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함정 MRO, 연간 20조원 규모…미·중 갈등 속 성장 가능성↑
한화가 1억달러(약 1380억원)에 미국 필리 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한다. 사진은 필리 조선소 전경. /한화그룹 |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한화의 필리 조선소 인수는 우리의 새로운 해양 선박 판도를 바꾸는 이정표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국 해군성 장관이 지난 20일(현지 시간) 한화그룹 미국 필리 조선소 인수와 관련해 밝힌 입장이다. 한화는 1억달러(약 1380억원)에 필리 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한다. 국내 조선·방산업체의 미국 시장 진출 러시에서 한화가 우위를 점했다는 평가가 나온 가운데 HD현대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한화시스템과 함께 미국법인을 통해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필리 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했다. 필리 조선소는 미국 동부 연안 해군기지 3곳과 인접해 있다. 한화오션은 미국 당국 승인을 받은 뒤 구체적인 운영 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다.
미국 외국인 투자 승인 위원회(CIFIUS)는 국가안보에 위협을 끼치는지를 검토할 예정이다. 1차 심사 45일, 국가안보 2차 심사 45일 등 총 90일 정도 소요될 전망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인수 등 조치를 미 대통령에 권고하고, 최종 15일간 결정 기간을 준다.
한화오션의 필리 조선소 인수의 중장기적 목적은 미국 '방위산업'이다. 한화오션은 시설 보안 인증(FCL)을 획득해 미국 주요 해군 함정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미국 정부 규정상 FCL 획득에는 최소 12개월이 소요되며, 일반적으로는 3~5년이 소요된다.
한화오션은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보에 따른 상선·방산 분야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예정"이라며 "해외 생산 거점에 상선·함정 건조 역량을 결합해 매출 다각화 등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한화오션이 필리 조선소 인수로 미국 해군 MRO(유지·보수·운영) 사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평가한다. 함정 분야 MRO 사업 수출은 HD현대중공업이 먼저 이뤄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2022년 필리핀 해군과 함정 수명주기 관리 계약을 체결했다.
미·중 대치 속 미국이 우방국에 함정 MRO 사업을 맡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사이 경쟁이 붙었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설계 및 초도함 구축 사업자 선정을 놓고 발생한 신경전이 해외 사업으로 확대된 셈이다.
델 토로 장관은 지난 2월 한화오션 사업장과 HD현대중공업 사업장을 각각 방문하기도 했다. 권혁웅 한화오션 대표이사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부회장이 각 사업장에서 델 토르 장관에 기술력을 소개했다. 한화오션은 필리 조선소를 매개로 미 해군과 가까워졌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성 장관에게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야드 등을 소개하는 모습(왼쪽)과 권혁웅 한화오션 부회장이 카를로스 델 토로 장관과 협력 방안을 협의하는 모습. /HD현대, 한화오션 |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MRO 시장에 진심인 이유는 '안정적인 수익성'이다. 시장조사업체 모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해군 함정 MRO 시장 규모는 올해 577억6000만달러(약 80조1300억원)에서 오는 2029년 636억2000만달러(약 88조2600억원)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 시장은 약 20조원으로 전 세계 시장의 4분의 1 규모다. 업계에서는 미국 MRO 사업이 연내 가시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화오션은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MRO 대상은 지원함 위주가 될 것이다. 빠르면 올해 상반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HD현대는 한화의 필리 조선소 인수로 다소 난감해진 모양새다. 앞서 HD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필리 조선소와 미국 정부 발주 함정과 관공선 신조 및 MRO 사업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당시 주원호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대표가 직접 참석했다.
이에 대해 HD현대 관계자는 "해당 MOU는 함정·관공선 설계 및 자재 패키지 공급 등으로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라고 설명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도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를 맺었는데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무엇을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에 밀린 감이 있으나 HD현대는 MRO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우선 HD현대중공업은 미국 해군 함정 MRO를 위한 자격 MSRA(Master Ship Repair Agreement)를 신청한 상태다. 신청 결과는 올해 하반기 중 나올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HD현대중공업은 최근 미국선급협회(ABS) 등 국내외 함정 MRO 기업 9곳과 MOU를 체결했다. ABS와 검사·인증 협력 체계를 강화해 미국 해군 함정 MRO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HD현대 관계자는 "미국 함정 사업에 다각적인 전략적 구상과 접근 방법을 갖고 있으며, MRO 사업을 비롯한 미국 함정 사업에 구상대로 여러 파트너와 협력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최신예 이지스함을 유일하게 연구 개발한 기술력과 역량을 바탕으로 해외거점별 파트너십 체결, 현지 건조 체계 구축, 기술이전 패키지 표준화 등을 통해 권역별 해외거점을 구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환태평양 벨트화 전략'을 발표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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