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홍콩 빅토리아 파크 인근에서 시민들이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홍콩=이동률 기자 |
'반송중' 외치는 재한 홍콩인들 "민주화 모범 한국인들 관심을"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지난 16일 오후 홍콩의 대표적 관광지로 꼽히는 빅토리아공원은 홍콩 인구 1/3에 달하는 200여만 명의 검은 인파로 가득 찼다. 제5대 행정장관 캐리 람(62)이 추진한 ‘홍콩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강행을 막기 위해서다. 홍콩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그만큼 홍콩 시민들은 절박하다. 중국 정부의 등쌀 아래 민주·법치주의가 벼랑 끝에 몰렸다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항쟁의 도시'가 된 고향과 2088km 떨어진 서울에서도 홍콩인들은 싸우고 있다. 가족이, 친구가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달려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도 움직였다. 조직은커녕 재한홍콩인을 묶는 소식통도 없지만 홍콩을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삼삼오오 모여 서명운동과 시위를 벌였다. 독재정권에 저항해 온 한국 근현대사에 동질감을 느끼고, 거리의 한국인들이 건네는 응원의 한마디를 하나둘 쌓아올려 '만리장성'을 넘는 계단을 만든다.
DDP 홍콩 범죄인강제 송환법 서명 운동 주최자인 홍콩인 임완산 씨가 19일 오후 서울 종로 성균관대학교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임영무 기자 |
◆ 책상 하나 없이 시작한 ‘반송중’ 서명운동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임완산(27)은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 앞에서 범죄인 인도법 통과에 반대하는 ‘반송중(返送中)’ 서명운동 부스를 차렸다. 19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캠퍼스에서 만난 완산은 ‘서명운동 주최자’라는 말에 쑥스러워했다. 심상치 않은 고향 분위기를 살피다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9일부터 구상한 운동이었다. 뜻을 같이 한 재한 홍콩인 20여 명과 11일부터 급히 피켓과 팸플릿을 만들어 한국어로 번역하고 인쇄 작업을 했다. 준비기간이 일주일도 채 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던 탓에 서명운동 당일은 어수선했다. 16일 당일 책상도 없어 주변 상가에서 구매해 끙끙대며 끌고 왔다. “잘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도 잠시, 오전 11시에 시작해 오후 8시에 끝난 서명운동은 1451명이 이름을 남겼다. 홍콩인 40%, 한국인 40%, 이외 국적의 외국인 20% 비율이다. 완산은 아직도 1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연대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홍콩시민에게 머리를 숙이며 송환법 법안 유보를 발표했다. 그러나 홍콩인들의 분노는 식지 않는다. 21일에도 홍콩 입법부를 포위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28~29일 오사카에서 개최될 G20 회의, 7월1일 홍콩 반환 22주년 때까지도 홍콩 거리는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왜 계속 싸우는 것일까.
"캐리 람이 당선됐을 때 홍콩시민에게 감사하다고 90도 인사를 했어요. 이번에 사과하는 것을 보니 고개를 제대로 숙이지도 않았어요. 그냥 어쩔 수 없이 미안하다 한마디 한 거죠. 현 입법회가 7월에 끝난다고 해도 법안이 계류 중이면 다음 입법회 때 다시 문제가 될 거예요. 지금 철회해야 합니다."
<더팩트>가 취재한 재한 홍콩인들은 대부분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를 조심스러워 했다. 시위 현장에서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기도 한다. 아무래도 중국 당국이나 직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임완산은 달랐다. 이름과 소속 공개는 물론 사진 촬영까지 주저없이 허락했다.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 살고 있다는 점이 용기를 줬어요. 제 신원을 확실히 해 이번 일로 두려워하는 어린 홍콩인 친구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어딘가에 우리 편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잖아요."
