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 -고소인이 된 정치인②] 대한민국은 '명예훼손·모욕죄' 전성시대
입력: 2019.09.06 05:00 / 수정: 2019.09.06 05:00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최근 자신의 기사에 악성댓글을 단 170개의 아이디를 모욕죄로 고소했다./남윤호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최근 자신의 기사에 악성댓글을 단 170개의 아이디를 모욕죄로 고소했다./남윤호 기자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루머와 악플 등으로 고통받던 연예인들이 몇 년전부터 악플러를 고소하는 일이 늘고있다. 연예인들은 악플을 '소리없는 살인'에 비유하며 일부 네티즌들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법적으로 강경 대응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이런 분위기가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6월 자신과 관련된 기사에 악성 댓글을 게시한 170여개 아이디를 모욕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인적사항이 확인된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에 들어갔다. 위법을 저질렀으면 법적인 책임을 져야한다. 다만 공적 인물인 정치인에게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고 형사처벌까지 몰리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더팩트>는 '국회의원의 일반인 고소'가 민주주의 공론장을 위협하는 부적절한 행위인지, 정치인이라면 본인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감수해야 하는지, 아니면 네티즌들의 경각심 재고를 위해 고소를 하는 것이 옳은지 등을 '2편의 기획보도'로 짚어본다. 2편에서는 '모욕죄'를 대법원 판례 등을 통해 사례별로 살펴보고, 실제 고소를 당했을 경우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전문가들로부터 조언받았다.<편집자주>

오픈넷 "표현의 자유 침해 및 명확성 원칙 위반" 지적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직접 구혜선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회사 법무팀은 SNS 등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네티즌들의 고소 여부도 논의하고 있다."

배우 오연서 소속사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는 4일 불거진 안재현과의 염문설에 '사실무근'이라며 이같은 공식 입장을 밝혔다.

몇 년전 부터 연예인이 소속사를 통해 명예훼손으로 누군가를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6일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된 루머에 휩싸였던 배우 김성령 씨도 소속사를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자에 대해선 명예훼손 혐의로 조치할 예정"이라며 강력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최근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고소·고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모욕사범 연도별 처리 인원(단위:명)/대검찰청 제공
모욕사범 연도별 처리 인원(단위:명)/대검찰청 제공

대검찰청에 따르면 모욕죄 처리인원 수는 2004년 2225명에서 2014년 2만 7945명으로 약 12.5배 증가했다.

대검찰청은 2015년부터 모욕죄에 해당하는 악성 댓글에 대해 원칙적으로 엄정 처벌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인터넷 악성 댓글 고소사건 처리방안'을 시행 중이다. 같은해 세월호 사건 구조작업 허위 인터뷰 논란에 휩싸인 홍가혜 씨가 인터넷 비방 댓글 게시자 1500명을 고소한 후 고소취소 조건으로 200만~500만원을 받은 일이 계기가 됐다. 다만 대검은 고소남용 해당 건은 각하나 기소유예 등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합의금을 목적으로 다수인을 고소한 측에서 피고소인을 협박하거나 부당하게 고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면 공갈죄, 부당이득죄 등을 적극 검토한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의 '사이버 명예훼손' 사건은 최근 5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대검찰청 집계 결과 2018년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접수된 사건은 1만 4661건으로 2014년 7447건과 비교해 2배 늘었다. 사이버 명예훼손의 경우 SNS 게시물과 댓글 등을 통한 전파 속도가 빠르고 피해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최대 형량이 징역 7년에 이른다. 일반 명예훼손 징역 5년보다 더 가중됐다.

◆'아나운서 비하' 강용석이 무죄 받은 이유

그렇다면 명예훼손과 모욕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모두 공연하게 상대방을 비방하는 취지지만 적용되는 경우는 조금 다르다. 명예훼손죄는 구체적인 사실 또는 구체적인 허위 사실을 언급하는 경우, 모욕죄는 구체적인 설명 없이 비방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다만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어떠한 표현이 거칠고 무례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야기했더라도 그 내용이 그 상대방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것이 아니라면 모욕이라고 할 수 없다.

