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치 희석 막는다 vs 경영권 간섭이다
영풍 부진·신사업 실패가 '근본 원인'
70년간 이어진 영풍그룹과 고려아연의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이 끝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는 16일 열리는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 영풍 장씨 일가와 고려아연 최씨 일가가 경영과 관련한 표 대결을 벌일 전망이다. /각 사 제공 |
[더팩트 | 김태환 기자] 3월 고려아연 주주총회를 앞두고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측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장외 설전을 벌이고 있다.
고려아연이 신주인수권 제3자 배정 대상 관련 정관 변경과 결산 배당과 관련해 영풍 측이 문제제기를 한 가운데,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싸움으로 격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영풍과 고려아연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의결권대리행사권유참고서류'를 공시했다.
고려아연은 머로우소달리코리아를 포함해 총 5곳의 법인을 대리인으로 정했다. 영풍은 케이디엠메가홀딩스 등 3곳의 법인에 업무를 맡겼다.
이를통해 영풍과 고려아연은 각자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업무를 맡을 법인을 선임하고, 직접 개인주주를 일일이 찾아 설득하고 위임장을 받고 있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오는 19일 개최하는 주주총회 안건과 관련해 '강대강' 대립을 이어오고 있다.
고려아연은 주총 안건으로 주주가 아닌 제3자배정 유상증자 시 외국 합작법인에만 신주를 발행할 수 있다는 정관을 국내 법인에도 신주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해당 정관을 삭제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영풍은 무제한적 법위의 제3자배정을 허용하려는 의도라면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또 2023년 결산 배당으로 5000원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중간배당을 포함해 총 1만5000원을 배당하기로 했는데, 영풍은 전년 배당금 2만원과 비교해 5000원 줄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려아연은 모든 이익금을 주주 환원에 쓴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치와 주주권익을 떨어뜨린다고 재차 반박한 상태다.
재계에서는 영풍과 고려아연의 갈등이 장형진 고문과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다툼으로 본격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영풍그룹은 고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설립한 뒤 이후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장씨 일가가 전자 계열사는 맡아 경영해 왔다.
갈등이 시작된 것은 3대째 이어져온 뒤 신사업 추진이 발단이 됐다. 고려아연은 기존 제련 부문에서의 실적은 물론, 신사업 확장에서의 성과가 영풍을 뛰어넘었다.
고려아연의 영업이익은 2018년 6475억원, 2019년 7292억원, 2020년 7808억원, 2021년 9246억원, 2022년 9314억원을 기록했으며, 지난해는 6591억원의 실적을 거두었다.
반면 영풍은 2018년 300억원 영업적자, 2019년 500억원 영업이익, 2021년 728억원의 영업적자, 2022년 107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영풍은 지난해 1~3분기까지 536억원 적자를 보이며 연간 영업이익도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고려아연과 영풍의 최근 5년간 영업이익 추이. /금융감독원 |
업계에서는 영풍의 부진은 본업인 제련사업에서의 부진과 신사업 실패가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영풍이 운영하는 석포제련소는 아연과 황산을 제외하곤 생산제품이 전무하다시피하지만,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는 아연과 황산을 비롯해 연, 구리, 금, 은 등 금속제품과 더불어 희소금속인 인듐, 비스무트, 안티모니 등도 함께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최윤범 회장 취임 이후 고려아연은 신재생에너지, 그린수소, 이차전지 소재 등 3대 신사업을 앞세운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내세웠다.
반면, 영풍의 신사업들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밴드 제작을 하는 영풍산업, 회로 기판을 만드는 영풍전자 등이 부진이 지속됐으며 건설업 등을 벌였다가 정리한 사례가 있다.
비철금속업계 관계자는 "영풍의 석포제련소는 아연과 황산을 제외하곤 별다른 생산제품이 없는 반면 고려아연은 기술 고도화를 꾸준히 추진해 훨씬 많은 종류와 양의 제품을 생산하고, 폐기물도 최소화하고 있다"면서 "이와 더불어 영풍은 과거부터 꾸준히 신사업 실패를 겪어온 반면 고려아연은 새로운 캐시카우를 꾸준히 창출하는 등 경영과 실적 측면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지적했다.
이렇다보니 최씨 일가가 경영권 독립에 대한 의지가 확고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장씨 일가가 최대주주로 있다보니 사실상 신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여러가지 견제가 들어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실제 장 씨 측은 계열사를 총동원해 지분을 직접 매입하는 방식으로 지분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장씨일가는 계열사 씨케이, 에이치씨, 시네틱스, 코리아써트, 영풍전자 등을 통해 지난해 약 1950억원의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했다. 고려아연으로부터 받은 약 1500억원의 배당금을 전부 지분 매입에 사용한 셈이다. 영풍의 지분은 25.2%이며 장형진 고문과 특수관계인의 지분 6.8%를 합하면 32% 수준이 된다.
이에 최 씨 측은 주로 LG, 한화, 현대자동차 등 외부 우군을 활용한 우호지분을 모으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최윤범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 18.1%에 더해 LG화학과 한화 에너지 USA, 현대자동차 북미 투자법인 등은 고려아연 지분을 도합 13.7%를 보유하고 있다. 모두 합하면 31.8% 수준이다.
재계 관계자는 "영풍은 고려아연에서 받은 배당금을 고려아연 주식 매입에 사용했는데, 만일 주주가치를 위해서였다면 주식 매입 외적으로 사업에 대한 추가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다"면서 "결국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지분율을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풍 측은 주총과 관련한 반대 입장이 경영권과 완전히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영풍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한화와 현대차 등에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약 16% 상당의 주식의 가치가 희석됐는데, 희석된 만큼 주주의 손실이 나타나게 된다"면서 "그동안 기존 주식가치의 희석을 복구하는 차원에서 주식을 매입해온 것이며, 이번 정관변경과 배당금 문제도 결국 주주로서 주주이익이 침해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지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차원의 반대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주총에서는 8%의 지분을 들고 있는 국민연금과 더불어 나머지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영풍과 고려아연이 직접 소액주주들을 만나 설득하고 있는 가운데, 당장 눈앞의 배당과 관련해 영풍 측의 손을 들어주는 소액주주가 많다"면서 "고려아연은 신사업의 당위성과 영풍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잘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kimthi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