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을 위한 행진곡②] 중국은 ‘회귀’ 홍콩은 ‘반환’…가깝고도 먼 사이
입력: 2019.06.23 00:10 / 수정: 2019.06.23 08:27
16일 오후 홍콩 빅토리아 파크 인근에서 시민들이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홍콩=이동률 기자
16일 오후 홍콩 빅토리아 파크 인근에서 시민들이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홍콩=이동률 기자

다음달 1일 반환 22주년…“중국 위해서도 홍콩 자치권 보장해야”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1990년대 한국에 홍콩영화 열풍을 일으킨 ‘중경삼림(重慶森林)’에는 두 명의 경찰이 등장한다. '경찰 663'(양조위)과 ‘경찰 223’(금성무)은 뭔가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전문가들은 반환을 코앞에 둔 홍콩인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담았다고 분석한다. 이종철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은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홍콩영화 캐릭터는 하나같이 불안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며 “혹자는 이 불안함을 매력으로 꼽지만 반환을 앞두고 정체성에 극심한 혼란이 온 당시 세대를 대변한다”고 풀이했다.

1840년 영국에 할양된 홍콩이 중국으로 돌아온 건 1997년 7월이다. 이에 앞서 1983년 당시 국가주석 등소평과 영국외상 제프리 하우어의 협상을 시작으로 6년 후 홍콩행정구 기본법(Basic Law)이 제정됐다. 이 법에는 ▲1997년 주권회복 후 50년 간 일국양제 유지 ▲2017년부터 행정장관 직선제 선출 ▲고도의 자치권 보장이 담겼다.

150여 년 만에 중국과 홍콩은 하나가 됐지만 '동상이몽'이었다.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은 ‘회귀(回歸)’, 홍콩은 ‘반환(返還)’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서도 나타난다. 7월1일 반환 22주년을 앞둔 지금, 1990년대 홍콩인의 불안함은 현실이 됐다. 중국은 자치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하나의 중국"을 추진하며 행정장관 선거부터 학교 교과목까지 무섭게 밀어부쳤다. 2017년부터 직선제를 보장한다는 약속까지 어기며 간선제로 선출된 캐리 람(62) 행정장관의 강제송환법 개정에 홍콩시민이 분노한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었다.

◆ 중국인과 홍콩인 ‘가깝고도 먼 사이’

정치적 대립은 종종 본토인과 홍콩인 개인의 갈등으로 까지 번진다. 2015년 홍콩을 방문한 본토 관광객이 4명의 홍콩 상인과 설전을 벌이다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정부가 2017년부터 직선제로 행정장관을 선출하겠다는 기존 약속을 어긴지 1년 된 해 일어난 일이었다. 중국 정부는 홍콩 당국에 가해자를 즉각 송환하라고 요구했지만 가해자 4명 중 2명이 국외로 달아났다. 본토에서 “홍콩인이 중국인을 미워해 살인자 도주를 방관했다”는 여론이 거세졌고 예약한 홍콩 여행상품 취소가 줄을 잇기도 했다.

지난 4월 홍콩 출신의 미국 유학생 프란시스 후이는 중국의 폐쇄적인 체제를 비판하며 홍콩인의 정체성을 강조한 칼럼을 써 악성댓글에 시달렸다. 후이의 칼럼을 본 본토 출신의 유학생들이 개인 SNS 계정을 찾아내 댓글로 “왜소한 여자애 주제에 중국을 비난하다니”, “처형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홍콩인인가 중국인인가” 논쟁은 한국에서도 벌어진다. 지난 3일 ‘이대학보’는 중국인 학생에게 받은 편지를 공개했다. 학부생이라 소개한 S는 지난달 이대학보에서 이화여대를 방문하는 관광객을 국적별로 분류한 보도를 보고 “왜 중국과 마카오, 홍콩을 분리해 표기했느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어린 시절 ‘우리의 대만’, ’중국은 하나다‘라고 배우며 자랐다”며 “홍콩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됐다. 자주국가라고 소개할 권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대만은 정치적으로 다른 나라지만 같은 문화권이라 중국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대학보 측은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명단에 중국과 대만, 마카오, 홍콩이 개별적으로 가입된 것처럼, 정치 외 영역에서 네 곳이 별도로 취급되는 것은 국제적 관례"라고 해명했다.

성균관대에 재학 중인 홍콩인 임완산(27)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1학년 때 수강생 대부분이 본토 사람인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국적을 묻는 교수의 질문에 임 씨가 “중국의 홍콩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앞자리에 앉은 본토 출신 학생은 “그래도 ‘중국의 홍콩’이라고 해주네”라고 비꼬았다. 임 씨는 “개인적으로 홍콩은 중국에 속한 도시라 생각한다”면서도 “민감한 사안으로 비웃는 본토 사람을 보니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책상을 발로 찼다”고 했다.

◆ 중국-홍콩 갈등 해소, 자치권 보장이 관건

중국이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선출 약속을 어기자 발생한 우산혁명, 반 중국인사를 중국으로 쉽게 넘기려는 목적이 뚜렷한 강제송환법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 등 중국과 홍콩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과도한 홍콩 자치권 개입을 갈등의 원인으로 꼽는다. 1989년 마가렛 대처 당시 영국 수상이 중국을 직접 방문해 체결한 ‘홍콩반환협정’은 50년 간 일국양제를 유지한다는 조건을 명시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홍콩 자치권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 정부는 홍콩 주권을 회복하면서 한 ‘마지막 약속’을 철저히 지킬 필요가 있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긴 시간 살아온 홍콩 정서를 이해해 50년이 지나더라도 향인치향(香人治香,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을 보장해 상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16일 오후(현지시각) 홍콩 정부청사 앞에서 시민들이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대행진을 하고 있다. /홍콩=이동률 기자
16일 오후(현지시각) 홍콩 정부청사 앞에서 시민들이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대행진을 하고 있다. /홍콩=이동률 기자

100년이 걸려 빼앗긴 땅을 되찾은 중국으로서는 홍콩 자치권 보장이 탐탁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홍콩의 자율권을 보장할 수록 중국의 미래가 밝다는 전망도 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이 기존 제조업 중심의 산업체제에서 샤오미, 화웨이 등 첨단산업에 눈을 뜬 것에 주목했다. 신 교수는 “중국 특유의 권위주의적 통치체제가 본토와 홍콩 사회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며 “이미 상당한 경제발전을 경험한 홍콩과 (경제발전의) 잠재력이 충분한 본토가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 중국 정부가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첨단산업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회 분위기가 발전의 기반이다. 중국이 G2 국가에 부응하는 경제발전을 이룩하려면 권위주의 정권에서 벗어나 열린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16일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 200만 명의 시민이 모인데 이어 20일 국회 격인 입법회 인근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홍콩 시민은 애초 20일 오후 10시(현지시간)까지 범죄인 인도법 완전 철회를 요구했다. 람 장관과 홍콩 당국이 시한이 지나도록 철회를 표명하지 않아 촉발됐다. 홍콩 시민이 자유를 외치며 중국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정점을 찍은 지금, 중국과 홍콩이 함께 발전할 첫걸음을 뗄 최상의 시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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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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