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같은 듯 다른 듯' 양승태·윤석열의 판사 문건
입력: 2020.11.29 00:00 / 수정: 2020.11.29 00:00
법조계에서는 판사 사찰 문건이 사법 처리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양승태 대법원 시절 물의야기 법관 문건과 대검의 판사 사찰 문건을 둘러싼 의혹의 결은 다르지만, 판사 사찰 의혹 역시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이새롬 기자
법조계에서는 '판사 사찰 문건'이 사법 처리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양승태 대법원 시절 물의야기 법관 문건과 대검의 '판사 사찰 문건'을 둘러싼 의혹의 결은 다르지만, 판사 사찰 의혹 역시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이새롬 기자

결은 다르지만 "수사기관이라 악용 우려 더 크다" 주장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주요사건 재판부의 성향 등을 정리한 '판사 사찰 문건'이 공개됐다.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관련자들을 수사·기소한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인 '물의야기 법관' 여부까지 포함되면서 논란이다.

윤 총장 측이 공개한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이라는 제목의 9장 분량 문건에는 특정 판사의 기본적 정보와 유명 사건에 대한 판결, 세평 등이 쓰였다.

가장 문제 되는 대목은 세평이다. 세평에는 판사의 소속 연구회와 물의야기 법관 여부, 재판 진행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다. A 판사를 두고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 '재판장으로서 적극적으로 검사나 변호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평가가 달렸다. B 판사에 대해서는 '재판에서 존재감 없음, 행정처 16년도 물의야기법관 리스트 포함'이라고 서술됐다.

재판 진행 등 판사 직무 수행과는 무관한 사적인 내용도 포함됐다. C 판사의 경우 '법관 임용 전 대학·일반인 취미 농구 리그에서 활약, 서울법대 재직 시부터 농구 실력으로 유명'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치적 성격을 띤 재판에 대한 판결 동향을 파악한 대목도 눈에 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임을 지목한 A 판사 에 대한 평가에는 △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요구하며 경찰과 충돌한 시위대에 집행유예 선고(경찰관에 2~3주 상해 가한 사안, 검사 실형 구형) △대학 시절 시위 참가 전력으로 군무원 채용에서 탈락한 응시자의 손을 들어준 사건 등이 나열돼 있다.

지난 11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전지역 검사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29일 오후 대전광역시 서구 대전지방검찰청을 방문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지난 11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전지역 검사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29일 오후 대전광역시 서구 대전지방검찰청을 방문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이는 '양승태 대법원' 시절 작성된 물의야기 법관 문건,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와 비슷한 내용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당시 대법원 수뇌부는 사법행정 정책과 당시 정권 기조에 반하는 판사를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해 인사 불이익을 가한 의혹을 받는다. 양승태 대법원의 물의야기 문건 역시 특정 판사의 주요 판결과 평판이 담겨 있지만 당시 대법원과 박근혜 정부의 기조에 얼마나 비판적인지, 그리고 어떤 인사 조치를 취할지에 대한 내용이 더 깊이 있게 다뤄진다.

지난해 11월 양 전 대법원장의 공판에서 공개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에 따르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한 문모 부장판사를 놓고 '공명심이 있어 중요 사건이 많은 행정법원은 부적절'이라는 평이 달렸다. 문 부장판사는 행정법원을 희망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본인이 행정법원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으므로 이를 배제하는 것만으로도 인사상 불이익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적었다.

박근혜 정권에 부담이 될 만한 판결을 선고한 판사도 물의야기 법관으로 지목됐다. '정기인사 법관 참고사항'이라는 문건에 따르면 김모 부장판사는 유신 시대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이유로 물의야기 법관에 분류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8년 6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경기도 성남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임영무 기자
지난 2018년 6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경기도 성남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임영무 기자

양승태 대법원의 물의야기 법관 문건은 2018년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의 수사로 구체적 진상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은 문건 작성에 연루된 양 전 대법원장과 당시 수뇌부들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공교롭게도 당시 수사팀을 총괄 지휘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 총장이다. 법무부는 26일 '재판에 영향을 주기 위해 악용할 수 있는 개인정보가 담긴 문건이 윤 총장 지시로 작성, 배포됐다'며 윤 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대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법조계에서는 '판사 사찰 문건'이 사법 처리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양승태 대법원 시절 물의야기 법관 문건과 대검의 '판사 사찰 문건'을 둘러싼 의혹의 결은 다르지만, 판사 사찰 의혹 역시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초동의 중견 변호사는 "검찰은 수사기관이라는 측면에서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며 "단순 인사 불이익이 아니라 개인 신상 정보를 취합하고 이를 토대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재판권을 침해하기 위한 시도로 번질 수 있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지방법원의 판사는 "검찰과 법원은 국민의 기본권과 직접 연결된 일을 하고 있고 헌법상 주어진 책무가 있는 기관"이라며 "게다가 검찰은 로펌처럼 민간 영역의 사건 당사자가 아니라 수사, 기소권을 독점한 공공기관이라는 점에서 이런 형태의 판사 세평 수집은 얼마든지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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