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걸․리․법①] 고소·​​​​​​​고발 연 1만건 넘어…​​​​​​​'직권남용죄 남용 시대'
입력: 2020.01.27 00:00 / 수정: 2020.01.29 10:03
박근혜 정부 당시 불거진 국정농단·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각계 인사들이 대거 기소되며 직권남용죄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사진은 지난 2017년 3월 22일 오전 6시55분께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박근혜(68) 전 대통령이 조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나서고 있는 모습. /더팩트DB
박근혜 정부 당시 불거진 국정농단·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각계 인사들이 대거 기소되며 직권남용죄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사진은 지난 2017년 3월 22일 오전 6시55분께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박근혜(68) 전 대통령이 조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나서고 있는 모습. /더팩트DB

대한민국은 고소·고발 공화국이다. 최근 형사 고소·고발건수는 연평균 50만건대에 이른다. 인구가 곱절인 일본의 50배 수준이다. 불필요한 고소·고발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다. 이는 논란이 되는 '검찰권 남용'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적 낭비에 한 몫하는 '죄를 만드는 법', '걸면 걸리는 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급증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비롯해 한국에서만 건재한 업무방해죄, 헌법이 명시한 기본권과 모순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등이 좋은 예다. 이에 <더팩트>는 기획 '걸·리·법'(걸면 걸리는 법) 3회 연재를 통해 직권남용·업무방해·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얼마나 남용·악용되면서 폐해를 낳는지 살펴봤다.<편집자주>

'정치적 보복·​​​​​​​정쟁도구' 악용 우려…"기준 확립에 힘써야"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직권남용죄가 전성시대를 맞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태와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연루된 정계·법조계 인사가 직권남용죄의 그물에 무더기로 걸려들었다. 수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죄명이 고위 공무원들을 연이어 심판대에 올리자 굵직한 정치적 사건 고발장에 빠지지 않는 단골 혐의가 됐다. 그러나 사법부의 시선은 난감하다. 피고인의 직무 권한 범위와 남용 여부를 판단하기 여간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검찰청으로 향하는 고발인의 품에는 여전히 직권남용죄가 새겨진 고발장이 있다.

◆'직권'도, '남용'도 기준이 없다

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직권남용죄를 규정한다. 직권이란 공무원의 직무 권한을 뜻하고, 타인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행위를 '남용'으로 본다. 직권남용죄가 성립되려면 이 두 가지 조건을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

유·무죄를 가를 구성요건이지만 현행법은 공무원의 직무 범위와 남용의 기준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직권남용죄 사건 재판에서는 전제가 되는 직무 권한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실제로 피고인의 행위가 부당해도 직무 권한에 속하지 않아 직권남용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판례가 적지 않다.

지난 2010년 아프가니스탄 재건지원단 본부 지원과장 A씨는 부하인 인사장교와 군수장교에게 점심도시락 심부름을 시켰다. 국방부 검찰단은 A씨를 직권남용으로 보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지만, A씨의 헌법소원으로 사건을 받아든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달랐다. A씨의 직무 권한 중 '도시락 심부름'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비교적 직무 범위를 포괄적으로 보는 정계 인사들도 직무 권한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혐의를 벗기도 한다.

다스(DAS) 실소유주 의혹 등으로 기소돼 2월 항소심 선고를 앞둔 이명박(79) 전 대통령은 공무원들에게 다스 미국 소송 지원과 상속세 절감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를 대통령으로서 직무 권한을 남용해 공무원들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직권남용 행위의 전형이라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대통령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가 될 수는 있다"면서도 "대통령으로서 공무원에게 지시할 일반적 사항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직권남용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결국 지시한 행위 자체는 부당해도, 소송 지원과 세금 절감방안 검토는 대통령의 직무 권한이 아니라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국정농단' 사태 중심에 선 박근혜(68) 전 대통령이 KT에 특정인을 채용하라고 요구한 행위 역시 사기업을 상대로 한 채용 지시는 대통령 직무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는 한편 "무죄 판단에 잘못이 있다는 상고 이유는 모두 기각한다"고 판시해 사실상 무죄가 확정됐다.

직권에 해당해도 혐의가 무조건 성립되는 건 아니다. 직무 권한에 속한 행위인 동시에 위법한 지시였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이미 직무 범위 내에 있는 행위인 이상 불법성을 입증하기란 까다롭다. 부당한 행동으로 보이는 사건도 직권남용죄 만큼은 면죄부를 받기도 한다.

