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표이사 구미현 씨 거론
구지은 부회장, '세 자매 협약' 근거 법적 분쟁 전망
지난달 31일 서울 강서구 마곡 본사에서 열린 아워홈 임시주주총회에서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오른쪽)이 승리했다. 구지은 부회장 측은 첫째 언니 구미현 씨를 상대로 위약금 관련 법정 분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아워홈·더팩트 DB |
[더팩트|이중삼 기자] 국내 2위 식자재 유통 기업 아워홈에서 벌어진 '남매의 난'이 창업주 고(故) 구자학 회장 장남인 구본성 전 부회장 승리로 끝났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장녀 구미현 씨가 구 전 부회장의 손을 들어줘서다. 회사를 운영해온 막냇동생 구지은 부회장은 경영권을 잃게 됐다. 새 대표이사에는 경영 경험이 없는 구미현 씨가 거론된다. 식품 업계에서는 구 전 부회장·구미현 씨가 회사를 사모펀드(PEF)에 매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구 부회장은 '세 자매 협약'을 근거로 법적 분쟁을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달 31일 열린 아워홈 임시주주총회 결과, 구 부회장은 사내이사 재선임에 실패했다. 구미현 씨를 설득하기 위해 내건 '자사주 매입' 카드도 불발됐다. 반면 구 전 부회장의 장남인 구재모 씨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은 통과됐다. 이로써 아워홈 사내이사(충족 수 3명)는 구재모 씨, 구미현 씨, 그의 남편인 이영렬 씨 등 모두 구 전 부회장 측 인물들로 채워지게 됐다. 새 대표이사 선임 건에 대해서는 이번 주 이사회가 열려 결정될 것이라는 업계 추측이 나오지만, 아워홈 측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고 구자학 회장은 4남매에게 회사 지분을 골고루 나눠줬다. 이것이 훗날 경영권 분쟁의 시발점이 된 셈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비상장사인 회사 지분은 구 전 부회장 38.56%, 구미현 씨 19.28%, 구명진 씨 19.6%, 구 부회장 20.67%로, 구 전 부회장에게 1명만 협력해도 지분이 50%를 초과하는 구조다.
구 부회장이 회사에서 물러나게 된 이유는 구미현 씨가 오빠 손을 잡고, 구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져서다. 구 부회장이 구미현 씨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자사주 매입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임시주주총회 하루 전(지난달 30일)에 구 부회장과 구명진 씨에게 회사 대표이사를 맡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구미현 씨는 경영권 분쟁에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실익에 따라 구 전 부회장과 구 부회장 사이를 오가면서 편을 들어줘서다. 일례로 2021년 구미현 씨는 구 부회장, 구명진 씨와 '세 자매 협약'을 맺고, 보복운전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구 전 부회장을 몰아냈다.
그러나 이번 임시주주총회에서 구미현 씨는 오빠 편에 섰다. 구 부회장의 배당금 축소 결정에 불만을 품은 것이 이유로 지목된다. 세 자매 협약은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동일하게 행사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이를 어길 시 개인당 300억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관련 업계에서는 구 부회장 측이 구미현 씨가 협약을 어긴 것을 근거로 법적 분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위약금은 최대 12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지분 매각에 관심이 큰 구미현 씨 입장에서는 매각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구 전 부회장과 구미현 씨는 아워홈을 사모펀드(PEF)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협약 위반에 따라 구미현 씨가 보유한 지분이 가압류 될 가능성이 있다"며 "제동이 걸리면 경영권 매각도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워홈 임시주주총회가 지난달 31일 서울 강서구 마곡 아워홈 본사에서 열렸다. 그 결과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은 회사를 떠나게 됐다. /임영무 기자 |
◆ 아워홈 노조 갈등 예고…신사업 '불투명'
한국노총 전국 식품산업노동조합연맹 아워홈 노동조합(아워홈 노조)은 그동안 구 부회장에 힘을 실어왔다. 최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구미현 씨 집 앞에서 '트럭시위'를 벌이며 "구 부회장 경영 체제가 유지돼야 한다. 경영에 무지한 구미현 씨 부부는 사내이사에서 즉시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시주주총회가 열린 당일에도 서울 강서구 마곡동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노조 측은 경영권이 매각되면 직원 처우가 나빠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통상 사모펀드가 회사를 인수하면 실적을 높이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구조조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아워홈 성장세가 꺾일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아워홈은 매출 1조9834억원, 영업이익 942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8%, 76% 늘었다. 외형 성장·수익성 모두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이는 단체급식, 외식사업, 글로벌 사업 등이 고르게 성장해서다. 노조 측이 구 부회장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이유다.
구 부회장 체제에서 추진 중이던 신사업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구 부회장은 최근까지 본인 직속 조직인 '신성장테크비즈니스부문'을 신설해 푸드테크 등 신사업 발굴에 주력해왔다. 일례로 지난달에는 카카오헬스케어와 AI 기반 '초개인화 헬스케어 솔루션 개발'을 위한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그러나 구 부회장이 경영권을 잃게 되면서 신사업은 안갯속에 빠진 모양새다. 때문에 새로운 이사진과 노조 측 간 갈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가업 총수에 대한 사회적 잣대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대표가 들어오는 것 자체가 심각한 경영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