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이슈에 황제주 등극 후 액면분할
10년째 1만 원 밑에서 주가 횡보
2007년 9월 황제주에 오른 동일철강은 2023년 12월 1000원대 주가에 거래되고 있다. /더팩트 DB |
한때 1주당 100만 원을 호가하며 황제주 반열에 오른 종목들이 있다. 국내 증시 역사상 황제주 자리에 올랐던 종목은 코스피 11개, 코스닥 5개 등 도합 16개 종목이다. 높은 가격만큼 투자자와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현재 국내시장에서 황제주는 자취를 감췄다. 경영진을 둘러싼 논란, 실적 또는 업황 악화, 물적분할 등 왕좌를 내려놓은 이유는 다양하다. 최근에는 고금리·고유가·고환율 '3고' 우려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같은 중동발 리스크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증시가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한때 황제주로 위상을 뽐냈으나 여러 가지 복합적 이유로 현재는 몸집을 줄인 격동의 종목들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올해 2차전지 소재업체 에코프로가 무려 16년 만에 '황제주(주당 100만 원 주가)'에 등극하자 과거 어떤 종목이 황제주에 올랐는지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16년간 주당 100만 원을 기록한 종목이 아예 없었을 뿐더러, 기술·성장주 중심의 코스닥 시장에서는 역대 단 4번밖에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에코프로 덕에 황제주를 알게 됐다는 투자자들도 종종 나왔다.
그러나 에코프로가 황제주에 올랐을 때도 향후 주가가 100만 원선을 오래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는 적었다. 앞서 코스닥 황제주에 오른 '선배 황제주'들의 말로가 최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올해 7월 26일 153만 9000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에코프로는 12월 12일 종가 기준 66만 원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 시장에서 에코프로 전에 주당 100만 원 주가를 찍었던 기업은 2000년 핸디소프트, 리타워텍, 신안화섬과 2007년 동일철강이다. 이 중 동일철강을 제외한 3종목은 최대 주주 횡령, 회계 처리 위반, 주가 조작 혐의 등 사유로 상장 폐지되면서 코스닥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사실상 코스닥 시장에 남아있는 에코프로 이전 황제주는 동일철강뿐이다.
2007년 9월 7일 110만 2800원을 돌파하면서 황제주에 오른 동일철강은 올해도 코스닥 시장에서 거래되는 종목이다. 다만 10년째 주가가 1만 원을 넘지 못하면서 과거 황제주에 등극했던 사실을 아는 이도 적을 만큼 명성을 잃은 상태다. 동일철강은 지난 14일 타법인 증권 취득자금을 위한 유상증자로 깜짝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1845원을 가리켰으나 여전히 1000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동일철강은 2007년 9월 7일 110만2800원을 돌파하면서 황제주에 올랐으나 급락세를 이어가다가 같은 해 12월 액면분할로 5만 원대로 주가로 내렸다. 2010년 9월부터 1만 원대 주가 밑으로 떨어진 후 10년 넘게 1만 원대 아래 주가에서 횡복하고 있다. 사진은 2007년 8월 7일부터 2017년 8월 7일까지 동일철강 주가 추이 그래프.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 캡처 |
◆ '17거래일 연속 상' 동일철강, 황제주 어떻게 등극했나
부산에 소재한 동일철강은 1967년 설립된 열간 압연 및 압출을 통해 봉강이나 형강(2020년 사업부 매각) 등을 생산하는 철강 주조업체다. 1993년 오너 2세인 장인화 회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해 갔고, 장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소유하고 있는 화인그룹 지주사 화인인터새셔널과 상장사 화인베스틸, 조선사 대선조선 등을 지배구조하에 두고 있다. 현 동일철강 대표이사는 장 회장의 조카인 장재헌 사장이 맡고 있다.
동일철강의 전성기는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8월 25일 범LG가 오너 3세인 구본호 씨가 동일철강 지분을 인수한다는 소식에 무려 17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그리며 같은 해 9월 황제주에 등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주들의 마음고생은 동일철강이 황제주에 오른 순간부터 시작됐다. 당시 구 씨는 코스닥 시장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면서 그가 손을 댄 종목의 주가가 폭등하는 경향이 있었을 만큼 영향력이 높았지만, 인물 한 명의 행보에 따라 주가가 좌우되는 '재벌 테마주'로 묶이면서 심각한 고평가 논란을 받기도 했다.