사회통념상의 욕설이 대체로 모욕으로 인정된다. 피해자의 사망한 아들에 대해 "빨갱이"라고 하거나, 간호사에게 "뚱뚱해서 돼지 같은 것이 자기 몸도 이기지 못하면서 남을 돌보나"라고 발언한 피고들에게는 모욕죄가 성립됐다. 반면 "부모가 그러니 자식도 그런 것이다", "갑질을 한다"는 발언에는 모욕죄 성립이 되지 않았다. 대법원은 "부모가 그러니 자식도 그런 것이다"라는 발언에 대해 "그와 같은 표현으로 인하여 상대방의 기분이 다소 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너무나 막연하여 그것만으로 곧 상대방의 명예감정을 해하여 형법상 모욕죄를 구성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봤다.

발언을 하게 된 경위와 횟수, 의미와 전체적인 맥락, 발언을 한 장소, 발언 전후의 정황 등도 고려된다. 대법은 "피고인의 발언은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무례하고 저속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 언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강용석 변호사 /더팩트 DB
강용석 변호사 /더팩트 DB

강용석 변호사가 국회의원 시절이던 2010년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여했던 학생들과 저녁을 하는 자리에서 장래 희망이 아나운서라고 한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 OO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는 등의 말을 해 엄청난 논란이 야기됐던 사건 기억할 것이다. 대법원은 일명 '여성 아나운서 비하 사건'에 대해 집단표시에 의한 모욕죄 성립을 부정했다.

강 변호사는 당시 8개 공중파 방송 아나운서들로 구성된 모 연합회 회원인 여성 아나운서 154명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1.2심 법원은 집단표시에 의한 모욕죄 성립을 인정했다. 다만 대법원은 해당 연합회에 등록된 여성 아나운서 수는 295명에 이르는 등 '여성 아나운서'라는 집단 자체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피고인이 그 연합회만을 구체적으로 지칭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강 변호사의 발언 내용이 매우 부적절하고 저속하기는 하지만, 피해자들을 비롯한 여성 아나운서들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평가를 근본적으로 변동시킬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 등의 이유를 들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역시 '법잘알'?

이런 이유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네티즌들을 '모욕죄'로 고소한 것은 법을 제대로 알고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단법인 오픈넷측은 "나 원내대표가 명예훼손을 문제 삼았다 구체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원의 인정을 못받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단순히 부정적 의견, 감정표현, 비하적 단어 사용만으로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모욕죄'를 이용해 본인에 대한 여러 부정적 댓글을 포괄적으로 고소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정치적 의도로 모욕죄 고소를 진행한 것으로 의심된다"면서 "일부 네티즌들이 형사처벌 받을까 우려 된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 고소건의 법률상담을 전담하고 있는 손지원 변호사는 "이번 사안들 중 대부분은 나 원내대표의 공적 지위와 맥락에 비추어 볼 때 그 행태나 의혹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모욕적 표현이 일부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고, 이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이므로 불기소나 무죄 결론이 나올 확률이 크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성적인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에 우려는 된다고 했다. 또 "최종적으로 불기소나 무죄 결론이 나온다고 해도 공인들의 모욕죄 고소와 수사 개시 그 자체만으로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적 표현 행위는 심각하게 위축될 수 밖에 없다"며 "비판자 170여명의 통신자료(가입자 인적사항)가 경찰에 제공돼 하루아침에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해 수사 대상이 됐고, 이러한 사실은 다른 국민들에게도 비판적 표현을 하지 말라는 위협적 메시지가 됐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와 대통령 사저 등을 폭파하겠다고 협박한 강모 씨가 2015년 10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기 수원 남부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청와대와 대통령 사저 등을 폭파하겠다고 협박한 강모 씨가 2015년 10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기 수원 남부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오픈넷은 특히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 보장을 강화하겠다던 대선 공약을 잊었냐"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13일 서울 강북경찰서는 일간베스트 게시판에 문재인 대통령 살해 예고 글을 올린(8월 3일자) 작성자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것을 파악하고 국제공조수사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 작성자는 권총과 실탄이 담긴 사진과 문 대통령 합성 사진을 연달아 게재한 뒤 "문 대통령을 죽이려고 총기를 불법으로 구입했다"는 글을 올렸다. 경찰은 해당 권총 사진이 2015년 다른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을 그대로 가져온 것임을 확인했으나 게시글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했다. 오픈 넷은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존재할 수 없는 국가원수모독죄 수사나 다름 없다"며 "박근혜 정부때와 달라진 것이 뭐냐"고 꼬집었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 살해 협박 사건 당시 김 모씨는 112범죄신고센터에 전화 걸어 청와대 폭파하겠다, 이 대통령을 죽여버리겠다고 말해 재판에 넘겨졌지만 법원은 "특정 부분의 표현만을 문제 삼아 협박죄를 적용할 경우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을 봉쇄하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마저 억누를 소지가 있어 적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대법원은 국회의원은 면책특권 등으로 통상의 공직자 등과도 현격히 다른 발언의 자유를 누리는 만큼 공적 영역에서의 활동 등에 대한 비판도 더욱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손 변호사는 "정치인이나 공직자 등 공적인 인물의 공적 영역에서의 언행이나 관계와 같은 공적인 관심사안은 그 사회적 영향력 등으로 더 광범위하게 공개.검증되고 문제제기가 허용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유엔 "단순한 감정표현 따른 형사처벌 안 돼"

