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각'의 노동자들①] 하늘에 맡긴 환경미화원의 '새벽 안전'(영상)
입력: 2018.02.05 04:00 / 수정: 2018.02.05 10:06

환경미화원들은 폭설이 쏟아지는 날에도 쓰레기 수거차 후방 발판에 온몸을 의지한 채 이동하곤 한다. /최봉현 씨 제공
환경미화원들은 폭설이 쏟아지는 날에도 쓰레기 수거차 후방 발판에 온몸을 의지한 채 이동하곤 한다. /최봉현 씨 제공

대한민국은 안전한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 중 하나가 안전이지만 사고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 제천 스포츠센터, 밀양 세종병원 등 잇단 화재 참사에 '안전 슬로건'은 오히려 무색할 지경이다. 특히, 대형 참사로 이어진 사건은 결국 '인재'로 인한 경우가 많다. 이는 제도적 허술함과 관리의 미숙함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에 <더팩트>는 여전히 안전을 위협 받는 노동자들을 취재했다. 이를 통해 제도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더팩트 | 김소희 기자]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환경미화원의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 거죠."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2동에서 재활용 폐기물 처리차량 운전을 담당하고 있는 최봉현(48) 씨는 현장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의 잇따른 안전사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 씨는 "환경미화원은 늘 목숨을 걸고 일한다"며 "지금과 같은 제도 속에서는 환경미화원이 몇백, 몇천 명이 죽어도 개선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최 씨는 함께 일하던 동료가 다치거나 사망한 일을 생각하면 늘 가슴 한편이 답답해져 온다. 자신에게도 언젠가 닥칠 수 있는 위험이라는 생각 때문에 수년 째 문제점을 발견하면 구청에 민원을 넣고 경찰에 신고를 해도 이렇다할 변화는 없다. '잠재적' 안전사고의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묵묵히 역할을 해내야 하는 게 환경미화원의 숙명이라는 게 최 씨의 설명이다.

환경미화원들의 안전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도로에서 청소작업을 하던 환경미화원 이모(48) 씨는 인근 공사장에서 느닷없이 날아온 2.5m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았다. 이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2016년 11월 29일 광주광역시 광역위생매립장에서는 쓰레기 수거차 적재함을 정리하던 구청 협력업체 소속 환경미화원 A(57) 씨가 동료 실수로 작동한 기계식 덮개에 머리를 다쳐 숨졌다.

근로복지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무거운 쓰레기를 옮기다가 골절상을 입는 등 업무 중 사고로 다친 환경미화원은 1958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추락,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골절과 상해, 질식 등으로 숨져 산재 신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환경미화원도 34명으로 집계됐다.

수치 상 집계되지 않은 '작은' 부상도 많다. 쓰레기를 치우다 녹슨 못에 손목이 찔려 파상풍에 걸리거나 분리수거함 안에서 깨진 유리조각에 팔꿈치가 찔는가 하면, 쓰레기를 정리하다 플라스틱 파편에 눈을 다치기도 한다. 재활용 쓰레기와 종량제 봉투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이 쓰레기에 포함된 위험물질에 다쳐 본 경험은 99.9%에 달한다고 한다.

이처럼 환경미화원들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지만, 이들의 안전은 '비용절감' 등 각종 이유에 묻히고 있다. 관련 법도 미비해 안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발판에 의지한 환경미화원 목숨…"안전교육부터 이뤄져야"

환경미화원이 겪는 산업재해 중 쓰레기 수거차 문제도 심각하다. 도로교통법상 쓰레기 수거차량에 환경미화원은 매달릴 수 없도록 돼있다. 수거차에 부착한 작업용 발판 역시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불법'이다. 환경미화원들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수거차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업무량이 많은 상황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작업을 끝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전국민주연합노조 관계자는 "대부분 쓰레기 수거차는 5톤 화물트럭에 쓰레기를 압축하는 특수장비를 설치한다"며 "트럭 높이가 1.2m로, 10~20m마다 이동하면서 쓰레기를 수거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타고 내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분주한 환경미화원들의 모습. 새벽 근무 상황에서 안전위험에 처하게 되는 환경미화원들도 많다. /최봉현 씨 제공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분주한 환경미화원들의 모습. 새벽 근무 상황에서 안전위험에 처하게 되는 환경미화원들도 많다. /최봉현 씨 제공