지난 12일 홍콩인 70여 명이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반송중 시위를 마친 후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신디 램 제공 |
◆ 어머니는 홍콩에서 딸은 서울에서
3월말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한국에 온 20대 여성 홍콩인 A는 서울의 한 여행사에서 근무 중이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는 16일 대규모 시위 때 집을 나섰다. 걱정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어머니를 비롯해 200만 명은 홍콩을 지키기 위해 나갔다. 걱정보다 자랑스러움이 앞섰다”고 답했다. 빡빡한 일정이지만 그 역시 16일 완산이 주최한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운전 중 차를 세워 “굿 잡(Good job)”이라고 응원한 택시기사는 그에게 큰 감동을 줬다. 한국어는 서툴지만 지나가던 노부부가 이름 석 자를 적으며 “그래, 이게 맞지. 잘하고 있어”라고 말한 것 역시 잊지 못할 기억이다.
그는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하지만 당시 중국 정부가 약속한 '일국양제'라는 말은 뚜렷하게 남아있다. 반환 이후에도 홍콩의 정치·경제 체제를 존중하겠다는 의미였다.
"중국 정부는 애초 약속한 상당 부분 어기고 있어요. 홍콩인들이 타국에서까지 반발하는 이유는 참았던 분노가 터진 겁니다. 한국도 ‘1인 1표’, 대통령 직선제 등 민주주의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어요. 같은 입장에서 응원해줬으면 좋겠어요."
세계인이 모이는 '핫플레이스' 홍대입구는 홍콩인 반송중 시위의 중심이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홍콩인 신디 램(30)은 SNS로 사람을 모아 지난 11일 첫 시위를 열었다. 첫날은 홍콩인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시위가 거듭될 수록 달라져 16일 4번째 시위 때는 입소문을 듣고 온 한국인과 대만인도 참여했다. 처음엔 얼마나 모일까 걱정했지만 이제 60~70명은 기본이 됐다.
한국 예능과 드라마로 한국어를 배운 홍콩인 J와 S는 지난 12일부터 홍콩 범죄자 인도법과 관련한 현황을 한국어로 전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인스타그램 캡처 |
◆ K팝을 사랑한 두 소녀는 인스타그램을 켰다
홍콩 시위가 불붙으면서 소문이 난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 홍콩인 두명이 한국어로 홍콩 현지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자세한 설명은 물론 동영상 콘텐츠까지 갖춰 웬만한 언론매체 공식 SNS 계정 못지않다.
운영자는 어린 시절부터 K팝을 사랑했다는 홍콩인 J(18)와 S(19)다. 한국 예능과 드라마를 보며 한국어를 공부했다. ‘팬심’을 살려 번역학을 전공한 대학생 S는 “아직 (한국어 번역 실력이) 부족해서 많이 힘들다”면서도 “작은 계정이지만 한국을 비롯해 세계인들이 홍콩의 위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홍콩인의 요구는 람 장관의 사퇴와 법안의 완전 폐기라고 잘라 말했다. J는 “홍콩 시민이 원하는 것은 (법안 추진을) 잠시 멈추는 게 아니라 완전히 철회하는 것”이라고 했다. S는 “람 장관의 성의 없는 사과로 홍콩 시민의 분노가 더욱 거세졌다. 대규모 시위 후 다들 많이 지친 상태”라면서도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완전한 사법독립을 위해 응당 치르는 대가라고 위안을 삼는다”고 했다. 홍콩 일각에서는 람 장관이 물러나도 어차피 또 다른 친중파 인사가 장관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자조적 전망도 나온다. 그래도 법안을 추진하고 홍콩시민을 폄하한 람 장관은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거리에 나선 홍콩인들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 홍콩인은 한국 민주화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영화 '1987'이나 '택시운전사'에서 '자유는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이들은 한국인들에게 부탁한다.
"'반송중'은 홍콩을 넘어선 세계 인권 문제예요. 홍콩에 발을 딛은 사람이라면 입법부 심사도 없이 행정장관 1명의 승인만으로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어요. 한국은 최근까지도 박근혜 탄핵 등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어요. 함께 더욱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임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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