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②] 양현석, '춤귀신'으로 불린 시절
  • 손현석 기자
  • 입력: 2011.08.11 11:31 / 수정: 2014.06.20 13:56

▶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①] 춤꾼들의 성지, ‘문나이트클럽’

[공경민 객원기자] 누가 뭐래도 ‘댄스 전성시대’다. 대중 가요계의 ‘꽃’인 아이돌 스타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 지 오래. 최근 대세인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댄스로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 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댄스를 주 컨셉트로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SBS ‘키스 앤 크라이’, MBC ‘댄싱 위드 더 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댄스 붐’의 원류에는 스트리트 댄스가 자리잡고 있다. 그 이전까진 ‘비주류’로 취급 받던 스트리트 댄스는 1990년대 초반 들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폭발적인 인기에 발맞춰 주류 문화의 장르로 급부상했다. 이미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로 유명한 비보이들의 공연은 국가 이미지 홍보에도 첨병으로 인정받을 정도다. ‘영턱스클럽’의 최승민은 국내 댄스 발전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다. 그의 입을 통해 우리나라 1세대 댄서들의 세계와 그에 얽힌 ‘야사’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문나이트를 경험한 지 3개월 정도가 지나던 어느 날 새벽 4시, 헤어 밴드를 두른 한 남성이 흑인 2명과 함께 등장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음악에 맞춰 기존에 봤던 힙합 스타일과 다른 스타일로 춤을 구사했다.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끝내줬다.

최고의 댄서들조차 그들 앞에선 감탄사만 쏟아냈다. 1시간 가량 지난 뒤 흑인들과 함께 있던 그가 잠시 춤을 멈추고 헤어 밴드를 벗어 얼굴을 드러냈다.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인 양현석(이하 양군)이었다.

흥분과 전율, 그의 춤을 본 느낌이 그랬다. 1세대 댄서들도 “진짜 잘 춘다” “와, 환상이다” “저게 사람이야”이라는 등 반응을 보였다. 이미 자리를 떠난 이후에도 그 환호는 그치질 않았다.

이후 양군에겐 ‘춤귀신’, ‘간지맨’, ‘죽음의 힙합맨’, ‘돌아다니는 자료’ 등의 별명이 붙었다.

그 어떠한 댄서들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양군 천하’라고 불릴 만했다. 양군은 매일 문나이트를 오질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올 때마다 세련된 스타일은 물론 춤도 항상 다른 스킬과 필을 선보였다.

당시에는 춤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아예 없었다. 독학으로 배우던가 아니면 춤 관련 자료를 따라 하는 게 전부였다. 양군의 춤 스타일은 기존의 춤 자료로는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자료들은 무용지물이었다.

나를 비롯한 오용주, 강민 등 동료들은 “현석이형을 기다리자. 현석이형 동작을 하나씩 익혀서 연습하자”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일주일에 딱 한번, 양군을 보기 위해 잠도 참고 기다렸다. 그렇게 눈으로 익힌 동작을 ‘리버리’라는 클럽에서 연습하곤 했다.

그 정도로 양군은 문나이트에 신적인 존재였다. 주위 사람들이 동그란 원을 만들어 춤 구경하게 만들었던 댄서는 그가 유일했다.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는 매주 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3편은 16일 게재.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