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걸․리․법②] 피해자 없어도 처벌하는 업무방해죄…​​​​​​​한국서만 건재
입력: 2020.01.28 00:00 / 수정: 2020.01.29 10:01
서울 서초구 대법원. /남용희 기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남용희 기자

대한민국은 고소·고발 공화국이다. 최근 형사 고소·고발건수는 연평균 50만건대에 이른다. 인구가 곱절인 일본의 50배 수준이다. 불필요한 고소·고발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다. 이는 논란이 되는 '검찰권 남용'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적 낭비에 한 몫하는 '죄를 만드는 법', '걸면 걸리는 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급증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비롯해 한국에서만 건재한 업무방해죄, 헌법이 명시한 기본권과 모순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등이 좋은 예다. 이에 <더팩트>는 기획 '걸·리·법'(걸먼 걸리는 법) 3회 연재를 통해 직권남용·업무방해·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얼마나 남용·악용되면서 폐해를 낳는지 살펴봤다.<편집자주>

노동자 탄압부터 공권력 남용 논란까지…모국인 프랑스는 폐지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조국(55) 전 법무부 장관이 29일 첫 재판을 앞뒀다. 최초로 의혹이 제기된 자녀 입시 관련 혐의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 건 '조지워싱턴대학교 업무방해'였다. 바다 건너 해외 대학교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어떻게 입증할지 이목이 쏠린 한편 각계에서는 "해외 대학 업무까지 신경써주는가"라며 검찰 기소에 냉소섞인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정작 업무방해죄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는 업무방해죄 조문을 삭제했고, 매개 역할을 한 일본에서는 사문화 된지 오래다. 모법이 사실상 힘을 잃었는데도 한국 형사재판 법정에서는 건재하다.

◆헌법상 '기본권' 위에 있는 업무방해죄

1800년대 프랑스에서 노동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제정된 업무방해죄는 일본으로 건너오며 노동 이외 분야까지 아우르게 됐다. 일본 형법을 모법으로 삼은 한국에서 업무방해죄는 "사람이 직업 등 사회생활상 지위에 근거해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일"을 방해했다면 누구나 처벌대상이 된다.

기원이 기원인 만큼 한국에서도 업무방해죄 적용 대상은 농성이나 파업을 하다 사용자 측에게 고발당한 노조원들이 대다수다. 헌법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지만, 하위 법률인 형법상 업무방해죄에서 만큼은 사안에 따라 처벌이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2010년 4월 헌법재판소는 정당한 쟁의행위는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위력으로써 업무를 방해한 자는 제외한다고 처벌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듬해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합법적인 파업이라도 사용자 측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을 경우 업무방해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법원에서 노조원들의 행위를 분석해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처벌하고, 합법적인 행위였어도 사용자가 큰 피해를 입었다면 또 처벌 대상이 되는 현실이다. 비교적 최근인 2016년 성과연봉제 폐지를 요구하며 72일간 최장기 파업을 단행한 철도노조에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내려 파업의 형사책임 면책 범위가 넓어졌다. 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해당하는 행위도 사법부 판단과 사용자 주장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모순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에서 2018년 9월 발행한 논문 '철도파업과 형사면책 범위 확대의 역사'에서는 "한국 헌법은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은 단체행동권의 행사인 쟁의행위에 대해 민사면책과 형사면책을 규정하고 있지만 집단적 노무제공 거부에 따른 단순파업도 위력업무방해죄가 적용돼 노조간부들이 형사처벌을 받아왔다. 한국의 노동권 보장 수준은 19세기 중반의 단결금지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았다"고 꼬집었다.

류하경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역시 "형사면책규정으로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쟁의 행위는 형사처벌하지 않는다고 보호하고 있고, 판례 역시 확립돼 있다. 이를테면 사용자에게 아무런 통보 없이 전격적으로 파업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하는 등 처벌 범위를 극히 좁게 해석하고 있다"면서도 "이를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잘 운용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아직 아쉬운 점이 많다. 정당한 쟁의행위인데도 재판에 넘기고, 노동법보다 일반 형법이나 민법을 적용해 인색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도 아직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3년 12월 민주노총 철도노조원들이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투입된 경찰 인력과 대치 중이다.(기사내용과 무관) /더팩트DB
지난 2013년 12월 민주노총 철도노조원들이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투입된 경찰 인력과 대치 중이다.(기사내용과 무관) /더팩트DB

◆채용비리 단골 혐의 '한국식' 업무방해…처벌은 '반쪽'

업무방해죄 적용 분야를 노동에서 사회 전 분야로 확장한 일본 역시 최근에는 처벌 사례가 거의 없다. 한국은 사회 전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한다. 사회 고위층의 청탁을 받아 그 자녀를 채용하는 이른바 '채용비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채용비리 사건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경우 핵심 인물이라 볼 수 있는 청탁자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인사담당 직원들만 업무방해죄로 처벌받는 일이 대다수다. 판결만 놓고 보면 청탁자는 없지만 특혜는 발생한 기이한 사건이 된다.

