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52시간이 모자라①] 작품 속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신가요?
입력: 2019.07.13 00:00 / 수정: 2019.07.15 09:50
지금까지 방송·영화계는 근로계약서 없이 불공정한 노동을 근로자들에게 요구해왔다. /SBS, 넷플릭스, OCN
지금까지 방송·영화계는 근로계약서 없이 불공정한 노동을 근로자들에게 요구해왔다. /SBS, 넷플릭스, OCN

2시간짜리 영화, 1시간짜리 드라마를 만들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들어갈까요. 관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에도 스태프들은 밤낮없이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표준근로가 도입되면서 이들에게도 '퇴근 시간'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왠지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과도기인 만큼 부작용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남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게 왜 이들에겐 이토록 힘든 일인 걸까요. <더팩트>가 스크린, 브라운관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주>

방송·영화 근로 현장, 달라질 수 있을까

[더팩트|김희주 기자] "여기는 원래 다 그래."

유난히 '열정페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방송·영화계 촬영 현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배고픈 예술'이라는,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한 포장 속에는 하루 24시간을 꼬박 일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해 쩔쩔매는 청춘들의 '계약서 없는 노동'이 만연하다.

당장 몇 해 전 까지만 하더라도 방송·영화 촬영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은 시청자와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특히나 고(故) 이한빛 PD의 사망 사고 후에도 개선되지 않는 많은 콘텐츠 제작 환경은 계속되는 잡음으로 잊을만하면 다시금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지난해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스태프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SBS
지난해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스태프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SBS

지난해 8월에는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스태프 사망 사건이 대두됐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진 그해 장시간 노동으로 세상을 떠난 해당 스태프는 30세 카메라 담당 남성으로, 사망 직전 노동 시간은 그달 25일 14시간 30분(오전 8시 ~ 오후 10시 30분), 26일 13시간 10분(오전 8시 ~ 오후 9시 10분), 27일 14시간 30분(오전 7시 50분 ~ 오후 10시 20분), 28일 17시간 50분(오전 8시 ~ 익일 새벽 1시 50분), 29일 14시간(오전 11시 ~ 익일 새벽 1시)으로 확인됐다.

당시 언론노조는 사건을 꼬집으며 "고용노동부의 만성 과로 인정 노동시간은 주 60시간이다. 살인적인 초과노동 중단, 점심시간과 휴게 시간 보장, 야간 촬영 종료 시 교통비와 숙박비 지급, 불공정한 도급계약 관행 타파, 근로계약서 작성 등이 방송 제작 현장 노동자들의 주된 요구"라며 "외주제작사의 노동 실태를 파악하고, 제작 현장 근로자 보호를 위해 폭염 등 무리한 야외 노동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감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킹덤은 시즌1과 2 모두 스태프 사망 논란에 휩싸였다. /넷플릭스
'킹덤'은 시즌1과 2 모두 스태프 사망 논란에 휩싸였다. /넷플릭스

2018년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스태프의 사망 사건이 벌어져 논란에 휩싸였다. 그해 1월에는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 '킹덤'의 미술 스태프로 참여한 고 씨가 귀가 중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쓰러져 뇌동맥류 파열로 뇌사 판정 끝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전국영화산업노조는 고인의 사망 원인을 과로사로 판단하고 영화·방송 제작 현장의 개선을 촉구했다.

하지만 2019년 3월 '킹덤 2' 또한 스태프 사망 소식을 알리며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문제를 다시금 각성하게 했다. 당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킹덤 2'의 소품을 담당하던 스태프 이 모 씨는 소품 차량을 몰고가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계약서 없는 노동으로 인한 안타까운 사건·사고들을 해결하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계약서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조금씩 가시화되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제작비 10억 원 이상의 영화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5%가량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해 본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독립영화 계에는 아직 확산되지 않았지만, 상업 영화 스태프들에게는 어느 정도 근로계약서 작성이 자리 잡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달에는 지상파 3사에서 드라마 제작 시 스태프와 표준계약서를 적용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이어 지난 1일 부터는 방송업계에도 주 52시간제가 도입됐다.

아직은 시작일 뿐이지만, 그 변화로 인한 결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스태프 전원이 표준근로계약을 체결해 제작됐고, OCN 새 드라마 '왓쳐' 제작발표회 당시 배우 한석규는 "표준근로계약서가 도입되고 달라진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적응하며 배우들과 함께 고생하는 스태프들"이라며 간접적으로 이슈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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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획팀 |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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