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사례 1만 건 넘어
부동산 PF발 유동성 리스크 지속
2023년은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전세사기와 부동산 PF 부실 우려 등의 문제가 가시화했다. /더팩트 DB |
2023년 부동산 시장의 화두는 많은 서민을 울린 전세사기와 과도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문제였다. 뒤늦게 정부와 국회가 전세사기특별법을 마련해 피해자 구제에 나섰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로 지정되기는 어려웠고, 추가 대출만 연계해 주는 등 실질적인 피해 지원책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PF 대출 문제는 진행형이다. 지난해 부동산 시장을 키워드를 통해 정리했다. 또 갑진년(甲辰年)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될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다. 나아가 건설업계의 2024년 경영 전략도 살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최지혜 기자] 2023년 부동산 시장에선 고금리·고물가 속 건설사들의 유동성, 전세 불안 문제 등이 교차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부동산 결산 키워드로 '전세사기'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꼽았다.
우선 전세사기 문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전세사기는 올해 초부터 피해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 등 비아파트 전세 기피와 월세로 수요 이전 등이 발생하면서 임대차 시장 전반에 불안이 가중됐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지난해 1~10월 전체 임대차거래 가운데 월세 비중은 54.9%로 전년 동기 대비 3.1%포인트 증가했다"며 "전세사기 문제로 세입자들이 전세 대신 월세를 찾은 영향"이라고 진단했다.
◆'전세사기' 임대차 시장 전반에 파장
정부가 집계한 전세사기 피해자 규모는 1만 건을 넘어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열린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제17회 전체회의에서 470건을 전세사기 피해자 등으로 최종 가결했다. 추가 피해자 가결로 누계 피해 건은 1만256건으로 늘었다.
피해가 속출하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해 6월부터 전세사기특별법이 시행됐다. 특별법이 도입되면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행정적인 절차가 마련됐다.
이와 함께 전세금 미반환 임대인을 공개해 임차인이 사전에 전세사기를 방지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달 공개된 국토교통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상습 채무불이행자 1차 명단에는 17명의 임대인이 실렸다. 이 가운데 서울 양천구에 거주하는 문모(42) 씨가 지난 5월부터 보증금 65억6600만 원을 미반환해 채무액이 가장 많았다. 정부는 오는 3월까지 90명, 연말까지 450명 규모의 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 단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전세사기 피해자 주택의 현관문에 안내문들이 붙어있다. /남윤호 기자 |
전세사기 처벌 사례도 속속 나왔다. 올해 검찰은 전세사기 사건에서 15건에 대해 법정최고형인 징역 10~15년을 구형했다. 이 중 10건은 1심에서 징역 7년 이상이 선고됐다.
대표적인 전세사기 건으로 꼽힌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의 임대사업자 김모(50대·여) 씨는 지난해 7월 1심에서 검찰이 구형한 대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김 씨는 서울 강서구와 관악구 등 수도권 일대에서 두 딸의 명의를 빌려 무자본으로 400여 채가 넘는 신축 빌라를 사들였고, 임차인 85명의 전세보증금 183억 원을 가로챘다.
수도권 일대에서 100억 원대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권모(30대·남) 씨도 지난해 10월 1심에서 검찰 구형과 같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빌라왕'으로 불린 이모(30대·남) 씨 역시 118명으로부터 보증금 315억 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들은 더욱 실효성 있는 피해 구제 방안과 가해자 엄중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는 지난달 13일 부산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시는 실질적인 피해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피해자로 지정되기 어렵다. 또 지정되더라도 추가 대출을 연계해 줄 뿐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전세사기 피해자가 많은 것으로 집계된 대전 지역에선 피해자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법원에 전세사기범 엄벌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이어진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올해에서 지속될 전망이다. 수도권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더팩트 DB |
◆ 건설업계, '부동산 PF 대출' 문제 심화
건설업계에선 부동산 PF 대출로 인한 중소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이어졌다. PF 차입금 및 유동화 증권 차환 부담은 지난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지난해 들어 정부 지원책으로 다소 완화했다. 그러나 건설업계의 업황 부진 지속과 고금리 상황 등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문제가 심화했다.
부동산 PF는 분양 사업자가 상가, 물류센터, 아파트, 주상복합 등을 짓기 위해 미래에 예상되는 분양 수입금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통상 기존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하는 방식과 달리 PF는 미래 발생할 수익을 담보로 한다. 그러나 부동산 침체기가 이어지면서 사업 수익성 확보가 불투명해지면서 PF 부실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도를 맞는 중소 건설사들도 속출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을 보면 지난해 부도가 난 건설사는 총 13곳으로 집계됐다. 시공 능력 평가 100위권의 건설사의 부도와 법정관리 신청도 잇따랐다. 지난 2022년 우석건설(202위)·동원산업건설(388위)·대우조선해양건설(83위)에 이어 지난해엔 대창기업(109위)·신일건설(113위)·에치엔아이엔씨(133위)이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대다수는 유동성 문제를 겪으면서 정상 영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된 경우가 많았다.
시공 능력 평가 16위 대형건설사인 태영건설도 지난달 28일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했다.
이처럼 건설업계 전반에 유동성 문제가 확산하자 정부도 PF 지원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해 9월 기존 15조 원 규모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주택금융공사(HF)의 PF 대출 보증 규모를 25조 원까지 늘렸다. PF 대출 보증 대출한도도 전체 사업비의 50%에서 70%로 확대했다. 시공사 도급순위와 신용등급, 자기자본 선투입 요건 등 PF 대출을 위한 심사기준도 완화했다.
지난달에는 10년 만에 PF조정위원회가 가동됐다. 정부는 조정 대상 사업지에 사업 자금을 지원한다. 지난달 조정위원회에선 사업 7건에 대한 조정안을 의결했다.
다만 정부 지원책에도 PF 부실로 인한 건설업계 유동성 우려 불식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PF 부실로 인한 유동성 문제는 더욱 가중할 것"이라며 "올해는 기존 주택매매거래와 임대차 시장보다는 그간 잠재했던 PF 문제가 가시화하는 점이 부동산 업계의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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