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공평性 in 미디어③] 폭력·노출·비하, 왜 아직도 안 변하니?
입력: 2019.07.01 05:00 / 수정: 2019.07.01 10:30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영화 브이아이피가 여성 혐오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다. /tvN,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영화 '브이아이피'가 '여성 혐오'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다. /tvN,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세상이 변했습니다. 이제 어디서나 '성 평등' '성 인식'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죠. 여전히 민감한 사안이지만, 활발하게 소통이 돼야하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미디어에서도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 현저히 적은 수지만, 흐름을 따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래서 <더팩트>가 짚어봤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 미디어에서 여성을 어떻게 다루는지, 또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말입니다. <편집자주>

'표현의 자유'로, 모든 게 수용될까

[더팩트|박슬기 기자] 미디어에서 '성 평등'의 문제는 빼놓을 수 없는 주요 화두다. 사소한 표현 하나가 자칫 '여혐(여성 혐오의 준말)' '남혐(남성 혐오의 준말)'을 조장하고, 작품의 성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인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성 차별적 요소를 '예술' 또는 '표현의 자유'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제작에 참여한 이들은 작품의 완성도를 논하지만, 분명한 건 젠더 감수성 부족에 따른 논란에선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이 가운데 최근 논란이 된 드라마, 영화, 음악 등을 짚어봤다.

◆ '리턴' '나의 아저씨'...여자 때리는 남주인공

지난해 1월 지상파인 SBS에서 오후 10시대 방송된 드라마 리턴. 노출과 폭력 등 자극적인 장면으로 논란이 됐다. /SBS 리턴 캡처
지난해 1월 지상파인 SBS에서 오후 10시대 방송된 드라마 '리턴'. 노출과 폭력 등 자극적인 장면으로 논란이 됐다. /SBS '리턴' 캡처

지난해 안방극장에선 유독 논란이 된 작품들이 있다. SBS 드라마 '리턴'과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그 주인공이다. 두 작품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적인 장면을 다수 내보내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1월 방송된 '리턴'에서는 박기웅이 내연녀인 한다감(한은정)과 싸우며 "너는 그냥 변기 같은 거야. 그냥 내가 싸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싸고 필요 없으면 확"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려져 충격을 안겼다. 여기에 봉태규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여성의 머리를 유리컵으로 내려치고선 "병원비하고 나머지로는 가방 사"라고 돈을 건넸다. 이어 그는 '절친 '신성록의 아내 윤주희와 키스 하는 등 비상식적인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방송됐다.

아이유가 배를 가격 당하고 아파하는 모습. /tvN 나의 아저씨 캡처
아이유가 배를 가격 당하고 아파하는 모습. /tvN '나의 아저씨' 캡처

지난해 3월 방송된 '나의 아저씨' 역시 마찬가지다. 작은 체구의 여주인공인 이지은(아이유)이 건장한 사채업자 장기용에게 복부를 가격당하는 등 폭행 장면을 여과 없이 다뤘다. 이 가운데 이지은은 "너 나 좋아하지"라고 반문한다. 사랑을 폭력으로 표현하는 시대착오적 스토리는 충격 그 자체였다. 뿐만 아니라 극 중 24세 나 이차가 나는 이지은과 이선균의 부적절한 인물 관계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시청자들은 문제를 제기했다. 캐릭터의 성격을 표현하는 장면이지만 도를 지나치고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폭력적인 내용과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을 가학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후 '리턴'은 방송통신심의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았고, '나의 아저씨'는 다수의 시청자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을 넣는 것으로 상황이 종료됐다.

◆ 'VIP' '스물'...고문하고, 몰래 보고

살인을 당한 여성이 나체로 누워있는 모습. 영화 브이아이피의 장면 중 하나다. /영화 브이아이피 스틸
살인을 당한 여성이 나체로 누워있는 모습. 영화 '브이아이피'의 장면 중 하나다. /영화 '브이아이피' 스틸

나체로 벌벌 떨고 있는 한 여성. 그리고 이를 조롱하듯 바라보는 남자들. 이후 여러 명의 남성이 여성을 잔혹하게 살인하는 모습은 이내 화면에서 고개를 돌리게 한다. 2017년 개봉한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다. 이 과정은 128분의 긴 상영 시간에서 무려 5분 동안 상세하게 묘사된다.

이를 이유로 '브이아이피'는 여성 인권 유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 시키고, 남성들의 놀이감으로 표현하면서 여성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다.