서지현(47․사법연수원 33기) 수원지검 성남지청 부부장 검사를 강제추행한 뒤 논란이 커지자 보복성 인사 조치를 한 혐의로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안태근(54) 전 검사장의 상고심이 대표적인 예다. 대법원은 안 전 검사장의 사건을 놓고 "검사 인사에 관한 직무집행을 보좌하는 실무 담당자는 일정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돼 업무 재량을 가진다"면서도 "안 전 검사장이 서 검사를 수원지검 여주지청에서 창원지검 통영지청으로 발령한 조치가 검사 전보인사의 원칙과 기준을 위반하거나, 직권남용죄에서 규정하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직권남용 고소고발은 늘지만 기소율은 0%대

결국 직무권한 범위 내 행위라는 걸 열심히 증명하면, 또 말 그대로 '권한'이라 남용으로 볼 수 없다는 벽에 부딪히는 딜레마다. 직권과 남용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판례도 확립되지 않아 사실상 직권남용죄지만 직권도, 남용도 없는 상태다.

직권도, 남용도 정의가 모호한데다 이 법의 유일한 적용대상은 공무원이다.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고위 공무원의 권한 남용을 단죄한다는 기본적 취지에만 입각해 고발 건수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매년 5000건 언저리에 맴돌던 직권남용죄 고발건은 국정농단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이 불거지기 시작한 2017년을 기점으로 약 1만건에 달한다. 이에 반해 구공판(기소) 건수는 백분율로 환산했을 때 최근 10년간 0.4%도 넘기지 못했다. 농단 의혹에 연루된 각계 인사들의 기소 소식이 끊이지 않았던 2018년도 0.35%(48건)에 불과했다. 고발인들도 무엇이 직권이고 남용인지 알지 못한 채 고발장을 제출하거나, 수사기관도 재판에 넘길 만큼 범죄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직권남용죄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단 걸고 보자'는 식의 정치 보복성 고발이 잇따른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13일 시민단체들은 정경심(58) 동양대학교 교수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불허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송인권 부장판사를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재판을 진행 중인 판사가 고발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자유한국당 등은 최근 검찰 인사를 단행한 추미애(62·사법연수원 14기) 법무부 장관과 밑그림을 짠 것으로 알려진 이성윤(58‧23기)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해 직권남용죄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추 장관이 8일 인사를 단행한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추 장관의 인사로 신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 된 심재철(59·27기) 부장 역시 조국(55) 전 법무부 장관을 불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직권남용죄 고발 대상이 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으로 1심 재판을 받고있는 양승태(72) 전 대법원장은 적용된 혐의가 무려 47개다. 이중 직권남용죄가 41개를 차지한다. 양 전 원장은 지난해 2월 첫 공판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공소장을 만들었다", "특정인을 처벌하기 위해 취임일부터 퇴임일까지 모든 직무를 샅샅이 뒤져 뭔가 법에 어긋나는 걸 찾아내는 수사"라고 직권남용죄를 무더기로 적용한 검찰을 맹비난했다.

보복성 고발만큼 수사기관의 선별적 수사와 기소도 화두다. 조 전 장관은 이미 전방위적 강제수사 끝에 29일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인사 단행 하루만에 고발당한 추 장관 사건은 23일 수원지검 공공수사부에 배당돼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반면 자녀 입시비리와 직권남용 등 유사한 의혹으로 22일 10차 고발장에 제출된 나경원(57) 자유한국당 의원 사건은 석 달이 넘도록 고발인 조사에 그친 상태다.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는 지난달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송인권 부장판사를 직권남용죄로 고발했다. 사진은 이들이 같은 달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동양대 총장 표창장 위조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송인권 부장판사를 허위공문서작성 혐의로 검찰에 고발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는 지난달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송인권 부장판사를 직권남용죄로 고발했다. 사진은 이들이 같은 달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동양대 총장 표창장 위조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송인권 부장판사를 허위공문서작성 혐의로 검찰에 고발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직권남용죄가 정치적 보복수단으로 전락한데는 적폐청산이라는 명분 아래 직권남용 행위에 대한 구체적 논의 없이 기소가 이뤄진 것에서 비롯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가공무원들의 범죄는 법치주의 질서를 해치는 중대한 사안이면서도 형법 죄명 중 걸리는 부분이 없는 경우가 많아 직권남용죄는 존속돼야 한다"면서도 "모든 형법 사건이 그렇듯 기소와 처벌은 최우선 수단이 아닌 최후수단으로서 작용해야 한다. 범행 내용 실체 파악이 미흡한 상황에서 무엇이든 걸릴 수 있는 직권남용죄부터 적용하다 보니 직권남용이 남용되는 사태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사법부는 유의미한 판례를 축적하고, 공직 사회 역시 공무원 남용 행위를 적극적으로 징계하는 등 직권남용 행위 기준을 확립하는데 힘써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하태훈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권남용의 기준을 법제화하는 건 공직사회를 경직시킬 우려가 있어 회의적"이라며 "사법부에서 이미 재판에 넘겨진 사건을 신중하게 심리해 결론을 내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준이 확립될 것이고, 공직 사회에서도 각 직역 공무원의 직무 권한을 명확히 하고 남용 행위를 감시해야 한다. 그 결과 제2의 농단 사태도 방지하고 직권남용 기준도 구체화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인 만큼 정치권에서도 사법부나 검찰의 힘을 빌어 직권남용죄를 정쟁 도구로 삼는 건 삼가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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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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