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불교미술 조망하는 '연꽃처럼' 전시 호평
이병철 창업회장·이건희 선대회장·이재용 회장으로 문화예술 관심 이어져
호암미술관이 지난해 리노베이션 이후 처음으로 선보인 고미술 기획전인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전시 3개월 만에 누적 관객 6만명을 돌파했다. /삼성 |
[더팩트|최문정 기자] "따뜻한 애정을 갖고 문화재를 모으는 데 정성을 기울인 것은 그것이 민족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일조가 되리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
이병철 창업회장에서 시작해 이건희 선대회장을 거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이르는 한국 고유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최근 호암미술관이 동아시아의 불교 미술을 조망하기 위해 기획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하 연꽃처럼) 전시가 누적 관람객 6만명을 돌파하며, 국내외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호암미술관이 지난 3월부터 선보인 기획전 '연꽃처럼'은 최근 누적 관람객 6만명을 돌파했다. 하루 평균 관람객 숫자는 1000명이 넘는다. 이 전시는 호암미술관이 지난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이후 처음으로 공개하는 고미술 기획전이자,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3국의 불교 미술을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조망한 세계 최초의 전시다.
연꽃처럼은 한국미술 48건(국보 1건, 보물 10건), 중국미술 19건, 일본미술 25건 등 총 92건의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다. 이 중 한국에 처음 들어온 작품은47건에 달한다. 가령, 해외 개인 소장가로부터 대여한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걸작이다. 이 작품이 국내에서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작품도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 들여왔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소장한 '수월관음보살도'는 작품 보존을 위한 의무 휴지기를 갖기 때문에 현지에서도 쉽게 관람할 수 없다.
'연꽃처럼' 전시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3국의 불고 미술을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조망한 세계 최초의 전시다. /삼성 |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에 대해 "한 곳에서 보기 힘든 불교미술의 명품들"이라고 극찬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이병철 창업회장이 만든 호암미술관에 이건희 선대회장이 수집한 전시품이 자리를 채워 더욱 주목을 받았다. 앞서 이건희 선대회장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불설대보부모은중경', '궁중숭불도', '자수 아미타여래도' 등의 작품을 기증했다. 또한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한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 1-7', '아미타여래삼존도', '아미타여래도', '석가여래설법도' 등 불교 미술품 4종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에 최초로 공개됐다.
이솔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미술학과 교수는 "불교미술 전시에서 볼 수 없었던 공간 연출이 매우 인상적"이라며 "곡선으로 연출한 관음보살도 공간에 이어 직선으로 구획된 백자 불상(백자 백의관음보살 입상) 공간이 이어지는 연출이 현대미술 전시장을 보는 것 같이 신선했다"고 평가했다.
이데 세이노스케 일본 규슈대 교수는 "귀중한 작품들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재회해 한 자리에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었다"며 연구자들의 염원을 이뤄 준 전시회"라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호암미술관은 이번 전시의 기획과 구성에 5년의 시간을 들였다"며 "이건희 선대회장의 기증품이 이병철 창업회장이 만든 미술관에 다시 돌아와 세계적인 작품과 나란히 '세계 최초의 기획'에 함께 전시되는 특별한 인연도 관객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고 설명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한국을 찾은 외빈과 호암미술관에 찾아 '연꽃처럼' 전시를 5차례 감상했다. 이 회장은 '디지털 돋보기' 등의 첨단 기술을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사진은 4일 호암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디지털 돋보기 기능을 사용하는 모습. /삼성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역시 한국을 찾은 주요 외빈과 이번 전시를 5번이나 찾으며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이 회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외빈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한편, 국내 문화·예술 발전에 대한 삼성의 노력과 기여를 자연스럽게 알렸다. 특히 이 회장은 직접 '감지금니 묘법연화경'을 확대해 세밀히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돋보기'를 시연하기도 했다.
삼성은 이병철 창업회장 때부터 문화 예술품 수집과 전시, 젊은 예술가 후원을 지속하고 있다.
호암미술관은 이병철 창업회장이 직접 30여 년 동안 수집한 미술품을 바탕으로 1982년 4월 개관했다. 이 창업회장이 자신이 수집한 물품들이 단순히 개인의 소장품을 넘어, 대중과 소통하며 사회의 문화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사용돼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창업회장은 호암미술관 개관 당시 "문화재를 모으는 데 정성을 기울인 것은 그것이 민족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일조가 되리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 문화재를 영구히 보존하면서 감상과 연구에 활용되기 위한 문화의 공기(公器)로서 미술관을 개관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창업회장은 후일 자서전 '호암자전'에서도 "미술품은 개인의 소장품이지만,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라는 뜻을 거듭 밝혔다.
이번 '연꽃처럼' 전시는 한중일 3국에서 각각 들여온 92건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특히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금동 관음보살 입상'(사진)은 처음으로 국내 일반 관람객들에게 공개돼 이목을 끌었다. /삼성 |
이건희 선대회장은 해외 반출 문화재를 되찾아 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한편, 2004년 리움미술관을 설립했다. 국민소득 증대와 함께 문화적 자산 역시 늘어야 한다는 뜻에 따라 시민들이 방문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리움미술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이 선대회장은 리움미술관 개관식에서 "비록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며 "이는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다"라고 밝혔다.
이 선대회장은 재능있는 예술 인재를 선발해 해외 연수를 지원하고, 백남준, 이우환, 백건우 등 한국 예술인들의 해외 활동도 활발히 후원했다.
해외 반출 문화재에 대한 관심도 이어졌다. 이 선대회장은 생전 에세이를 통해 "상당한 양의 빛나는 우리 문화재가 아직도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실정"이라며 "이를 어떻게든 모아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재용 회장 역시 선대의 문화예술 철학을 계승해 이를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2020년 이 선대회장 사후에 그의 개인 소장품 2만3000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해당 기증품들은 '이건희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미술관에 전시되며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정부는 올해까지 '이건희 컬렉션' 지역별 순회 전시를 이어간다. 내년부터는 미국 워싱턴과 시카고, 영국 런던 등 주요 도시에 해외 전시를 이어가며 한국의 문화적인 수준을 알리는 기회로 삼는다는 구상이다.
munn09@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