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업인, 트럼프 취임식 참석…기부에도 동참
트럼프·총수 회동 이뤄질까…대관 조직 역할 커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국내 기업들이 눈도장 찍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AP.뉴시스 |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도널드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재계가 바빠지고 있다. 현지 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고, 향후 달라질 정책 환경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접촉면 넓히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들은 오는 20일 예정된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한 미국 출장을 준비 중이다. 대표적으로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회장이 취임식과 당일 저녁에 열리는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조만간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정 회장은 평소 친분이 있는 트럼프 당선인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 초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트럼프 주니어 초청으로 지난해 12월 트럼프 당선인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하기도 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우오현 SM그룹 회장도 한미동맹친선협회의 추천으로 취임식에 초청받았다. 미국통이자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공화당 인사들과 친분이 깊은 류진 풍산그룹 회장 겸 한국경제인협회장도 취임식에 참석한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에 100만달러(약 14억7000만원)를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당 소식을 전하며 "현대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기부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WSJ은 취임식에 호세 무뇨스 사장과 장재훈 부회장 등이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 외에도 삼성, SK, LG 등은 추후 트럼프 당선인과의 접촉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트럼프 당선인 측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뒤 대미 투자 기조나 사업 계획 변경 여부 등을 놓고 트럼프 당선인의 의중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후 모든 국가 수입품에 최대 2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이를 비롯해 정권이 바뀜에 따라 다양한 산업 정책이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됐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22일 미국 방문 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정 회장은 오는 20일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과 무도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뉴시스 |
재계 총수들이 트럼프 당선인과 만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면 협상을 선호하더라도, 한국 기업인이 미국 대통령과 별도 회동을 갖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2017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만 백악관 집무실에서 면담했고, 다른 총수들은 2019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안면을 튼 수준이다.
기업들은 직접적인 만남뿐만 아니라 물밑 접촉도 강화하고 있다. 삼성과 SK, 현대차 등은 글로벌 대관 조직을 통해 미국 정부, 현지 관계자들과 꾸준히 만나고 있다. LG도 글로벌 대응 총괄 조직인 글로벌전략개발원과 워싱턴사무소를 통해 소통 중이다.
미국통 전략 인재들을 전면에 배치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미주 총괄을 지낸 한진만 사장을 미국에 고객사가 많은 파운드리 사업 부장으로 낙점했다. SK그룹은 북미 대관 콘트롤타워인 SK아메리카스 총괄에 미 무역대표부 비서실장, 미 상원 재무위원회 국제 무역 고문 등을 역임한 폴 딜레이니 부사장을 선임했다.
현대차는 무뇨스 사장을 대표이사로 임명한 것뿐만 아니라 미국통인 성 김 고문을 글로벌 대미 협력 담당 사장으로 임명하며 트럼프 2기 대비 채비를 마쳤다. LG에서는 트럼프 1기 시절 외교부에서 북미 외교를 맡았던 고윤주 전 제주특별자치도 국제관계대사를 LG화학 최고지속가능전략책임자(CSSO) 전무로 영입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 국무부 정치군사담당 부차관보, 국방부 차관보 대행,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수석 부차관보 등 핵심 보직을 수행한 마이클 쿨터 전 레오나르도 DRS 글로벌 법인 사장을 해외 사업 총괄 대표로 선임하는 등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차질 없이 글로벌 방산 역량을 지속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과 맷 리브스 조지아주 하원의원이 지난 9일 통상현안을 논의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상의 |
경제단체들도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변화 대응 차원의 움직임을 확대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5' 현장에서 미주한인상공회의소 총연합회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들은 미국 진출 및 미국 내 한인 기업을 지원하는 동시에 트럼프 2기 정책 변화에 공동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대한상의는 또 대미 최대 투자처인 조지아주를 방문, 맷 리브스 조지아주 하원의원을 만나는 등 통상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기업들은 이러한 대응 전략을 유지하며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삼성이 가장 잘하는 것은 글로벌 공급망"이라며 "부품 공급부터 제조까지 소비자에게 가는 루트가 잘 돼 있기 때문에 거기에 AI 기술을 접목하고 혁신시켜서 빠르게 하면 큰 무리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트럼프가 부임하고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생산지 조정, 생산지 간 스윙 생산이라고 해서 같은 모델을 여기저기서 생산하는 체제 등 옛날 동화에 나오듯 여우에게 쫓길 때마다 열어보는 복주머니처럼 우리의 플레이북을 가지고 시나리오별 (대응) 방법을 다 준비해 놨다"고 밝혔다.
구자은 LS그룹 회장 역시 지난 9일 "트럼프 정부든 어느 정부든 우리가 잘 준비하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탄핵 정국이 지속되는 가운데, 민간외교에만 기대를 거는 상황이 기업 입장에서 큰 부담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부와 재계가 '원팀'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지만, 리더십 공백 속에서 다소 역부족일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재계는 "민간외교를 통한 국익 수호에 앞장서겠다"면서도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국정 안정화를 요청하고 있다. 대한상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최태원 회장은 지난 3일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지금의 불확실성이 장기화된다면 그 여파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조속한 국정 안정화를 위해 힘을 더 모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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