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판사 사찰 의혹' 파문…秋尹갈등, 법원·검찰로 확전되나
입력: 2020.11.26 05:00 / 수정: 2020.11.26 05:00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직무집행 정지 명령을 내린 가운데 윤 총장의 중대 비위혐의로 꼽힌 재판부 사찰 파문이 커지고 있다. /더팩트 DB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직무집행 정지 명령을 내린 가운데 윤 총장의 중대 비위혐의로 꼽힌 '재판부 사찰' 파문이 커지고 있다. /더팩트 DB

대검 압수수색·추가 감찰 예고…판사들도 '부글부글'

[더팩트ㅣ박나영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의 중대 비위혐의로 꼽힌 '재판부 사찰'에 대한 논란이 반박에 재반박을 이어가며 확산되는 모양새다. 사찰 대상이 된 판사들까지 목소리를 내면서 법원과 검찰 간의 갈등마저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불씨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었다. 24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청구와 직무집행 정지 명령을 강행하면서 제시한 징계 사유 중에서는 '재판부 불법 사찰'이 주목을 끌었다. 지금까지 공개된 윤석열 총장에 얽힌 의혹들과 달리 이날 처음 알려진데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 '사법부 블랙리스트'로 홍역을 치른 법원 입장에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쌓인 긴장감과, 독립성이 보장된 사법부와 '준사법기관'을 자부하는 검찰의 해묵은 갈등도 겹친다.

25일 법무부가 사찰 문건이라고 지적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직접 반박했지만 오히려 법원-검찰 갈등의 '트리거' 역할을 한 셈이 됐다.

성상욱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부장검사는 이 문건을 놓고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 수사정보2담당관으로서 주요 사건 공판을 담당하는 공판 검사들이 공소유지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참고자료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며 사찰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해당 보고서에 기재된 판사들의 우리법연구회 가입 여부, 가족관계, 세평, 개인 취미, 물의 야기 법관 해당 여부 등은 모두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얻은 정보로, 이미 알려진 내용인데 미행이나 뒷조사를 통해 얻은 것으로 오해받고 있다고 억울해 했다.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업무 범위에 수사 중인 사건은 물론 공판 중인 사건 관련 정보 수집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물의 야기 법관'은 법원 입장에서는 아픈 상처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코트'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해 다양한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이다. 검찰이 사법농단 수사로 확보한 이 자료를 판사 성향을 분석하는데 활용했다는 정황이 나왔으니 무심코 지나갈 수 없는 문제다.

법무부 역시 의혹을 뒷받침하는 추가 정황을 내놓고 있다. 문건에는 특정 재판부의 특정 판사를 지목하면서 '행정처 16년도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 포함'이라고 적혀있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대검이 리스트를 직접 확인한 정황이라는 설명이다.

수사정보정책관실의 판사 관련 정보 수집은 '사찰'이라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법무부는 "수사정보정책관실은 판사 개인 정보와 성향자료를 수입해 검사들에게 배포하는 기구가 아니다"라며 "법적 권한이 없는 기관이 개인정보와 성향자료를 수집, 분석, 관리하는 것이 사찰이고 그 사찰 방법에는 언론 검색, 검사들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탐문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했다.

대검찰청/더팩트 DB
대검찰청/더팩트 DB

법무부가 수사정보정책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추가 감찰을 예고한 점도 주목된다. 대검 감찰부는 이날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정보담당관실에서 확보한 컴퓨터 등에 대한 포렌식 작업을 진행 중이다. 법원이 검찰의 심장부인 대검 압수수색 영장을 내줬다는 것은 어느정도 범죄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추 장관은 대검 감찰부에 현재 수사 중인 혐의 이외에도 검찰총장의 수사정책정보관실을 통한 추가적인 판사 불법사찰 여부 등을 감찰하라고도 지시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재직 당시 이 문건을 보고받고 "당시 크게 화를 냈고 일선 공판 검사들에게도 배포하라는 총장의 지시도 있었다는 전달을 받고 이를 배포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와 검찰의 공방 속에 판사들도 움직이는 분위기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잠잠했던 법원 내부 게시판 '코트넷'도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장창국 제주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코트넷'에 '판사는 바보입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공소 유지 참고자료' 명목으로 판사의 개인정보와 성향이 담긴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대검 측 해명에 대해 "참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장 부장판사는 "얼마나 공소 유지에 자신이 없었으면 증거로 유죄 판결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판사의 무의식과 생활 습관인 성향을 이용해 유죄 판결을 받으려고 했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고 적었다.

장 부장판사의 글에는 동료 판사들의 지지 댓글이 줄을 잇고 법원도 이번 사태에 공식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아직 공식적인 반응 없이 신중한 모습이다.

'사법농단' 사태 공론화의 시발점이 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의혹 제기 하루 만에 입을 열었다.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 부장검사가 '사찰이 아닌 직무'였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글을 올렸다. 이 의원은 "해당검사가 제시한 근거는 검찰청사무기구에 관한 규정과 이름을 알 수 없는 검찰 내부 지침인데, 검찰청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제3조의4에 공판 사건 정보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고 적었다.

실제로 이 규정에는 수사정보정책관을 보좌하는 수사정보2담당관이 수집하는 자료는 부정부패사건·경제질서저해사건 등과 관련된 정보와 자료, 대공·선거·노동·외사 등 공공수사사건과 관련된 정보와 자료, 그 밖에 중요 수사정보와 자료라고만 적시돼 있다.

이 의원은 "이름을 알 수 없는 검찰 내부 지침은 확인이 어렵다"며 "다만 만일 해당 검사의 주장처럼 수사정보는 '수사와 공소유지 관련 정보'라고 기재되어 있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이는 '여성은 여성 및 남성'이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이어 "백번 양보하여 공소유지 관련 정보를 인정하더라도 이는 공소유지에 도움이 되는 '사건 자체'와 관련된 정보를 말하는 것이지 판사에 대한 신상정보를 말하는 것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 재직 당시 법관 사찰에 항의하며 사표를 내 '사법농단' 사건을 알린 인물이다.

윤석열 총장 직무집행 정지 이후 검찰 내부도 격앙되며 집단반발 조짐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검 감찰부가 문건을 생산한 수사정보정책관을 압수수색하는 등 고삐를 죄고 있어 사실관계가 추가로 드러날 경우 법원 역시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도 없지않다.

bohen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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