현장에서는 미흡한 안전교육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최 씨는 "안양시의 경우, 안전교육까지 위탁 업체에 맡겨버리니 제대로 이뤄질 리가 있겠느냐"며 "시 차원에서 환경미화원들에게 안전교육을 따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안양시 청소행정과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위탁 업체 소속 환경미화원 안전교육 책임자에 대해 "안전교육은 위탁 업체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위탁 청소업체들은 13명 남짓하고 많아야 20명 되는 회사들인데, 부장이 몇시간씩 교육을 받아온다고 해도 제대로 된 안전교육이 진행될 수 있겠느냐"며 "학력 수준이 낮은 환경미화원들에게도 서류로 안전교육을 하다보니 안전모를 써야 하는지, 사람들이 왜 다치는지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태반이다"라고 주장했다.

최 씨는 5년 전부터 시청에 이 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오고 있다. 산업안전공단에 직접 찾아가 전문 강사가 무료로 안전교육을 해줄 수 있다는 답변과 관계자 명함까지 받아왔다. 안양시 측에 장소만 제공하면 된다고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최 씨는 "직접 나서서 확인하고 대안까지 제시해도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미흡한 안전교육 탓일까. 현장은 '항상' 위태롭다는 게 미화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환경미화원은 3인 1조로 청소차량에 탑승하게 되어 있지만 지자체에 따라 1~2명이 업무를 담당하는 등 안전을 위한 기본 조건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 씨는 "최근 나홀로 운전하는 청소차량 때문에 시민 한 분이 돌아가셨다. 8톤 정도 되는 진공차를 운전하는 분이 횡단보도를 지나는 시민을 사망하게 한 사고였다"며 "후방카메라가 고장났다고 몇 번을 얘기해도 고쳐주지 않아서 기사 혼자 후진하다가 사망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라고 했다.

◆새벽으로 내몰리는 환경미화원…일본과 달리 '제자리 걸음'

환경미화원의 근무시간 역시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 중 하나다. 환경미화원의 쓰레기 수거 작업은 대체로 자정 이후부터 새벽까지 진행된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통상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한다. 일을 늦게 시작하면 출근길에 방해가 된다는 민원이 발생하고, 쓰레기 수거도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또 오후 2~3시까지인 쓰레기 처리장 반입 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 근무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새벽 작업을 하는 경우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16일 새벽 6시40분께 광주시 남구 노대동 도로에서 생활폐기물을 치우던 환경미화원 서종섭(59) 씨는 후진하는 수거차량이 치여 숨졌다. 해가 뜨기 전 어둑어둑한 상황에서 운전을 하던 동료가 서 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환경미화원의 안전을 위해 새벽 근무를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계속됐다. 일본 도쿄의 경우, 환경미화원의 근무시간은 오전 7시40분부터 오후 4시25분까지이다. 환경미화원 사고 해결책으로 작업 시간 변화를 선택한 것이었다. 환경미화원이 새벽이 아닌 대낮에 일할 수 있도록 하면서 안전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기본적 규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점이다. 노동강도가 높아 작업 도중 다가오는 차량을 감지하기 어려운 환경미화원은 반드시 유도 작업자와 함께 근무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서 씨 역시 인력 부족으로 동료 운전자와 둘이서만 작업을 했다.

사고 예방을 위해 설치된 후방카메라도 무용지물일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후방카메라는 트럭 덮개에 설치돼 있는데 덮개를 올리면 후방카메라도 같이 들려 올라가기 때문에 덮개 틈 사이에서 작업하는 환경미화원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도 뒤쪽 상황을 알 수 없는 운전자가 덮개를 조작하게 돼 있다.

최강 한파 속에서도 야외에서 근무하는 환경미화원들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 /김소희 기자
최강 한파 속에서도 야외에서 근무하는 환경미화원들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 /김소희 기자

체감온도가 영하 25도를 밑도는 최강 한파 속에서도 장시간 야외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저체온증을 호소하는 환경미화원들도 많다. 하루 중 가장 추운 새벽부터 나와서 근무하지만 언 몸을 녹일 장소조차 여의치 않다.

