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아 고소된 A씨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직접 제작한 그래픽 /A씨 제공 |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루머와 악플 등으로 고통받던 연예인들이 몇 년전부터 악플러를 고소하는 일이 늘고있다. 연예인들은 악플을 '소리없는 살인'에 비유하며 일부 네티즌들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법적으로 강경 대응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이런 분위기가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6월 자신과 관련된 기사에 악성 댓글을 게시한 170여개 아이디를 모욕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인적사항이 확인된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에 들어갔다. 위법을 저질렀으면 법적인 책임을 져야한다. 다만 공적 인물인 정치인에게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고 형사처벌까지 몰리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더팩트>는 '국회의원의 일반인 고소'가 민주주의 공론장을 위협하는 부적절한 행위인지, 정치인이라면 본인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감수해야 하는지, 아니면 네티즌들의 경각심 재고를 위해 고소를 하는 것이 옳은지 등을 '2편의 기획보도'로 짚어본다. 1편에서는 나 원내대표의 고소로 실제 경찰에서 조사를 받은 한 30대 여성을 밀착 인터뷰했다. <편집자주>
나경원 원내대표 기사 댓글로 모욕죄 "밤잠 설쳐요"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지난 8월 초.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30대 여성 A씨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나경원 의원 기사에 댓글을 다신 건이 있는데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로) 나오셔야겠다. 요새 유명한 사건인데 알고 계시죠?"
처음에는 '보이스 피싱'이라고 확신하고 전화를 끊을 생각만 했지만, 통화가 길어질 수록 심각성을 알게 된 A씨는 점점 눈 앞이 깜깜해졌다. 당시 회사 차원의 중요한 계약을 위한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있었던 A씨는 경찰 전화를 받은 이후부터 경쟁사들이 프리젠테이션을 하든 말든 스마트폰에서 '나경원 고소', '기사댓글 고소' 등을 검색했다. 불편한 마음으로 임했던 PT는 당연히 망쳤고,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회사로 복귀해 상황을 알린 뒤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퇴근길엔 '내가 대한민국 인구 6000만명 중 100명안에 들었구나. 살면서 이런 순위권 안에 들어본 적 있었나. 운동회 때 달리기에서도 5등, 6등밖에 못했는데....'라는 급기야 이상한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이날부터 A씨는 본인과 같은 사례가 있는지 등을 유명 커뮤니티을 중심으로 찾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불안했기 때문이다. 혹시 이미 경찰 조사를 받은 분이 있다면 후기도 들어보고 싶고, 조언도 받고 싶었다고 했다. 급히 글을 작성했더니 의외로 많은 네티즌들이 댓글을 통해 위로하고 다독여줘서 그제서야 마음이 좀 안정됨을 느꼈다고 한다. 더불어 "너무 고마웠다"고 전했다.
'나 원내대표가 네티즌을 고소했다'는 내용을 담은 대부분의 기사에는 '작년 나경원 의원이 원내대표가 됐다는 기사의 댓글'이라고 나온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은 올해 3월 4일 '나경원 "국회 열겠다…국정난맥상 수수방관할 수 없다"라른 제목의 <연합뉴스> 기사에 단 댓글이 문제가 됐다고 밝혔다.
다수 언론은 나 원내대표가 증거로 제시한 기사는 '2018년 12월 11일 나경원 의원이 한국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는 내용'이었다고 보도했다. 또 이번 경찰 고소를 맡아 진행한 자유한국당 당무감사실이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 아이디 170개를 추렸다고 전했다. 해당 기사에는 7000개의 댓글이 달렸으나 현재 2252개 댓글은 삭제됐다.
하지만 A씨가 댓글을 단 기사는 보도를 통해 알려진 기사가 아닌 지난 3월 나 원내대표가 "국정난맥상 수수방관할 수 없다. 국회를 열겠다"고 발언한 내용의 기사다. 그녀는 "언론에 알려지거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사의) 내용과 달라 걱정이 더 깊어졌다"고 했다. 경찰 조사를 받는 날까지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이 기사에도 당시에는 2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으나 현재는 724개의 댓글은 삭제됐다.
2018년 12월 11일 <뉴스1>기사 캡처 |
연합뉴스가 3월 4일 '나경원 "국회 열겠다…국정난맥상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제목으로 게시한 기사 캡처 |
A씨는 해당 기사에 '명불허전 XX 1급 발암물질이다'라는 댓글을 게시해 나 원내대표로부터 고소 당했다. XX가 결정적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경찰 조사는 30분간 진행됐다. 신분 확인 뒤 본격 질문이 시작됐다. 경찰은 A씨에게 "왜 댓글을 달았나?", "본인이 작성한 것이 맞나? 제 3자가 봐도 모욕감이 든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모욕죄까지 포함해서 보진 않는다. 개인의 의견이라면 거기에 맞게 의견을 제시하셔야 한다", "이번 사안은 다른 대량 고소 건과 다르다. 연예인이라든지...다른 사안과 달리 나경원 의원이다 보니깐 조금 더 강하게..." 등 질문과 이 건이 엄중한 사안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A씨는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국정을 해야 하고, 국회를 열어야 하는 것인데 몇 달간 파행하다 (나 원내대표가)국회를 열겠다 하니, 국회를 여는 것조차 기사가 나는구나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서 댓글을 달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이 댓글을 보고 (나 원내대표의)기분을 나쁘게 하려는 그런 의도는 없었다. 정치인에 대한 그런(일반적인) 표현이라 생각해주셨으면 좋겠고... 굉장히 작은 국민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사 막바지가 되자 두려운 마음에 '벌금 이상이 나올 수 있나?', ' 반성문을 쓰면 참작되나?' 되려 경찰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경찰은 "무혐의, 직결심판, 기소유예, 벌금 등 사건처리는 여러가지다. 검사가 칼을 쥐고 있다. 이날 조사를 바탕으로 검사나 판사가 동종의 전과가 없는 등 모든 정황을 참작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답했다. 경찰은 마지막에 "꼭 해당 댓글을 삭제하라"고 A씨에게 충고했다. 검찰이나 법원이 댓글 삭제를 반성의 의미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차명진 부천소사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세월호 참사 5주기에 '자식 죽음 징하게 해쳐먹어'라고 막말을 하는 등 한국당발 논란이 계속 일자 4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나경원 원내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
나 원내대표 모욕 혐의로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요청할 경우 선별해 상담 및 법률지원을 하는 '사단법인 오픈넷'은 4일 기준 6건의 상담 요청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오픈넷 담당자는 "이들 모두가 현재는 익명으로 메일로만 상담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다수가 A씨와 같은 'XX'이라는 단어는 포함했고, 일부는 성적인 내용을 담은 댓글을 작성했다.
A씨는 "경찰이 154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는데, 경찰 조사 다녀온 후기가 거의 전무하다"며 "살며서 경찰 조사를 받게 될 줄 몰랐는데, 가기 전 '경찰 조사 후기' 등 관련 글 하나가 너무 고맙고 소중했던 만큼, 아직 조사를 받지 않은 분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인터뷰를 할 용기를 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겁 먹기 보다 무료 상담을 받거나, 자세히 알아본 뒤에 꼭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라"고 조언했다.
사건을 접수한 서울경찰청은 해당 사건 수사를 영등포경찰서에 맡겼고, 현재는 피의자 주소지에 따라 각 관할 경찰서가 이들에 대한 촉탁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조사가 끝나면 주 수사 경찰서인 영등포경찰서가 결론을 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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