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각의 노동자들④] "24시간 차에서 지내요"…화물기사의 눈물(영상)
입력: 2018.03.01 08:04 / 수정: 2018.03.03 20:35

경기도 의왕시 이동 내륙컨테이너기지(의왕ICD)에는 27일 오전 11시가 지나자 상하차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화물 노동자들은 이 시간에 쪽잠을 청한다. /의왕=변지영 기자
경기도 의왕시 이동 내륙컨테이너기지(의왕ICD)에는 27일 오전 11시가 지나자 상하차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화물 노동자들은 이 시간에 쪽잠을 청한다. /의왕=변지영 기자

대한민국은 안전한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 중 하나가 안전이지만 사고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 제천 스포츠센터, 밀양 세종병원 등 잇단 화재 참사에 '안전 슬로건'은 오히려 무색할 지경이다. 특히, 대형 참사로 이어진 사건은 결국 '인재'로 인한 경우가 많다. 이는 제도적 허술함과 관리의 미숙함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에 <더팩트>는 여전히 안전을 위협 받는 노동자들을 취재했다. 이를 통해 제도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낮은 운송료, 억대 화물차·수천만 원 번호판 비용…"구조적 문제가 사고 원인"

[더팩트 | 의왕=변지영 기자] "휴게소 갈 시간이 어딨어요. 틈날 때 자는 거지."

27일 오전 8시 경기도 의왕시 이동 내륙컨테이너기지(의왕ICD). 새벽부터 부산항에서 달려온 컨테이너 화물기사들이 물건을 내려 두고 다시 배차를 받아 나가느라 한창 분주했다.

부산에서 의왕 ICD에 막 도착한 후 다시 화물을 받아 부산으로 향하는 화물트럭 기사 강희성(35) 씨는 왕복 12시간이 넘는 강행군을 하지만 쉴 틈이 없다고 했다. 강 씨는 "화물차 할부비용이며 번호판 비용을 대려면 한 탕이라도 더 뛰어야 한다"며 "가끔 깜빡 졸 때는 노래라도 크게 부르고, 앞차 번호판들을 외우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오전 11시쯤 되자, 화물 상하차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대기줄에서 배차를 기다리던 한 70대 화물 기사는 "하루 꼬박 차에서 지냈다"면서 "화물 노동자들은 머리가 땅에 닿기만 하면 코를 골 만큼 잠이 모자라서 상하차를 기다리는 동안에 1분이라도 쪽잠을 자야한다"며 창문을 올리고 잠을 청했다.

◆"하루 온종일 차 안에서 생활…허리 통증은 다반사"

25톤 컨테이너 수송 전문차량을 운행하는 서경지부 수원안산지회 최영준 지회장(52)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통상적으로 화물기사들은 하루에 4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의왕에서 부산까지 가져다주고 바로 다시 배차받아 올라온다"며 "6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6시간 정도 운전하면, 하루 자고 올라올 수 있었지만 요즘엔 높아진 유류비 등 물가를 감당하려다 보니 바로 다시 올라오지 않고서는 단가를 맞추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최 지회장은 "능률은 떨어졌고, 몸은 축났다. 운송사와 갑을 관계이다 보니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기도 어렵다. 왕복 1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운송료에, 지원받는 기름값보다 더 운행하다 보니 남은 유류비는 고스란히 운전자의 몫이다. 할부로 산 화물차와 번호판 비용 등을 대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화물운송 기사들이 낮은 운송료와 불리한 계약조건 등으로 과적, 졸음운전으로 내몰리면서 안전을 위협 받고 있다. 화물업계는 지입제나 고용형태(특수고용노동자) 같은 구조적 문제가 화물차량을 '도로 위 흉기'로 내몰며 화물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데, 근본적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화물연대 조사결과, 지난 10년 동안 매년 평균 1231명, 하루 평균 3.37명이 화물차 사고로 사망했다. 이는 다른 통계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2006년~2015년) 화물차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1만2319명이다. 연평균 1231명, 하루 평균 3명이 넘는다.

사망사고 원인은 졸음운전이 대부분이었다. 한국도로공사 따르면 2014~2016년까지 5년간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31개 노선에서 발생한 사고원인은 전방주시 태만(28.9%), 졸음운전(23.1%), 과속(17.4%), 안전거리 미확보(4.5%)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총 2241건의 졸음운전 사고가 발생했는 데, 화물차로 인한 졸음운전 사고는 1087건으로 조사됐다. 차종별 졸음운전 사고 발생건수는 화물차가 1087건(48%)으로 가장 많았고, 승용차 984건(43%), 승합차 112건(5%), 기타 58건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시간 노동시간과 연관이 있다는 게 업계 측의 주장이다. 실제 한국교통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화물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3684시간이다. 한국 상용 노동자의 노동시간(연평균 2113시간)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근로시간(1766시간)과 비교했을 때 화물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심각한 수준이다.

