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특성화고②] 일은 노동자, 신분은 학생 …법적 보호 '공백'
입력: 2019.07.21 00:01 / 수정: 2019.07.21 09:48
지난해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 주관으로 제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고(故) 이민호군 사망 1주기 추모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 주관으로 '제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고(故) 이민호군 사망 1주기 추모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취업해도 대부분 위험한 비정규직 업무…'부속품' 인식 바뀌어야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특성화고에서 현장실습은 빠질 수 없는 교육과정이다. 남들보다 일찍 산업현장에 뛰어들어 실무를 익히고, 현장실습을 한 기업에 직원으로 채용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선배들이 혀를 내둘러도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요성에 비해 법적 관리는 허술하기만 하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는 특성화고등학교를 “특정분야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또는 자연현장실습 등 체험 위주의 교육을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고등학교”로 규정한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교육법령에서 명시한 것은 이뿐이다. 바로 아래 위치한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지정 기준만 8항에 달하는 것에 견주면 매우 단촐하다. 현장실습의 문제점과 대책은 여기서 출발한다.

◆기업‧실습생 눈치에 ‘들쑥날쑥’…법제화해야

법의 부재는 고스란히 학생의 몫이다. 실습환경에서 안전과 보건을 약속하는 것은 법이 아닌 사업주와 교장, 학생 본인이다. 취업의 열쇠를 쥔 사업주와 사실상 취업률로만 학교를 평가하는 교육부 사이에서 특성화고 교장은 학생의 안전에 우선순위를 두기 어렵다. 법적 사각지대 속에서 현장실습을 바라보는 교육당국의 태도는 들쑥날쑥하다. 교육부는 2018년 2월 ‘학습중심 현장실습의 안정적 정착방안’을 발표하고 실습 현장에 대한 안전 심사를 대폭 강화했다. 노동 중심의 조기취업형 현장실습은 아예 폐지해 최장 6개월이었던 실습 기간은 3개월로 줄어들었다. 늘어난 안전심사에 기업은 “차라리 안 뽑고 말지”라는 태도를 취했다. 특성화고 취업률 하락에 교육부는 1년도 안된 올해 1월 3학년 2학기를 전환학기로 설정하고 6개월간 현장실습을 하도록 방향을 틀었다.

전문가들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지위를 법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진숙경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장실습이 명확하게 학습의 일환으로 구분되지 않고, 사업장에서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법적인 노동자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현장실습생은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호법 대상자가 아니다. 고 홍수현 양, 고 김동준 군 등 실적 압박과 선임자의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여럿이지만, 이번에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역시 현장실습생에게는 먼 얘기다.

진 위원은 고등학생 신분이지만 사업주 면담과 신입직원 교육 등 사실상 채용과정을 거쳐 실제로 노동에 임하는 현장실습생의 특수한 신분을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현장실습생을 교육법이 적용되는 학생으로 볼 것인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노동자로 볼 것인지 줄다리기 할 문제가 아니다. 이를 위해 중등교육법을 통해 현장실습 제도를 수립하고, 노동자에 준하는 안전과 보건기준 등 세부적인 사항을 갖춰 재구성해야 한다. 진 위원은 “특성화고 활성화 정책이 시행된 지 10년이 다 됐는데 3학년 2학기만 되면 ‘아이냐, 일꾼이냐’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고수 중”이라며 “대학교 졸업반의 조기취업은 환영하면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에게는 애매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또 다른 형태의 고졸 차별이다”라고 꼬집었다.

◆졸업생 10명 중 8명이 비정규직…고졸 차별까지

2019년 경기비정규직지원센터는 특성화고권리연합회 경기지부, 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와 함께 경기도 소재 특성화고 졸업생 300명을 추적해 정규직 채용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300명 중 취업자는 244명이었고, 86.4%에 달하는 212명이 비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졸업생 10명 중 8명이 비정규직이다.

