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52시간이 모자라③] "영화는 배고프다", 이젠 옛말인가요?
입력: 2019.07.15 05:00 / 수정: 2019.07.15 09:06
영화계 표준근로계약에 대해 <더팩트>가 알아봤다. /더팩트DB
영화계 표준근로계약에 대해 <더팩트>가 알아봤다. /더팩트DB

2시간짜리 영화, 1시간짜리 드라마를 만들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들어갈까요. 관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에도 스태프들은 밤낮없이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표준근로가 도입되면서 이들에게도 '퇴근 시간'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왠지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과도기인 만큼 부작용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남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게 왜 이들에겐 이토록 힘든 일인 걸까요. <더팩트>가 스크린, 브라운관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주>

표준근로계약, 충무로는 지금

[더팩트|박슬기 기자] 영화가 좋아 충무로에 발을 들였다. 이를 직업으로 삼으면 더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밥때를 놓치는 건 일수고, 밤샘 촬영은 기본이었다. 탄력근무제라 친구들과 약속 잡기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통장에 찍힌 돈은 80만 원. '열정 페이'에 불과한 적은 돈은 허탈감을 안겼다.

하지만 이것도 옛말이 됐다. 2011년, 영화산업협력위원회가 영화 스태프 처우 개선을 위해 표준근로계약서를 발표했다. 사실상 충무로에 본격적으로 도입이 된 건 최근 1~2년 사이로, 현장에 적용되기까지 6~7년이 걸렸다. 표준근로계약이 도입되고,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는 연출부 스태프A씨를 만났다.

"2017년 정도부터 도입이 된 것 같아요. 이젠 무조건 일주일에 다섯 번만 촬영이 가능합니다. 때에 따라 추가 촬영이나 시간이 더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땐 무조건 촬영을 중단하고 각 부서장이 회의에 들어가죠. 투표를 통해 추가 촬영 여부가 결정되는데 한 팀이라도 힘들 것 같다고 하면 그날 촬영은 거기서 끝나는 겁니다. 예전엔 볼 수 없었던 그림이에요."

최근 업계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 52시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를 통해 영화 스태프는 자율권과 선택권을 얻었다. 그리고 체력적으로도 수고로움을 덜게 됐다.

스태프 A씨는 "표준근로계약을 몸소 체감하게 된 부분은 식사 시간 생긴 것이다. 밥 먹고 쉬는 시간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예전보단 체력적으로 덜 힘든 것 같다"며 "세트장 촬영이면 세트장 불을 아예 꺼 모두가 쉴 수 있게끔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표준근로계약으로 인한 부작용(?)도 생겼다. 제한된 시간과 예산으로 영화의 완성도가 이전보다 비교적 낮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한 제작사 대표 B씨는 "예전에는 한 가지 신을 두고 여러 버전으로 찍었다면 요즘에는 정해진 대로만 찍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완성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이 표준근로계약을 작성하고 촬영을 진행했다고 알려져 관심을 받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이 표준근로계약을 작성하고 촬영을 진행했다고 알려져 관심을 받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표준근로계약을 맺고 근로기준법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성도와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작사 대표 C씨는 "자본력과 스타 캐스팅이 됐을 땐 이야기가 다르다. 충분한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표준근로계약을 맺고 일을 할 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위 5% 정도 되는 제작사와 감독에게는 표준근로계약이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중·소제작사에게는 힘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급여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였다. 영화 스태프와 제작사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 막내 스태프의 월급은 최소 80만 원에서 150만 원이었다. 최근엔 최저시급도입으로 250만 원까지 상승했다. 때문에 오래 전에 일을 시작한 부서장급 스태프와 막내 스태프의 급여 차이가 적게 나는 부작용도 생겼다. 제작사 대표 B씨는 "요즘 막내 스태프들의 근무 환경이 제일 좋다"며 "그들이 할당 시간을 채우고 더 찍기 싫다고 하면 촬영은 끝나는 거다. 옛날과 비교했을 땐 일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더팩트>와 인터뷰를 한 영화 스태프도 동의했다. 그는 "법이 바뀌면서 막내 급여가 많이 올랐다. 그래서 일부 선배급, 팀장급 스태프의 사기가 저하되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법이 바뀌면서 생긴 현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영화계는 최근 1~2년 전부터 표준근로계약이 본격 도입됐다. /더팩트DB
영화계는 최근 1~2년 전부터 표준근로계약이 본격 도입됐다. /더팩트DB

표준근로계약으로 제작사와 스태프는 프리프로덕션(준비단계)과 프로덕션(제작)으로 나누어 계약서를 작성한다. 이후 촬영 회차가 추가되면 그땐 또다시 계약서를 쓴다. 임금 지급 방식 역시 다르다. 이전엔 3-3-4 방식으로 3개월·3개월·4개월 치 씩 나눠 받는 형식으로 진행됐다면 이젠 월급으로 지급된다. 제작사 대표 B씨는 "표준근로계약을 통해 이제 한국 영화계도 산업화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영화 현장의 중심에 있는 배우들은 어떨까. 영화배우 매니저 D씨는 "표준근로계약이 배우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딱히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굳이 장단점을 꼽자면, 촬영이 빨리 끝나기 때문에 컨디션 관리에 효율적이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좋은 장면을 뽑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배우나 감독 입장에선 불만족스러워도 제한된 시간 때문에 그냥 갈 수밖에 없는 단점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영화계는 표준근로계약 도입으로 과도기에 놓여있다. 여러 가지 장점과 단점들을 겪으면서 이를 체계화 시키기 위한 과정에 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체제 도입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위험이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할리우드, 유럽 등의 선진화된 영화 근로 시스템을 롤모델로 삼아, 이를 한국형으로 바꾸어 적용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psg@tf.co.kr
[연예기획팀 |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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