낮은 운송료와 화물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계약 조건 등이 과적과 졸음운전을 부추기고 있다./ 변지영 기자
낮은 운송료와 화물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계약 조건 등이 '과적'과 '졸음운전'을 부추기고 있다./ 변지영 기자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수열 대외협력국장은 <더팩트>에 "낮은 운송료와 화물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계약 조건 등 외적 요인뿐만 아니라 장시간 노동시간이 '졸음운전'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하지만 운송료 인상이나 유류비 지원 등 화물기사들의 처우개선은 미진하다"고 지적했다.

수 국장은 가장 큰 문제로 화물기사가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 것을 꼽았다. 특수고용노동자란 법적으로는 개인 사업자지만 실질적으로 계약을 체결한 회사의 업무지시를 받고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말한다.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화물 노동자의 안전과 적정 운송비용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는 전무하다는 게 수 국장의 지적이다.

그는 화물운수시장에 대해 "다단계 같은 구조"라며 "개인 사업자가 운송사로부터 물량을 받아서 운반하는 경우들이 대부분 운송료가 법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화주·주선사·운송사·화물노동자 순으로 물량 주문이 내려온다. 그 사이 여러 업체들이 개입한다. 각 단계마다 수수료가 발생하기 때문에 실제 화물 노동자들이 받는 운송비용은 턱없이 모자라다. 이는 화물 노동자들에게 과적 및 과속을 강요하는 있는 구조"라고 부연했다.

경기도 의왕시 이동 내륙컨테이너기지(의왕ICD)에는 새벽부터 부산항에서 달려온 컨테이너 화물 노동자들이 물건을 두고 다시 배차를 받아 나가느라 분주하게 차량을 움직이고 있다. /의왕=변지영 기자
경기도 의왕시 이동 내륙컨테이너기지(의왕ICD)에는 새벽부터 부산항에서 달려온 컨테이너 화물 노동자들이 물건을 두고 다시 배차를 받아 나가느라 분주하게 차량을 움직이고 있다. /의왕=변지영 기자

◆변질된 '지입제'…수천만 원 번호판 비용도 노동자 몫

특히 화물운송업계는 화물차 과적·과속 등 위험한 곡예 운전이 '지입제'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과거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입제'는 당시 운송 수요에 비해 화물차량이 부족했던 운수 회사들이 차량을 가지고 있던 개인 사업자들과 계약(위수탁 계약)을 맺고 운송했던 제도다. 이 방식이 기이한 형태로 고착된 것이다.

화물연대 인천지부 조정재 사무부장 <더팩트>와 통화에서 "화물 노동자가 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사업 번호판을 소유하고 있는 운수회사로부터 사업 번호판을 사야한다. '유상운송행위'가 가능한 노란색 번호판은 3000~4000만 원을 호가한다. 또 직접 화물차를 사더라도 명의를 운수업체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화물차의 권리조차 갖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조 사무부장은 "상당한 대출금을 안고 사업을 시작하는 화물 노동자들이 저임금·장시간 등 열약한 노동조건에 내몰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억대인 화물차 비용과 사업 번호판 값 등 상당한 대출금을 안고 사업을 시작하는 화물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 등의 노동조건에 내몰린다. / 변지영 기자
억대인 화물차 비용과 사업 번호판 값 등 상당한 대출금을 안고 사업을 시작하는 화물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 등의 노동조건에 내몰린다. / 변지영 기자

8.5톤의 냉동탑차를 운행하는 정현준(47) 씨는 "화물차 할부금이 300만 원, 600~700만 원의 번호판 값, 매달 20만 원의 지입료까지 내야 하다 보니 가만히 있어도 고정비용이 상당하다"면서 "상하차 시간에 맞춰야 빠르게 다음 배차를 받거나 조금이라도 쉴 수 있기에 상하차 시간에 과속을 하게된다"고 말했다.

수열 국장은 "지입제는 법적인 권리에서도 운송을 직접하는 노동자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기이한 형태로 진행돼 온 것"이라며 "최근에는 이런 수익만 노리고 번호판 놀음을 하는 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22년째 화물트럭을 몰고 있는 최태식(51) 씨는 "차량과 번호판 비용의 할부를 끊는 순간 5년의 굴레에 빠지는 것"이라며 "'버티다 5년 후 할부가 끝나면 그때 수익을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한다. 그런데 경험상 할부가 끝나면 차가 퍼지더라(고장난다)"며 멋쩍게 웃었다.

◆화주사가 정한 '낮은 운송료', 과적·과속 조장

물류비를 줄이기 위해 화주가 운송사에 최저 입찰을 강요하는 구조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운송사는 줄어든 몫을 채우기 위해 최약자인 화물 노동자로부터 수익을 챙길 수밖에 없다. 최저 운임료가 책정되는 불리한 계약관계가 화물 노동자를 장시간 노동·과적·과속으로 밀어넣는 것이다.

