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3·5 법칙 시대 지났다"…이재용 측 "수동적 공여"
입력: 2020.11.23 19:14 / 수정: 2020.11.23 21:4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국정농단 사태' 파기환송심 속행공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박영수 특검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3·5 법칙이 아닌 엄격한 양형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3·5 법칙이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뜻하는 말로, 재벌이 아무리 무거운 죄를 지어도 실형을 피한다는 비판적 의미가 담겼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23일 오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등의 파기환송심 공판을 열었다.

이날 특검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행위는 정권의 후원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행해진 불법 후원과 결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독재 정권 아래 기업의 이익을 목적으로 불법 후원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동등한 서열에 있는 재계 서열 1위 기업인이 개인적 이익을 위해 뇌물을 줬다는 설명이다.

삼성그룹 선대 총수 이병철·이건희 전 회장의 사례를 들어 이 부회장의 혐의와 비교하기도 했다.

이병철 전 회장은 1983년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정치자금 명목으로 약 200억 원을 건넸고, 얼마 전 별세한 이건희 회장도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자금을 후원한 바 있다.

특검은 두 총수의 뇌물공여 사건을 놓고 "당시 시대 상황은 정치 권력이 자본 권력에 비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며 "눈빛 레이저만 쏴도 들어줘야 하는 군부 독재 시기에 (뇌물 공여는) 다른 경쟁 기업 보다 우대받거나, 최소한 불이익이 없도록 선처해달라는 취지였음이 확인된다"라고 분석했다.

또 특검은 군부 독재 정권이 무너진 뒤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위치는 사실상 대등해졌다고 주장했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국민은 '화이트칼라' 범죄 행위의 처벌 강화를 요구했고 사법부 역시 재벌 소유주에 대한 양형 기준을 재정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이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기업인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라는 취지로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으로로 풀이된다.

지난 9일 공판에서 변호인은 "노 씨가 여러 기업인에게 통치 자금을 요구한 사건에 대해 서울고법은 기업인에 일차적 책임을 묻는 건 적절치 않다고 판시했다"라며 "일차적 책임은 기업인들이 돈을 바치게 만든 권력과 추종자들이 져야 한다는 의미"라고 변론했다.

이날 특검은 "재계 서열 1위인 이 부회장과 대통령은 일방의 강요 때문에 어떤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대등한 지위에 있었다"라며 "본건 범행은 과거 정치 권력의 우월적 지위를 전제로 한 시대의 3·5 법칙이 아닌 국민의 의지에 따라 제정된 엄격한 양형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비선 실세 최서원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수십억원대 승마 지원을 한 혐의를 받는다. 사진은 정 씨가 훈련한 덴마크의 승마 연습장. /배정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비선 실세' 최서원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수십억원대 승마 지원을 한 혐의를 받는다. 사진은 정 씨가 훈련한 덴마크의 승마 연습장. /배정한 기자

특검은 이 부회장을 적극적 뇌물 공여자로 보는 근거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을 들었다.

2016년 5월 31일자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이 사건 피고인 중 한 명인 장충기 전 차장과 청와대가 감사원 사무총장 후보를 놓고 '평판이 나빠서 안 된다' 등의 논의를 한 흔적이 쓰였다. 안 전 수석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지시 내용을 수첩에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이 감사원 인사를 함께 논할 정도로 삼성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고 특검은 판단했다.

같은 달 8일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장충기, OOO 식약처장'이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 문구를 놓고 '장충기 전 차장이 특정인을 식약처장으로 임명해 달라고 요청한 내용을 쓴 것'이라는 안 전 수석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특검은 밝혔다.

이처럼 삼성은 국가기관 인사를 대통령과 논할 정도로 동등한 관계로 정권의 뇌물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할 리 없다는 것이 특검 측 주장의 요지다.

특검은 "일개 삼성물산의 회계직원은 이 사건 혐의 액수 8분의 1에 불과한 10억 원을 횡령한 범행에 대해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며 "다른 많은 사유를 차치하고 횡령 금액만 보더라도 이 사건 피고인들이 회계 담당 직원보다 낮은 형이 선고된다면 그 누가 봐도 법치주의가 실종됐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엄격한 처벌을 촉구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대통령의 요구로 의사결정의 자유가 침해된 상태에서 수동적으로 지원한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박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서원 씨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이 삼성에 대한 지원 요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점을 들었다.

특히 동계 영재스포츠센터에 대해선 올림픽 영재 양성이라는 공익적 목적으로 자금을 지원했을 뿐, 배후에 최 씨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등의 파기환송심 공판을 열었다. /이새롬 기자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등의 파기환송심 공판을 열었다. /이새롬 기자

이 부회장은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지난 2017년 2월 재판에 넘겨졌다.

2017년 8월 1심은 이 부회장의 혐의 일부를 유죄로 보고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듬해 2월 항소심은 1심에서 유죄로 본 혐의 액수 중 상당 부분을 무죄로 보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8월 2심에서 무죄로 본 일부 혐의도 유죄로 봐야 한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진행된 파기환송심 재판은 올해 1월 중단되기도 했다. 재판부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 평가를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이에 반발한 특검이 법관 기피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지난 9월 특검의 법관 기피 신청을 최종 기각하면서 재판이 다시 열렸다.

재판이 재개된 뒤 재판부는 준법감시위 운영을 평가할 전문심리위원으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 홍순탁 회계사,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확정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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