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替認知·Change)] '국민 불신' 검찰 개혁, 새롭게 시작하는 게 맞다
입력: 2020.12.08 15:34 / 수정: 2020.12.08 18:18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공정한 과정과 절차도 변명처럼 보인다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전국시대(戰國時代) 진(秦)나라 재상 상앙(商鞅)은 강력한 법치주의로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처음 법률을 제정했을 때는 백성들이 법령을 믿어줄까 염려되어 포고도 않았다고 한다.

궁리 끝에 높이가 3장(三丈: 9ⅿ)이나 되는 나무를 전통시장 남문에 세우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긴 자에게 10금을 준다'라는 포고문을 붙였다. 그래도 백성들은 이상한 포고문이라고 생각해 나무를 옮기지 않자 '나무를 옮기는 자에게는 50금을 준다'는 내용의 새로운 방(榜)을 붙였더니 어떤 이가 북문에 나무를 옮겨 놓았다.

상앙은 즉시 50금을 지급해 정부가 백성을 절대 속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게 했다. 사마천(司馬遷)의 역사서 사기(史記)의 기록에 따르면 ‘개혁 이른바 변법 시행 후 10년이 지나자 백성들이 만족해하고 사람마다 마음이 넉넉해졌다’고 전하고 있다.

사목지신(徙木之信), '나무 옮겨 신뢰를 얻었다'라는 뜻으로 위정자(爲政者)는 백성을 속이지 않고 약속을 지킨다는 고사성어의 유래이기도 하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이라고도 한다.

상앙은 대단한 개혁가였다. 관중(管仲), 왕안석(王安石) 등과 중국역사에서 대표적 개혁가로 손꼽힌다. 개혁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변방국에 불과했던 진나라를 단숨에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훗날 시황제(始皇帝)가 이룩한 진나라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한다.

초심과는 달리 강력한 법만으로 모든 걸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게 그의 패착이었다. 백성과의 소통, 교육과 교화, 마음이나 인정 등도 세월이 흐르면서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유야 여러가지였겠지만 결국 본인은 불행한 생을 마감해 개혁의 마무리를 보지 못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목하 개혁 중이라고 하나 처음과 달라보인다. 특히 강조하던 검찰개혁은 과정마저 순탄치 않아보인다. 개혁 과정이 대부분 지난하지만 국민 눈에는 그렇게 비친다.

검찰개혁은 아시다시피 수장격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1년 가까운 충돌로 국민들에게 피로감만 가중시키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도 최근들어 떨어졌다. 개혁은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지리했던 둘의 충돌도 막바지에 온 것처럼 여겨지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결말은 안갯속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리한 싸움에 국민들의 피로감은 더해가고 있다. /더팩트 DB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리한 싸움에 국민들의 피로감은 더해가고 있다. /더팩트 DB

검찰개혁. 문재인 정부가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2019년 7월 윤석열 검찰총장을 중용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검찰개혁, 특히 시스템 개혁에 대한 진심이 보이면서 기대를 걸게 했다.

2달 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직후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이어진다. 결국 조 전 장관은 낙마를 했다. 후임으로 추장관이 취임하면서 검찰개혁은 ‘추개혁 다르고 윤개혁 다른' 나만의 검찰개혁으로 쪼개진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은 압승하면서 둘의 대결은 접입가경(漸入佳境)으로 들어섰다.

추 장관이 ‘말 안 듣는 검찰총장’이라며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고 처음으로 사퇴를 압박하고 나선 시점도 그 즈음이다. 거대 여당이 힘으로 윤 총장 이하 윤석열 사단에 대한 물갈이에 나섰고 버티던 윤 총장도 이제는 조만간 물러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 장관을 임명하면서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외견상으로는 검찰개혁 완수다. 속을 들여다보면 인적 쇄신에 의한 검찰의 순치였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추장관 때문이다.

윤 총장도 취임 초기와 다소 달라보인다. 겉으로는 예전처럼 권력비리 수사에 거침이 없긴하다. 확실한 건 추 장관 임명 이후 검찰개혁은 이들 두 사람의 충돌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은 모를지몰라도 국민들은 안다

추 장관은 2번의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이건 검찰개혁과는 방향이 다르다. 검찰순치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도 있다. 당초 문 대통령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자 검찰개혁 차원에서 ‘법무부 문민화’를 추구했다. 추 장관이 오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윤 총장은 리더십이라기보다 자신의 조직만 챙기는 패거리 보스로 오버랩된다. 각각 다르게 비칠지 모르나 윤 총장은 수사를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고 여기는 국민들도 적지않다.

여기에 국민의힘과 보수 일부 세력은 윤 총장을 검찰개혁을 이뤄낼 적임자로 띄우고 있다. 백 번 이해한다고 해도 차기 대통령으로서 이 일을 해주길 바라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권력비리를 남김없이 수사해 밝혀냄으로써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 기대하는 것은 ‘보복의 피바람"일 것이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수도자 3951인 선언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정문앞에서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임세준 기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수도자 3951인 선언'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정문앞에서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임세준 기자

검찰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숙원이다. 대통령 입장에서 집권 기간에 검찰개혁을 완성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후퇴시키는 일이 생긴다면... 지금까지는 그렇게 흘러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혼란스러운 정국이 국민들께 걱정을 끼치고 있어 대통령으로서 매우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저간의 사정으로 미루어 볼 때 진작에 추미애-윤석열 충돌을 어떤 형태로든 조속히 정리했어야 했다. '징계위 사태'까지 와서라도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잘했다.

문 대통령은 이른바 '추-윤 갈등'으로 인한 혼란상을 지적하며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정국 혼란을 정리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검찰개혁이라는 대표 개혁과제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또 "지금의 혼란이 오래가지 않고, 민주주의와 개혁을 위한 마지막 진통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밝혀 이번 사태가 검찰 개혁을 위한 불가피한 수순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일단을 드러냈다. 검찰 등 권력기관의 제도적 개혁을 끝까지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한 것으로 여겨진다.

개혁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改), 바로 잡을 수 없는 것은 바꾼다(革)는 의미다. 난마(亂麻)처럼 얽혀 바로 잡기가 힘들다면 새로운 걸로 바꾸는 게 수순이다.

개혁이 문재인 정부의 최고선(最高善)이고 국민과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공정한 과정과 절차도 더는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찌보면 예정된 결론으로 가기 위한 구차한 변명처럼 보인다. 신속하게 결단을 내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게 맞다. 그래야 국민도 검찰개혁에 신뢰를 보낸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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