'브이아이피'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은 "제 주변 지인은 거의 남자고, 제가 인지한 정도도 남자 관객이 보는 정도의 불편함이었다"며 "여성 관객의 불편함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잘못이다. 젠더감수성이 부족했고, 무지했다"고 말했다.

영화 스물에서 강하늘과 준호가 친구 김우빈과 여자친구의 애정행각을 몰래 보려다 들킨 장면. /영화 스물 스틸
영화 '스물'에서 강하늘과 준호가 친구 김우빈과 여자친구의 애정행각을 몰래 보려다 들킨 장면. /영화 '스물' 스틸

올해 '극한직업'으로 천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이병헌 감독 역시 과거 '스물'(2015)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스물'은 스무 살 동갑내기 세 친구가 출연해 그들의 좌충우돌 '청춘'을 그려낸 작품이다. 청춘들의 왕성한 성적 호기심과 이성관을 장난스럽게 풀어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됐다.

대사마다 기-승-전-섹스로 끝나는가 하면 "엉덩이를 XX에 비비고 싶다" 등의 대사, 극 중 동우(준호 분), 경재(강하늘 분)가 친구인 치호(김우빈 분)와 여자친구가 관계 맺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려는 장면 등이 등장해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았다. 여성을 성적·수동적 대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에서다. 다수 관객은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기분 나쁜 장면들과 대사가 많다" "이 영화가 15세 관람가 등급인 게 놀랍다"며 "등급 기준을 도대체 어떻게 정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쾌함을 표했다.

◆ 블랙넛·김효은·송민호, 폭력적 여혐 가사

여성 혐오 여성 비하 발언과 가사로 물의를 빚고 있는 래퍼 블랙넛. /블랙넛 인스타그램
'여성 혐오' '여성 비하' 발언과 가사로 물의를 빚고 있는 래퍼 블랙넛. /블랙넛 인스타그램

유독 힙합에서 '성 인식' '젠더 의식'에 대한 문제점이 자주 발견된다. 비교적 자유로운 표현 방식 때문이다. 최근 래퍼 블랙넛은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을 가사로 써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블랙넛은 지난 11일 발매된 래퍼 존오버의 신곡 'Bless U'(블레스 유)에서 피쳐링을 맡았다. 그는 "You so beautiful girl(유 소 뷰티풀 걸), 너무 완벽해. 유네스코도 처음 볼 걸 이런 자연미는" "안 되면 때려서도 라도 내 걸로 만들래. Baby(베이비) 오늘 넌 내 여자 아님 반 X신"의 내용의 가사를 썼다. 폭력을 통해 여성을 소유하겠다는 과격한 의미가 담겼다.

또 그는 이 노래에서 "내 음악 컨셉인 걸 왜 몰라. 오해하면 무너져 난 억장. 누구보다 존중해 난 여자. 창녀란 말 함부로 난 안 써, 믿어줘 엄.창"이라는 가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리스너들은 "이 가사가 오히려 여성을 더 비꼬는 듯하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그는 자작곡 'Too Real'(투 리얼)이라는 곡에서도 래퍼 키디비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가사를 넣어 논란이 됐다. 또 공연에서 키디비의 이름을 언급하며 성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퍼포먼스를 한 혐의로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래퍼 김효은(왼쪽)과 송민호도 여성 비하 가사로 논랂에 휩싸였다. /김효은 인스타그램, 더팩트DB
래퍼 김효은(왼쪽)과 송민호도 '여성 비하' 가사로 논랂에 휩싸였다. /김효은 인스타그램, 더팩트DB

김효은은 지난 3월 30일 발매한 음원 '머니로드'에서 "메갈X들 다 강간" "난 부처님과 갱뱅(집단 성관계)" "300만 구찌 가방" "니 여친 집 내 안방" "난 절대 안 가 깜빵(감방)" 등의 '여성 혐오' 표현으로 비난을 받았다.

그룹 위너 멤버 송민호는 2017년 5월 Mnet 힙합 경연프로그램 '쇼미더머니4'에서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표현을 해 논란이 됐고, 이후 그는 사과문을 냈다. 송민호는 "래퍼들과 경쟁 프로그램 안에서 그들보다 더 자극적인 단어 선택과 가사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 것 같다"며 "다시 한번 저의 잘못된 표현으로 인해 불쾌하셨을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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