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⑨] 최고 춤꾼의 비밀금고
  • 손현석 기자
  • 입력: 2011.09.08 11:33 / 수정: 2011.09.08 11:33

▲댄서 오용주. 사진 출처는 오용주 미니홈피.
▲댄서 오용주. 사진 출처는 오용주 미니홈피.

[공경민객원기자] 누가 뭐래도 ‘댄스 전성시대’다. 대중 가요계의 ‘꽃’인 아이돌 스타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 지 오래. 최근 대세인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댄스로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 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댄스를 주 컨셉트로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SBS ‘키스 앤 크라이’, MBC ‘댄싱 위드 더 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댄스 붐’의 원류에는 스트리트 댄스가 자리잡고 있다. 그 이전까진 ‘비주류’로 취급 받던 스트리트 댄스는 1990년대 초반 들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폭발적인 인기에 발맞춰 주류 문화의 장르로 급부상했다. 이미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로 유명한 비보이들의 공연은 국가 이미지 홍보에도 첨병으로 인정받을 정도다. ‘영턱스클럽’의 최승민은 국내 댄스 발전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다. 그의 입을 통해 우리나라 1세대 댄서들의 세계와 그에 얽힌 ‘야사’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8편에 이어….

오용주의 전성기는 양현석을 만나기 전부터 시작됐다.

그는 누나가 일본에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춤 관련 정보에 빨랐다. 그러기에 누구든 그와 친해지고 싶어했고, 필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그와 춤을 같이 시작해 다른 사람들보단 좀 더 가까운 사이였다. 오용주의 ‘필’을 배우기 위해 옷도 비슷하게 입고 행동과 말투까지 흉내냈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그의 집에서 같이 살기까지 했다.

요용주의 춤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라인과 각(춤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이 나왔다. 그런 그를 도저히 따라잡기 힘들다는 생각에 잠을 줄이고 밤새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다 깨어보니 오용주가 없었다. 그래서 살짝 방문을 열어보니 그의 뒷모습을 지나 TV 브라운관에서 개미만한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이 나왔는데,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바로 일본에서 건너온 콘테스트 춤 자료였다. 그 속에 등장하는 오용주와 똑같은 필을 지닌 댄서들이 한 30명은 되는 듯 했다. ‘그럼 그렇지’ ‘그런 자료 없었어 봐’…. 이쯤 되면 이런 반응들이 나올만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그 자료 나오는 필과 스킬을 똑같이 구사한다는 건 오용주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럴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필자는 절망에 빠졌다. 그 자료를 가질 수도 없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에 부딪혔으니….

지금도 오용주가 작은 금고에 꼭꼭 숨겨두고 보던 그 자료들이 기억난다.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는 매주 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10편은 추석 연휴인 관계로 15일 게재.

▶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①] 춤꾼들의 성지, ‘문나이트클럽’

▶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②] 양현석, '춤귀신'으로 불린 시절

▶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③] ‘양군 패밀리’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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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⑦] 외국 댄서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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