지난달 25일 MBC 라디오 '양지열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강원 원주 환경미화원 이선인 씨는 "위탁업체에서 고용된 환경미화원은 지자체에서 직접 고용된 환경미화원보다 질이 떨어진 방한복이 지급받는다"며 "또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하기 때문에 냄새가 나서 어디 들어가지 못하고 처마 밑에서 쉰다"고 했다.

작업 중 숨진 환경미화원에 대한 순직 여부도 관심 대상이다. 작업 중 공사장 철근에 맞아 숨진 조합원 이 씨는 지자체 무기계약직 환경미화원이라는 이유로 아직까지 순직 처리되지 않고 있다. 공무원연금법은 무기계약직 환경미화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비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은 순직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김인수 전국민주연합노조 조직국장은 통화에서 "순직 처리가 조속히 이뤄지길 희망하나 현행법상 순직 처리가 안 되고 있다"며 "관련 법 개정을 통해 해결돼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근무·고용·처우 모두 열악…현장은 고장났다

열악한 고용 구조와 처우에도 노출돼 있는 환경미화원의 고용 방식은 위탁과 직접 고용으로 나눠져 있다. 위탁 업체에서 고용한 환경미화원 수만 전국적으로 약 1만5000여 명에 달한다.

최 씨의 근무지는 안양시 만안구 일대지만, 최 씨의 정확한 소속은 안양시청에서 위탁을 한 성일기업이다. 20년째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최 씨는 2016년까지 종량제 쓰레기 처리를 담당했다. 지난해부터 재활용 폐기물, 대형폐기물 등을 처리한다. 최 씨는 "안양시청은 종량제를 비롯해 재활용, 대형폐기물 처리를 위탁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일까. 서울 강서구청 청소자원과 청소관리팀 관계자는 통화에서 "구청 소속 환경미화원은 가로청소와 대형폐기물로 나누어 근무한다"며 "가로청소의 경우 새벽 5~6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한다"고 설명했다. 이면 도로를 관리하는 건 구청이 아닌 동사무소다. 분리수거와 종량제는 다섯 군데의 업체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환경부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서 생활쓰레기 처리 업무 및 관련 행정처리 권한을 모두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하고 있다.

'지자체 위탁'이 안전사고의 주범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자체의 계약단가에 따라 환경미화원들에게 '값싼' 안전장비가 지급될 수 있고, 관리감독에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어서다.

정부도 잇따른 사고에 심각성을 인지했다. 환경부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등 관계부처와 지자체는 지난달 16일 환경미화원 안전사고 발생 건수를 2022년까지 90% 이상 줄이는 것을 목표로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환경미화원은 운전 담당자를 포함해 3인 1조로 청소차량에 탑승하게 돼있다. /김소희 기자
환경미화원은 운전 담당자를 포함해 3인 1조로 청소차량에 탑승하게 돼있다. /김소희 기자

환경미화원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은 ▲환경미화원의 고용형태, 근로조건, 안전기준 등이 여러 부처와 지자체에 분산되고 ▲작업량 과다, 안전장비 미흡 및 안전의식 부족 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정부는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 ▲사람 중심의 청소차 보급 ▲차별 없는 선진일터 조성 등 3대 분야에 대한 7대 과제 개선를 추진키로 했다.

김인수 조직국장은 "정부가 발표한 개선대책이 빠른 시일 내에 시행돼야 한다고 본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처럼 용역이나 파견 환경미화원을 지자체에서 직접 고용하는 것이 당장 급하다고 생각된다. 이를 통해 많은 문제들이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 씨는 "위탁이 된 상황에선 안전 사고가 일어나도 공무원은 책임이 없다"며 "환경미화원이 구청 관리감독 안으로 들어가야 위법 상황이 발견됐을 때 공무원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겨서 문제들이 해결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람이 몇 명이 죽어도 지자체 책임 없이 위탁 업체에서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지금과 같은 제도 속에서는 미화원이 몇천 명이 죽어나가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지자체 장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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