황제주에 오른 지 한 달 만에 100만 원 이하로 주가가 떨어진 동일철강은 결국 같은 해 12월 24일 액면분할을 단행해 5만 원대 종목으로 내려 앉았다. 이듬해인 2008년 5월 26일 구 씨가 불공정거래 의혹(무관 결론)으로 검찰 조사를 받자, 동일철강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하면서 2만 원대까지 내렸고, 여러 차례 유상증자와 무상증자를 단행하면서 지분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주력했다. 2009년 3월 장인화 회장이 구 씨로부터 지분 매입을 통해 경영권을 되찾으면서 동일철강 최대 주주(23.88%)에 자리하고 있다.
동일철강 컨소시엄이 지난 2020년 12월 29일 부산 영도구 대선조선 본사에서 채권단 동의를 거쳐 1600억 원 규모의 대선조선 인수 본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이날 채권단을 대표해 화상으로 계약식에 참여했다. 안종혁 당시 수출입은행 기업구조조정단장(왼쪽부터), 이수근 대선조선 대표이사(모니터속 왼쪽), 장인화 동일철강 회장(모니터속 오른쪽), 권우석 수출입은행 부행장의 모습. /수출입은행 제공 |
◆ '워크아웃' 대선조선 살리기에 깜짝 상한가 기록도…동일철강 "답변 어려워"
지난해부터 철강경기 악화로 1000원대 주가로 내려앉은 동일철강은 지난달 13일 깜짝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2000원대 주가까지 오른 경력이 있다. 3년 전 인수한 대선조선에 89억 원 규모의 채무보증을 결정했다고 공시하면서 경영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중소조선사인 대선조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동성 문제를 겪다가 2010년 채권단 관리체제에 돌입한 후 여러 차례 구조조정을 거쳐 2021년 동일철강, 동원주택 등 부산 소재 기업 5곳으로 구성된 동일철강 컨소시엄에 피인수됐다. 대선조선 지분 45.10%를 보유하고 있는 동일철강은 대선조선을 살리기 위해 그간 1000억 원이 넘는 유상증자나 채무보증 등을 진행했으며 단기 유동성을 해소하는데 최대 주주로서 해야 할 일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대선조선은 지난달 23일부터 워크아웃을 개시하면서 경영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선조선 관계자는 "채권단과 긴밀한 협의와 협조를 통해 부산지역 조선 대표기업 중 하나인 대선조선의 새로운 미래를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동일철강의 52주 신고가는 지난 6월 21일 기록한 2555원, 최저가는 10월 19일 1050원이다. 이후 대선조선 채무보증 소식에 반등하기도 했으나 다시 1000원대 초반 주가에서 횡보하고 있다. /정용무 그래픽 기자 |
그러나 동일철강은 12월 들어 다시 1000원대 초반 주가로 내려와 있다. 동일철강의 시가총액은 13일 기준 228억 원, 최근 7거래일간 일평균 거래량은 5만 주가 채 되지 않는다. 지난해 매출은 322억 원, 영업이익은 9억 원에 그쳤으며 당기순이익은 156억 원 손실로 3년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사업 실적보다 경영권 이슈에 주목도가 높았고 과거 황제주에 오른 영광이 무색할 만큼 1000원대 주가에 허덕이는 소외된 종목 중 하나로 꼽힌다.
주주들은 대선조선 워크아웃 이후 경영정상화가 본궤도에 오르면 동일철강 주가가 상승 여력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지만 단기간 상승은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새다. 최근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 추진과 함께 오름세를 보였다가 유치 실패 이후 다시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는 부산엑스포 관련 주로 꼽힌 것도 실망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동일철강 역시 저조한 실적은 물론 대선조선 살리기에 투입된 막대한 투자금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주주가치 제고는 물론 전환사채(CB) 상환을 위해 자산 매각과 대주주의 사재 출연 등 대응 방안이 고려되나, 동일철강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동일철강 관계자는 "담당자가 없어 답변이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