지난 2017년 법원은 임영호(65) 당시 국회의원의 아들 임 모 변호사를 채용하기 위해 채점 기준을 변경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수일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과 이상구(58) 전 부원장보에 대해 각각 징역 1년,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사건의 원인이 된 임 전 의원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 역시 "선고를 하면서도 사실 끝까지 찝찝한 부분이 있는데, 피고인들은 범행에 의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 사건 행위를 하게 한 방아쇠는 따로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 부분을 다루지 못해 미완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강원랜드 측에 자신의 지인 10여 명이 취업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권성동(60) 자유한국당 의원 사건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이순형 부장판사)도 권 의원에게 책임을 묻지 못했다. 권 의원이 채용 청탁을 했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권 의원에게 청탁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춘천지법에서 재판을 받던 최흥집(69) 전 강원랜드 사장과 인사팀장 A씨는 지난해 1월 각각 징역3년, 징역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딸을 KT에 부정채용시킨 혐의로 기소된 김성태(62) 자유한국당 의원 사건도 같은 양상이다. 검찰은 약 1개월 전 권 의원이 업무방해죄에서 무죄로 풀려난 걸 의식했는지 김 의원에게는 뇌물죄를 적용했지만 사건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신혁재 부장판사)는 "뇌물 공여와 수수 사실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같은 사안으로 업무방해죄에 걸려든 이석채(75) 전 KT 회장과 임직원들은 모두 유죄를 선고 받았다. 이들 중에는 김 의원 딸의 채용적격성 여부를 가감 없이 보고하는 등 공정한 채용을 위해 노력한 임원도 포함됐다. 결국 업무방해죄에서 보호법익으로 삼는 '업무'에 가장 가까운 임직원들이 처벌받고, 보호법익을 위협한 원인 제공자는 청탁 행위는 증명이 어렵다는 특수성으로 면죄부를 받은 셈이다.

조국(55) 전 법무부 장관 부부는 자녀 입시비리 의혹과 관련해 업무방해죄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등으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조 전 장관의 모습. /임세준 기자
조국(55) 전 법무부 장관 부부는 자녀 입시비리 의혹과 관련해 업무방해죄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등으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조 전 장관의 모습. /임세준 기자

◆피해 '예상'만 돼도 형사처벌 가능

현행법은 실제로 업무방해 결과가 발생하지 않고, 피해가 예상되더라도 업무방해 범죄가 성립한다고 본다. 쉽게 말해 피해자 측이 "업무를 방해받은 적 없다" 또는 "업무를 방해했는지도 몰랐다"고 말해도 기소와 처벌이 가능하다. 이를 위험한 상태를 야기한 것만으로도 범죄가 성립된다 해 '위험범'으로 분류하는데, 구성요건에 있어서만큼은 방화, 폭행죄와 같은 취급이다. 이를 놓고 법조계에서는 업무방해죄 형사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공권력 남용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례로 조국(55) 전 장관과 부인 정경심(58) 동양대학교 교수는 자녀 입시비리와 관련해 업무방해죄로 기소된 사례를 들 수 있다. 검찰은 조 전 장관 부부가 아들이 조지워싱턴대학교 재학 시절 시험 문제를 대신 풀어줘 담당 교수의 성적 사정업무를 방해했다고 봤다. 그러나 해당 시험이 격주 간격으로 치러지는 퀴즈 시험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공소사실상 조 전 장관 부부의 행동이 얼마나 교수의 채점 업무에 피해를 입혔는지 모호해졌다.

딸의 의학전문대학원 입시를 위해 표창장 등을 위조했다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적용받은 정 교수 사건 역시 잡음이 많다. 22일 1차 공판에서 다뤄진 내용을 종합하면, 부풀려진 서류로 지원해 입학 사정 업무를 방해했다고 본 서울대학교 의전원은 불합격해 결과가 발생조차 하지 않았다. 합격한 부산대학교 의전원 역시 검찰이 "부풀리는 형태로 위조됐다"고 본 내용이 대법원 판례상 위계로 볼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황이다.

업무방해죄 피해 범위를 무한정 넓히다 보니 검찰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은경(64) 전 환경부 장관의 재판에서 검찰은 공소장 때문에 유달리 곤욕을 치렀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김 전 장관의 업무방해 혐의의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서였다. 재판부 지적으로 변경된 공소장에도 예비적 공소사실에 김 전 장관의 공범으로 지목된 환경부 인사팀 공무원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대해서는 피해자로 기재된 모순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는다면 수년 전 자녀의 학업을 도운 과정까지 형사재판 심판대에 오르는 '한국식 업무방해죄' 앞에서 누구도 온전치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피해가 반드시 발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구성요건 역시 불필요한 수사와 기소, 나아가 형사처벌까지 만들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도 가능하다.

업무방해죄 사건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현행법의 업무방해죄는 처벌 범위가 굉장히 포괄적이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식"이라며 "한 번은 피해자 측에서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강력히 표명했는데도 결국 유죄가 선고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완전한 비범죄화가 어렵다면 최소한 친고죄로 분류하고, 업무방해 전제가 되는 위력과 위계도 사기죄에 해당할 만큼 심각한 기망 행위일 때만 인정하도록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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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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