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사법농단 후에도 법원은 변하지 않았다" 울먹인 이탄희
입력: 2020.12.16 00:00 / 수정: 2020.12.16 00:00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농단 의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농단 의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속행 공판 증인으로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처음 폭로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수원지법 안양지원 판사)이 법원행정처에서 인사모 와해를 시도하고 판사를 뒷조사한 파일을 보관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사직서를 냈다고 증언했다. 자신의 인사 발령에도 인사모 통제 목적이 있다는 생각에 모욕감을 느꼈다고도 했다.

이 의원은 1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같이 밝혔다.

이 의원은 대법원에서 와해를 시도한 것으로 조사된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출신이다.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으로 부임한 이 의원은 법원행정처에서 인사모를 와해하고 '판사 블랙리스트'를 관리한 것을 알고 법원에 사직서를 냈다. 이 의원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발령 일주일 만에 사표를 내기까지

이 의원은 2017년 2월 9일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으로 부임했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은 판사들 사이에서 요직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의원은 기쁨보다 의구심을 가진 채 법원행정처에 출근했다. 그가 기획팀장을 맡은 인사모에서 개최할 학술행사를 저지하기 위한 인사 조처라는 생각에서였다. 인사모는 당시 대법원의 사법행정을 비판하는 행사를 공개적으로 열었는데, 이를 막기 위해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모임을 와해하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의원의 의구심이 좀 더 현실화한 건 인사 4일 뒤인 2017년 2월 14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 실장)을 만났을 때였다. 이 의원은 "이 전 실장이 '잘 왔다'고 하면서, 컴퓨터에 판사를 뒷조사한, 비밀번호 걸린 파일이 있어서 그걸 보게 될 텐데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며 "의심이 들어서 '혹시 제가 법원행정처에 온 게'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이 전 실장이 '연구회 때문이냐고?'라고 말씀하신 뒤 혼자 자문자답을 쭉 연달아서 하더라.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고 증언했다.

다음날(2017년 2월 15일) 간담회 장소에 사전 답사를 하러 간 이 의원은 이 전 실장으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이 의원이 '답사 차량에 여러 명이 계시는데 전화드릴까요'라고 문자를 보내자 이 전 실장은 '전화해. 듣기만 하면 돼'라고 답장했다고 한다. 이 의원이 전화하자 이 전 실장은 작은 목소리로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소모임인 인사모에 대한 대응 논리를 설명하며, 인사모에 전해달라고 했다고 이 의원은 기억했다. 답사하고 돌아온 날 밤 이 의원은 친분이 있던 임효량 당시 기획1심의관으로부터 인사모 와해를 위해 중복가입 해소 조치를 정책적으로 시행했으며, '블랙리스트 프레임'에 들어가면 끝장난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된다.

이 의원은 바로 다음날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반려됐고 안양지원으로 돌아왔다. 이 의원은 사무실에서 임 전 차장의 전화를 받게 됐는데, 임 전 차장을 전화를 받자마자 '오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오해라고 하시면서 저에 대한 인사 경위를 말씀하시길래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인사 이야기를 한 적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저를 데려오실 때 부수적 목적이 있지 않았냐, '일석이조'가 아니었냐고 묻자 '그래, 일석이조다'라고 하셨다"고 기억했다.

◆들은 사람은 있는데 말한 사람은 없다

임 전 차장 측은 이 의원이 심의관으로서 자질을 갖춰 법원행정처로 발령했을 뿐, '부수적 목적'이나 정무적 판단은 없었다고 변론했다. 특히 임 전 차장은 '일석이조'라는 단어가 오간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이 의원에게 '임 전 차장과 통화할 때 심리적으로 격앙돼 불안한 상태가 아니었느냐'고 질문했다. 이 의원은 "피고인이 부수적인 목적이 있다고 인정하셨고 그때서야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격앙됐다"고 답했다.

직접 반대신문에 나선 임 전 차장은 일석이조라고 말한 적이 없고, 인사모 와해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임 전 차장은 "피고인으로서는 연구회를 와해하는 게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없어지는 과정에서 내부 반발이 심각할 텐데 어떻게 그걸 무릅쓰고 없애겠냐고 설명했다"며 "평판을 듣고 심의관 최종 후보군에 올렸을 뿐 증인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전화 통화에서도) 일석이조란 말을 한 기억이 분명히 없다"라고 대답했다.

이 의원에게 인사모 와해 관련 지시를 내렸다는 이 전 실장 역시 자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4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 전 실장은 "이탄희 판사가 그런 말을 했다는데 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판사에게 그런 말을 안 했다고 증명할 수는 없고 후배 법관이 말하는데 부인하는 모습도 좀 그렇다"고 했다.

인사모 와해 의혹에 대해서도 "게시판에 올라온 소모임 내용을 간단하게 구두보고 하기는 했지만,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인사모를 위축하려는 문건을 작성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사진) 측은 이 의원이 심의관으로서 자질을 갖춰 법원행정처로 발령했을 뿐, 부수적 목적이나 정무적 판단은 없었다. /남용희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사진) 측은 이 의원이 심의관으로서 자질을 갖춰 법원행정처로 발령했을 뿐, '부수적 목적'이나 정무적 판단은 없었다. /남용희 기자

◆ "2017년 이후 법원, 너무 변화가 없다"

약 3시간 동안 진행된 증인신문을 마친 뒤 재판부로부터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은 이 의원은 "저는 2017년 2월의 제가 아니다. 직업도 바뀌었고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졌다"며 "법원이 이 일을 겪고 나서 직업윤리가 확립돼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안타깝게도 '뭐가 변했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피고인이 2017년 사석에서 가장 많이 말한 게 법원은 판사들의 것이고, 우리는 법원을 위해 일한다는 것인데 죄송하지만 저는 이제 동의할 수 없다"며 "법원은 국민의 것이고 판사들은 법원을 빌려 쓰는 것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판사의 윤리 수준이 무엇인지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법관의 진술·증언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2017년 3월 1차 조사 때 피고인을 포함해 조사받은 판사들께서 사실대로만 얘기해 줬으면, 그때 어려웠다면 2차, 아니 3차 때라도 있는 그대로 얘기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저도 힘들어서 안 보려고 하다가 기자가 쓴 재판 기록을 보면 재판 개입을 당했다고 법정에 온 판사들이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조언에 불과했다고 증언하더라"며 "지금 와서 그게 별일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법원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 비친다. 법원이 많이 변화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기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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