화주와 대형운송사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운임, 화주의 최저입찰 강요, 다단계 중간착취로 인해 화물 노동자는 하루 평균 13시간을 넘게 일해도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월급을 손에 쥔다. 기름값이 오르면 하면 운송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캐피탈 등 이자율이 높은 각종 대출에 빠져들기도 한다.

화물 노동자들이 직접 구입해야 하는 억대의 화물차 비용 대비 낮은 운송료 등에 과적 및 과속, 장시간 노동, 야간 운전 등 위험한 운행을 해야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화물 노동자들은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지불하고 운송사로부터 번호판을 사야한다. /변지영 기자
화물 노동자들은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지불하고 운송사로부터 번호판을 사야한다. /변지영 기자

수 국장은 "화물 노동자는 불리한 위치에 놓여 계약을 논할 기회조차 없다.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번호판 탈취, 번호판 비용 강요 문제는 반복되고, 지입 전문업체의 각종 횡포로 화물 노동자의 피해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휴스틸 화물 노동자 사망사고'는 구조적 모순

화물기사들이 말하는 업체들의 횡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8월 21일 신안그룹의 계열사 파이프제조업체 휴스틸 당진공장에서 적재함에 파이프를 싣는 작업 중 화물 노동자 정태영(54) 씨가 목숨을 잃었다.

화물기사들은 사고가 발생한 신안그룹 휴스틸이 그간 화물기사들에게 상하차 업무까지 떠넘기는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고 입을 모았다. 사고 당시 휴스틸 당진공장 내부 창고에서 천정 크레인으로 강관 파이프 다발을 차량에 싣는 작업이 진행중이었다.

신안그룹 휴스틸은 화물 노동자들에게 상하차 업무까지 떠넘기는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실 제공
신안그룹 휴스틸은 화물 노동자들에게 상하차 업무까지 떠넘기는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실 제공

휴스틸 측에서 제시한 '차량기사 현장 안전 수칙'에 따르면, 파이프 상하차 작업은 공장직원 3인 1조로 진행되며, 화물기사의 업무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도 화주사는 두 사람만 작업에 투입했다.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서였다.

조정재 사무부장은 "철판, H빔 등 화물 노동자들이 상하차 업무 중 가장 위험한 일을 도맡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며 "이번 사건도 어쩔 수 없이 노동자가 파이프 더미에 올라가야만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 그는 "화주사, 운송사, 화물 노동자라는 갑을 관계에 쉬이 거절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휴스틸은 손해배상에도 소극적이었다. 하청 운송사를 끼고 운송사가 해결하게끔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

휴스틸 측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사건으로 휴스틸 직원 2명이 산업안전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것은 사실이며, 유가족 측 휴스틸 측과 손해배상 비용을 조정중이다"라고 대답했다.

파이프 상하차 작업은 공장직원 3인 1조로 진행해야 하지만 휴스틸 측은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2명만 배치했다. /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실 제공
파이프 상하차 작업은 공장직원 3인 1조로 진행해야 하지만 휴스틸 측은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2명만 배치했다. /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실 제공

권수권 시민변호사는 "화물 노동자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고용 관계에 있지 않음에도 사실상 지위를 받는 고용 관계에 놓여 있는 이들이다. 보통 이런 노동자라면 산재처리를 받을 수 있겠지만 제도적인 한계 속에서 어쩔 수 없는 경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사고를 당한 정 씨의 동료였던 박종관 전 화물연대 인천지부장은 "작년 사건에 대해 천안노동청에서도 '안타깝지만 고용 관계가 아니라 보상받기 힘들다'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며 "이번 화물 노동자의 사망 사고는 화물운송업계의 '관행적' 갑질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비용을 감축하려 화물 노동자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 같은 제도의 폐해를 인식하고 구조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폐지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9월 더불어 민주당 송옥주 의원은 '휴스틸 공장 화물 노동자 사망사고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화물 운송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휴스틸 당진공장에서 상하차 작업중 화물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박종관 전 화물연대 인천지부장 제공
휴스틸 당진공장에서 상하차 작업중 화물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박종관 전 화물연대 인천지부장 제공

송옥주 의원실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화물 노동자들은 고용형태 자체가 특수고용형태로 열악한 지위에 있다는 점을 이용해 지난해 노동자 사망사고에서도 원청업체가 책임을 져야함에도 불구하고, 하청 및 재하청 업체에 책임을 넘기는 등의 행태를 보였다. 이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적폐다. 또 화물 노동자의 생계가 보장될 수 있도록 밑바닥 운임을 해소하고 화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hinomad@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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