특성화고 출신 노동자와 비정규직 문제는 뗄 수 없는 관계다. ‘고졸’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여전한 상황에서 비정규직이 겪는 현실에 불만이 있어도 이직이 쉽지 않다. 올해 특성화고를 졸업한 석모(19) 씨는 “취업 준비 중 모 공기업 공고에 ‘4년 일하면 대졸자에 준하는 대우를 해준다’고 당당히 기재해 놓은 걸 봤다”며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도 급여부터 대우까지 차별이 많지만, 공기업까지 고졸 차별을 행하는 것을 보고 희망을 잃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종사자의 사고는 한국 사회의 숙환이다. 특성화고 출신 김태규 씨는 지난 4월 경기도 수원시의 한 건설 현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엘리베이터 사고로 사망했다. 얼마 전 3주기를 맞은 ‘구의역 김군’ 역시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였던 은성PSD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지난해 12월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죽음으로 새롭게 단장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에는 특성화고 출신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망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개정된 산안법에도 이들의 권리와 안전한 노동환경을 보장할 수 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구의역 참사 2주기 추모행사 당시 서울 광진구 2호선 구의역에서 열려 시민들이 헌화하는 모습. 구의역 참사는 비정규직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19세 김모군이 지난 2016년 5월28일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도중 승강장에 진입하는 열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목숨을 잃은 사고다. /더팩트DB
구의역 참사 2주기 추모행사 당시 서울 광진구 2호선 구의역에서 열려 시민들이 헌화하는 모습. 구의역 참사는 비정규직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19세 김모군이 지난 2016년 5월28일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도중 승강장에 진입하는 열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목숨을 잃은 사고다. /더팩트DB

가장 큰 허점은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 비정규직 종사자에게 맡기는 구조다. 피부에 스치기만 해도 신체질환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화학물질은 셀 수 없지만, 개정된 산안법은 '황산·불산·질산·염산 취급 설비'만을 위험 작업으로 분류했다. 이마저도 고용노동부의 승인만 받으면 하청업체 소속 직원에게 일을 맡기는 도급이 가능하다. 고 김용균 씨와 구의역 김군 참사가 일어난 발전소, 철도·지하철 설비 작업은 위험작업에 포함되지 않아 정부의 승인을 받을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다.

원청이 수시로 안전을 점검하고 문제 발생 시 책임져야 할 기종도 제대로 명시되지 않았다.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27개 주요 기종 가운데 4개에 그쳤다. 덤프, 굴삭기, 이동식 크레인 등 사고 위험이 다분한 기종도 빠졌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위험군으로 분류된 화학 물질도 사전조사에서 검출되지만 않으면 된다”며 “노동자 안전과 직결되는 업무를 도급 가능 대상으로 본 현 개정안은 본래 법안보다 후퇴한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건설현장 공사나 지하철 수리 등 위험작업을 외주업체 비정규직 종사자에게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가 여전히 법적으로 허용된 셈이다. 노동자가 원청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제도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산안법 제26조는 사업자는 물론 노동자 역시 작업 중 위험이 감지됐을 때 업무를 중지할 수 있다고 보장한다. 그러나 “사업주는 노동자의 작업 중지 행위에 합리적 근거가 있을 시 인사 불이익을 주면 안된다”, “위험이 감지되면 상부에 보고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등 관련 조항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를 어겨도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최 실장은 “현재는 외주화를 의미하는 도급 관련 법안을 위반하면 10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이 사실상 처벌 조항의 전부”라며 “사람이 죽어도 벌금 300만원에 그치는 한국 사회에서 현행법으로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청업체가 직접고용해 위험작업 노동자 안전환경을 보장해야 한다”며 “그것이 어렵다면 미약한 처벌조항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허점이라도 메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과 졸업생 대부분이 종사하는 외주업체 종사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할 방안이 법적으로도 미미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드는 법은 사회구성원의 인식과 맞닿아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값싼 노동력쯤으로 치부하고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부속품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은 고졸이라는 또 다른 편견을 안고 살아가는 특성화고 재학‧졸업생에게는 더 큰 상처를 줬다. 법전 골자는 수정하면 되지만, 인식이 바뀌는 데는 뾰족한 대안도 없다. 최 실장은 “특성화고 노동자를 바라보는 기업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비약적 발전을 이룬 한국경제 규모에 비해 노동인력에 대한 인식은 천박하기 그지없다”고 했다.

이상현 사단법인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이사장은 “특성화고 노동자들이 어린 나이에 현장에 뛰어들었다고 무시하는데 18, 19살이면 자기 선택권이 존중돼야 마땅한 나이”라며 “고졸 전성시대를 만들기 위해 독일어 ‘마이스터’를 따온만큼, 연소근로자보호법 등을 준용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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