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 시각) 제프리 C. 홀, 마이클 로스바쉬, 마이클 영 등 미국의 과학자 3명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이 돌아갔다. 이들은 인체의 일상리듬에 관련한 원리를 밝힌 공로를 인정 받았다. /노벨상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
[더팩트ㅣ박대웅 기자] 미국의 제프리 C. 홀 전 브랜다이스대 교수, 마이클 로스바쉬 브랜다이스대 교수 겸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 연구원, 마이클 영 전 록펠러대 교수 등 3명이 노벨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노벨상 주간이 시작된 가운데 노벨상에 얽힌 흥미로운 사실들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노벨위원회는 2일(현지 시각) 생체시계(circadian rhythm·서캐디언 리듬)를 연구한 미국의 제프리 C. 홀 전 브랜다이스대 교수, 마이클 로스바쉬 브랜다이스대 교수 겸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 연구원, 마이클 영 전 록펠러대 교수 등 3명 3명을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발명가이자 화학자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1895년 제정됐다. 이후 1900년 노벨재단이 설립됐고 노벨이 기부한 유산을 통해 1901년부터 수여가 시작됐다. 11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노벨상은 지난해까지 개인 911명에게 수여됐다. 오랜 역사만큼 수상자 선정 관련 우여곡절뿐 아니라 흥미로운 일화가 많다.
◆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 알고 보니 두 명?
한국은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유일하다. 그러나 노벨상위원회의 수상자 출생지별 분류에 한국은 김 전 대통령을 포함해 총 2명으로 기록돼 있다. 나머지 한 명은 1987년 화학상을 받은 찰스 피더슨이다.
피더슨의 국적은 미국이지만, 1904년 대한제국의 경상남도 부산에서 노르웨이인 부친과 일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고 당시 부친이 영국이 관장하던 부산 세관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더슨은 8살까지 한국에서 살다가 일본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후인 192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노벨상은 116년이라는 오랜 역사만큼 수상자 선정 관련 우여곡절뿐 아니라 흥미로운 일화가 많다. 이에 따라 매해 수상자 결과 발표뿐 아니라 관련 에피소드도 연일 화제가 되곤 한다. /노벨상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
◆ '최고 영예' 노벨상, 거절한 사람도 있다?
지난해에는 음악가로는 최초로 미국의 대중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특히 밥 딜런은 수상 직전까지 노벨상 위원회와 연락이 닿지 않아 수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실제 노벨상을 거부한 사례는 지금까지 총 11건이다. 주로 독재정권의 압박 등 정치적인 상황 때문이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전부 금지한 탓에 1938년 화학상 수상자였던 리하르트 쿤, 1939년 화학상을 받은 아돌프 부테난트, 같은 해 생리의학상 수상자였던 게르하르트 도마크 모두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옛 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였던 안드레이 사하로프와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역시 정부의 지시로 수상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의 경우 노벨상을 자신의 의지로 거부한 최초의 인물로 꼽힌다. 사르트르는 자신이 1964년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문학적 우수성을 놓고 등급을 매기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습성"이라며 수상을 거부했다.
◆ 노벨상에 '흑역사' 만든 장본인은 누구?
학자들에게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노벨상이지만, 훗날 '잘못된 수상이었다'며 수상 자격 관련 재평가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살충제와 농약 등의 성분인 DDT다.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뮐러는 1941년 유기염소제인 DDT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1년 뒤인 1942년 DDT로 말라리아모기 등을 박멸한 공로를 인정받아 뮐러는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DDT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러 국가에서 사용금지 처분을 받게 된 데 따라 부정적인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다.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안토니우 모니스의 뇌 전두엽 절제 시술 역시 부작용이 심하고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이밖에도 1918년 화학상을 받은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도 노벨상의 '흑역사'를 만든 장본인 중 하나로 꼽힌다. 암모니아 합성법을 발명한 하버는 화학비료로 세계 식량 생산 증대에 기여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때 독가스 생산에 앞장서면서 '화학무기의 아버지'로 불리며 인류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벨상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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