오픈넷은 오래 전부터 '모욕죄의 위헌성'을 지적해 왔다. 국내 모욕죄는 강자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언사를 하지 못하도록 약자의 입을 막는 도구로 남용됐기 때문이다. 오픈넷은 이미 2012년 형법 제311조 모욕죄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며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무엇보다 판단이 너무 추상적인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일반인 뿐 아니라 판사 조차도 어떤 표현이 모욕적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트위터틀 통해 상대방 거주지를 '똥파리가 사는 곳'으로 비판한 청구인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손 변호사는 "이런 일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이자 선량한 개인에게 생각지도 못한 전과를 남기는 등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효과가 매우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UN인권위원회 역시 사실적 주장이 아닌 단순한 견해나 감정표현에 대해 형사처벌이 이뤄져서는 안된다고 선언했다. 특히 UN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역시 한국 정부에 이를 지적한 바 있다.

법률사무소 시대 조애진 변호사도 "현재 야당의 모습들이 국민정서와 반하고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네티즌들이) 풍자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정도 표현도 용인하지 못한 채 모욕죄 등 형사적으로 몰고 간다면 그 어떤 표현이나 풍자 등에 대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정치인은 공인인 만큼 자신에 대한 평가는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인데 오히려 사람들이 나를 이런 식으로 풍자하고 있다면 본인을 되돌아 보고 성찰이나 반성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자신에 대한 정책평가를 높여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특히 "이런 일들을 사법부로 끌고 가서 사람들을 단죄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는 올바른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신종범 가천대 교수도 "모욕죄 역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은 모욕 행위를 명예훼손과 마찬가지로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독일에서는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규정하고는 있지만, 모두 친고죄로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법 적용을 거의 하지 않아 사문화 됐다"고 설명했다.

고소를 맡아 진행한 자유한국당 당무감사실은 "성적인 모욕이나 딸을 언급하며 비하하는 내용의 댓글이 고소 대상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누리꾼 역시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서 벗어난 혐오스러운 발언 등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고소당한 A씨가 직접 제작한 그래픽/ A씨 제공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고소당한 A씨가 직접 제작한 그래픽/ A씨 제공

나 원내대표의 고소로 직접 경찰 조사를 받은 A씨는 본인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직접 '경찰 조사 프로세스' 등을 기록하고 <더팩트>에 제공했다.

경찰 조사 때 받은 질문은 ▲나경원 의원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 ▲왜 이런 댓글을 쓰게 됐나, 댓글을 언제 달았나 ▲댓글을 달면 나 의원이 모욕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나 ▲정치에 관심있나 ▲처벌받게 된다면 어떨 것 같나 ▲합의 의사 있나 등이다.

댓글을 달 때 절대 삼가야 할 점은 ▲욕설 쓰지 않기. 여성 국회의원의 경우 성적인 표현 ▲신체나 가족에 위해를 가한다는 표현 쓰기 않기 ▲'나' 화법으로 말하기 등이다.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경찰관이나 수사관으로부터 폭언, 폭행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거나 인권침해가 있었다면 바로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또 상황에 따라 각 경찰서 청문감사관실(국번없이 182)에 수사관 교체를 요청, 검찰 신고센터(국번없이 1301)에 신고하면 된다.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을 수도 있다. 이번 나경원 원내대표 모욕 혐의 건에 한해 오픈넷은 수사 중인 피의자가 요청할 경우 선별을 통해 상담 및 법률지원에 나설 계획이다.(오픈넷 사무국 master@opennet.or.kr)

수사 전이라면 대한변호사협회, 서울변호사회의 무료상담 청구를 이용할 수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국번없이 132)은 사이버상담, 법률구조도 제공한다. 서적으로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출간한 '쫄지마 형사절차-수사편'이나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여성을 지킬 최소한의 법률상식), 주진우 기자의 '주기자의 사법활극' 등을 참고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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