력에 사회적 경각심이 부족했던 당시 살인 혐의 피고인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은 흔치않은 사례라는 분석도 있다.

법조인 시절 가정폭력 문제에 대한 관심은 의정활동에도 이어졌다. 국회의원 시절인 2017년 6월에도 '가정폭력 피해아내의 남편살해 정당방위 법제화 방안'을 주제로 간담회를 열고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해사건에서 정당방위가 인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당시 박 후보자는 "해마다 가정폭력 신고건수는 늘고 있고, 남편 학대에 노출된 여성들의 대항범죄 또한 늘고 있으나 사법부의 가정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생존권과 인권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정당방위 개념에 대해 다각적인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범계 후보자는 오는 25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남윤호 기자
박범계 후보자는 오는 25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남윤호 기자

지울 수 없는 '나라슈퍼' 오심 논란

박 후보자는 무고한 사람을 옥살이시킨 불명예도 갖고있다. 바로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이다. 1999년 2월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3인조 강도가 한 슈퍼에 침입해 금품을 훔치는 과정에서 77세 할머니가 질식사로 사망한 사건이다.

경찰은 지적장애를 앓던 최 모 씨 등 '3인조'를 범인으로 몰았다. 검찰은 3인조를 기소했고, 대법원은 각각 징역 3~6년형을 확정했다. 그러나 '3인조'는 경찰의 강압 수사로 누명을 썼다며 재심을 청구했고, 사건 발생 17년 만인 2016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박 후보자는 1999년 전주지법 합의부 배석판사로 심리에 참여해 1심에서 유죄를 선고했다. 그들이 누명을 벗은 후 거센 비난을 받은 까닭이다.

이 사건 재심을 맡아 무죄를 이끌어낸 박준영 변호사는 박 후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오심을 인정하고 2017년 2월 국회에서 피해자들을 만나 머리를 숙였다.

박준영 변호사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판검사 출신인 인사가 과거 자신의 실수와 잘못으로 피해입은 당사자를 직접 만나 사과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사건 당사자들, 피해자, 유가족이 박 후보자의 사과를 의미 있게 보고 있고, 박 후보자가 억울해하는 부분을 이해한다는 점을 고려해 지나친 정치적 쟁점화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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