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복인 용퇴 '꼬리 자르기'…내부인사 선출 시 똑같아"
백복인 KT&G 대표이사 사장의 후임으로 누가 선출될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더팩트 DB, KT&G |
[더팩트|윤정원 기자] 백복인 대표이사 사장이 KT&G를 이끈 지 9년 만에 용퇴 의사를 밝힌 가운데 차기 수장이 누가 될지 시장의 이목이 쏠린다.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이 거세지며 이번에는 내부 인사가 아닌 외부 인사가 발탁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 백복인 "새로운 리더십 필요"…KT&G, 롱리스트 확정
KT&G는 지난 10일 백복인 사장이 이달 9일 열린 이사회에서 연임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백 사장은 'KT&G의 글로벌 톱 티어 도약과 변화를 위해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면서 "미래 비전 달성과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 한 차원 더 높은 성장을 이끌 역량 있는 분이 차기 사장으로 선임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백복인 사장 없이 차기 사장 공개 모집 서류 접수가 마무리됐다. 이달 11일 KT&G 지배구조위원회는 외부 14명, 내부 10명 등으로 구성된 차기 대표이사 후보 총 24명의 롱리스트를 확정했다고 알렸다. 사외 후보군에는 공개모집 응모자 8명과 서치펌 추천후보 6명의 사외 지원자 14명 전원이 포함됐다. 사내 후보군에는 고위경영자 육성 프로그램 대상자(부사장·전무급 인사) 가운데 10명이 포함됐다.
KT&G 지구위는 인선자문단과 사장 후보 심사대상자(1차 숏리스트)를 선정, 2월 중순 사장 후보 심사대상자(2차 숏리스트)를 압축한 후 그 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어 2월 말 최종 후보자를 선정하고 3월 말 정기주주총회에서 차기 사장 선임이 결정되는 수순이다.
◆ 최장수 CEO 마무리, FCP '1%의 반란' 관심
2015년 10월 사장 자리에 오른 이후 'KT&G 최장수 CEO'라는 타이틀을 얻은 백 사장이 그 명성을 이어갈지 여부는 그간 업계의 큰 관심이었다. KT&G는 그간 현 사장이 연임 의사를 표명할 경우 다른 후보자들보다 우선적으로 심사하는 제도를 적용해 왔다. 이를 두고 '황제 연임', '셀프 연임'이라는 비판도 적잖았다.
백 사장은 2018년 연임에 성공했고, 2021년 또 한 차례 연임에 성공했다. KT&G가 민영화된 이후 CEO를 지낸 곽영균(2004년 3월~2010년 2월), 민영진(2010년 2월~2015년 7월) 사장 등은 모두 연임에 성공했지만, 재연임까지 성공한 사례는 없었기에 백 사장의 거취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최근까지 백 사장의 4연임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으나, KT&G '1%' 지분을 가진 행동주의 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판도가 바뀌었다.
다만, KT&G 관계자는 "백복인 사장의 용퇴 결정은 외부 영향과 전혀 무관하며, 회사의 미래비전 달성과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의 한 차원 더 높은 도약을 위해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CEO 개인의 용단이다"고 밝혔다.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는 지난 2022년 10월부터 KT&G에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 홈페이지 갈무리 |
◆ 이상현 대표 이끄는 FCP, 어떤 곳?
2020년 설립된 FCP는 거버넌스 개선을 투자전략으로 삼고 있다. FCP를 이끄는 이상현 대표는 서울대학교,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싱가포르투자청(GIC)과 맥킨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칼라일 그룹을 거쳤다.
FCP가 KT&G와 관련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22년 10월 26일부터다. 당시 FCP는 KT&G에 인삼공사 분리 상장, 궐련형 전자담배 글로벌 직접 진출 요구하며 움직임을 알렸다. 이후 KT&G에 인수합병 후 통합(PMI) 계약서의 열람과 등사 등을 요청하는 등 볼륨을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정기주주총회까지만 해도 FCP가 거둔 성과는 미미했다. 지난해 3월 28일 KT&G 제36기 주총에서 다뤄진 안건은 △재무제표 승인 △이익배당 및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 승인 △정관 일부 변경 △자기주식 소각 △자기주식 취득 △사외이사 현원 증원 여부 결정 △사외이사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의안 등 도합 34건에 달했다.
당시 주주들의 관전 포인트는 단연 '배당 규모'와 '사외이사 선임' 부분이었다. 그러나 해당 안건의 승기는 모두 이사회가 쥐었다. 당시 FCP가 그나마 얻은 성과는 분기배당이 전부였다. FCP 측이 제안하고 KT&G 이사회도 찬성했던 분기 배당 신설 건에 대해 참석 주식 중 82.2%가 찬성표를 던졌다.
FCP는 그럼에도 분기 배당에 그친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 주주제안에 나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상현 FCP 대표는 주총 직후 "주주들에게 좋은 일이라 생각하는 만큼 포기하지 않고 될 때까지 하겠다"고 강조했다.
◆ FCP "백복인, 사장 후보에서만 빠졌을 뿐"
공언대로 꾸준한 주주제안에 따라 FCP의 입김은 강해졌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KT&G가 이번에는 내부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를 차기 대표로 영입할 가능성도 불거진다.
본래 KT&G는 2002년 민영화 이후 4명의 사장 모두 내부 출신으로 뽑았다. 방경만 수석 부사장과 도학영 영업본부장, 이상학 지속경영본부장, 오치범 제조본부장, 박광일 부동산사업본부장 등 5명의 부사장이 주요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다.
하지만 FCP는 내부 인사가 차기 사장으로 선출될 경우 또다시 '내부 세습'이라는 결과가 초래될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FCP 관계자는 "백 사장이 용퇴하는 것은 '꼬리 자르기'와 다름없다. 백 사장은 사장 후보에서만 빠졌을 뿐, 장학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면서 "또다시 내부 인사가 차기 사장으로 뽑히면 실적 악화, 주가 하락 등에 있어 과거와 '비슷한' 일이 아닌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FCP는 KT&G의 이사회 구성 절차에도 우려를 표한 바 있다. FCP 측은 "차기 사장 후보를 결정하는 지구위와 사추위가 모두 백 사장 재임 시절 선임된 사외이사로 구성돼, KT가 지적받았던 이권 카르텔과 유사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