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안국역에 헌재 비난 광고하자'…양승태 대법원의 뒤끝
입력: 2020.11.11 00:00 / 수정: 2020.11.11 00:00
파견 법관을 통해 헌법재판소(사진) 내부 정보를 빼돌린 혐의를 받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이 관련 보고서를 받은 건 부적절하지만, 헌재를 견제할 목적은 없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남윤호 기자
파견 법관을 통해 헌법재판소(사진) 내부 정보를 빼돌린 혐의를 받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이 관련 보고서를 받은 건 부적절하지만, 헌재를 견제할 목적은 없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남윤호 기자

'사법농단' 임종헌 속행 공판…이규진 전 양형실장 증인신문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파견 법관을 통해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를 빼돌린 혐의를 받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이 관련 보고서를 받은 건 부적절하지만, 헌재를 견제할 목적은 없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대법원은 헌재로 통하는 지하철역에 헌재 비난 광고를 싣자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이 전 실장은 "우스갯소리에 불과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10일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인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는 전날(9일)에 이어 이규진 전 실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헌재를 견제하고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일부 방안은 실제로 시행했다는 것이 검찰의 공소사실이다. 실제로 행해진 방안 중에는 파견 법관을 통해 헌재 내부 정보를 확보하는 수단도 포함됐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 헌재 파견 법관은 최희준 부장판사였고, 최 부장판사의 보고서는 이규진 전 실장을 통해 대법원 수뇌부까지 올라갔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이날 재판에서 이규진 전 실장은 최 부장판사에게 보고서를 받은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보고 행위 자체는 부적절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헌재를 견제하기 위해 기밀을 빼돌리려는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틀에 걸쳐 진행된 증인신문에서 이 전 실장은 역사적으로 대법원과 헌재의 법리 판단이 충돌해왔다며, 이같은 갈등이 국민적 혼란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헌재와의 소통 창구를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그 역할을 바로 파견 법관이 했다는 설명이다.

이 전 실장은 "대법원과 헌재 양 기관의 경쟁이 궁극적으로 국민의 권익 구제를 확장시킨다는 인식을 헌재도, 대법원도 가지고 있지 않았느냐"는 임 전 차장 측 변호인의 질문에 사실이라고 답했다.

법원과 헌재의 법리 판단에 따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물밑 조율'이 필요했을 뿐, 최 부장판사를 통해 내부 기밀을 빼돌리라고 지시한 건 아니라는 변호인의 주장에도 그렇다고 답변했다.

다만 이규진 전 실장은 "최 부장판사가 보고서를 전달하고, (제가) 전달받은 건 부적절했다고 인정한다"고도 밝혔다. 그는 지난 5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서도 "(보고서를 받은 건) 부적절했다고 인정한다. 다만 자료 공유 차원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보고 자체의 부적절함은 시인했지만 헌재에 대한 견제는 '경쟁'으로, 기밀 정보를 빼돌린 행위는 '정보 공유'로 공소사실과 아예 결이 다른 증언을 한 셈이다.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는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는 이규진(사진) 전 양형실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이덕인 기자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는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는 이규진(사진) 전 양형실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이덕인 기자

하지만 당시 대법원이 헌재를 대하며 다소 도 넘은 표현을 쓴 정황도 엿보였다.

9일 공판에서 나온 '헌재 비난 광고'가 그 중 하나다. 대법원이 위치한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에 헌재 광고판이 붙자, 반대로 헌재를 비난하는 광고를 헌재에서 가장 가싸운 3호선 안국역에 설치하자는 묘안이 나온 것이다. 이 전 실장은 "우스갯소리였다"고 했다.

검사: 법원행정처에서 안국역에 헌재를 비난하는 내용, 예를 들어 헌법소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광고를 싣자는 말이 나왔습니까?

이규진 전 실장: 그런 말이 나오기는 했는데 '우리도 맞대응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였습니다. 실행할 의사는 없었어요. 웃고 넘어간 이야기입니다.

검사: 헌재 관련 대처 방안에 이 내용이 들어가 있는 건 맞잖아요?

이규진 전 실장: 네, 다른 방안이 없어서 그냥 끼워 넣은 이야기입니다.

이날 이어진 변호인 반대신문에선 최 부장판사와 같은 파견 법관들이 '공식 정보원'이라고 불린 사실도 드러났다. 변호인과 이 전 실장은 헌재 내부에서 '농담으로' 이렇게 불렀다고 입을 모았다. 이규진 전 실장 역시 2001년 헌재에서 '공식 정보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변호인: 최 부장판사는 자신이 법원과 헌재 사이의 소통 창구였다고 증언했습니다. 헌재가 '헌재 입장 잘 전달해달라'고도 얘기했다는데요.

이규진 전 실장: 네.

변호인: 증인이 파견법관이던 시절에는 헌재에서 농담삼아 파견 법관들을 '공식 정보원'이라고도 했죠?

이규진 전 실장: 네.

지난해 10월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이 증인으로 나온 '후배 정보원' 최 부장판사는 "(대법원의 지시를) 그때 거절했으면 어땠을까 후회된다"고 말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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