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동료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서울시 공무원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의혹이 사실로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놨다. /이새롬 기자 |
성범죄 진술 증거가치 높아…"별건 정황에 불과" 시각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법원이 동료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서울시 공무원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의혹이 사실로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놨다.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공소권이 없어진 성범죄 의혹을 법원이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해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별건 재판의 피고인 혐의를 판단하기 위한 정황일 뿐이어서 '법원이 의혹을 사실로 인정했다'는 해석은 지나치다는 시각도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조성필 부장판사)는 14일 동료 직원 B 씨를 성폭행해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A 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면서 박 전 시장의 성범죄 의혹을 언급했다. 이 사건 피해자 B 씨는 박 전 시장의 성범죄 의혹 피해자이기도 하다. A 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B 씨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는 자신이 아닌 박 전 시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A 씨의 주장에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받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피해자 PTSD의 근본적 원인은 A 씨의 범행 때문"이라고 판시했다.
◆"박원순 성추행은 사실" 판단은 어떻게 나왔나
법조계에서는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면서 박 전 시장을 언급했기 때문에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해야 하는 법원 역시 박 전 시장의 성범죄 의혹을 들여다봐야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변호사는 "피해자의 상해 원인은 피고인이 아닌 박 전 시장이라는 주장이 법정에 나오자, 재판부가 '박 전 시장 역시 상해 원인을 제공했지만, 결정적 원인은 피고인'이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사실상 피해자에게 한 박 시장 행위의 사실관계까지 인정한 모양새가 됐다"고 풀이했다.
재판부는 박 전 시장의 성범죄를 뒷받침할 증거로 피해자의 상담 내역과 약물치료 사실을 들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A 씨의 범행) 발생 이후 피해자는 2020년 5월 1일경부터 11월까지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았고, 2020년 5월 15일경부터 박 전 시장의 성범죄 내용을 진술하기 시작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피해자 진술에는) 여러 내용이 있는데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박 전 시장 밑에서 근무한 지 1년 반이 지난 이후부터 (박 전 시장이) 야한 문자와 속옷 차림 사진을 보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사건 당사자인 박 전 시장의 진술이나 문제의 문자내역 없이 성범죄 의혹을 사실로 인정할 수 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성범죄와 정신적 상해 특성상 물증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피해자의 객관적 진술은 증거로서 가치가 높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성범죄로 인한 정신적 상해는 물증이 존재하기 힘든 측면이 있어서 피해자의 객관적이고 일관된 진술이 크게 작용한다. 피해자의 정신과 상담내역과 일관된 진술은 충분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조성필 부장판사)는 14일 동료 직원 B 씨를 성폭행해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A 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면서 박 전 시장의 성범죄 의혹을 언급했다. /이새롬 기자 |
◆'법원이 제 기능했다' vs '별건 재판에서 왜'
박 전 시장의 성범죄 의혹 수사는 경찰의 불기소 의견으로 종결됐다.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의혹의 실상을 파헤치고 책임을 물을 길이 사실상 막힌 셈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 측은 법원의 판단을 높이 사고 있다.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김재련 변호사는 "박 전 시장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고소했음에도 법적으로 호소할 기회를 잃었는데 재판부가 일정 부분 판단해줘서 피해자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법학과 교수 역시 "비록 박 전 시장이 이 사건 당사자는 아니지만,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피해를 회복할 수 없게 된 피해자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법원의 판단으로 이해된다"고 봤다.
반면 별건 재판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 위한 근거이기 때문에 '법원이 의혹을 사실로 인정했다'는 해석은 지나치다는 시각도 있다. 이필우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박 전 시장 관련 판단은 피고인의 무죄 주장을 배척한 판결 근거를 설명한 내용 중 하나로, 이를 놓고 '법원이 박 전 시장의 성범죄 의혹을 사실로 인정했다'고 보는 건 과도한 해석"이라고 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 역시 "박 전 시장의 행위는 피고인 주장을 배척한 근거 중 하나로 풀이되는데, 형사재판에서 당사자(박 전 시장) 측 변론 한 번 듣지 않고 어떤 사실관계를 인정한다고 단정적으로 밝힌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ilrao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