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식품업계 '희망퇴직' 러시
100여 명 신규공채…2014년 이후 최대
회사 비전·가치 실현 중점, 핵심 인재 선발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이 최근 '2023년 하반기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했다. 사진 우측 상단은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 /이중삼 기자·아워홈 |
[더팩트|이중삼 기자] 신년을 앞두고 유통가에 대대적인 '희망퇴직' 칼바람이 몰아치면서 업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일각에선 '시작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심지어 만 35세 이상이면서 근속연수 5년 이상 직원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기업도 등장했다. 인력 감축에 나선 이유는 경기 불황→국내 소비심리 위축→실적 악화→구조조정 등 네 단계로 정리된다. 경기 회복은 더딘 상황에서 고물가 현상이 이어지자, 소비자들이 지갑을 굳게 닫았고, 이는 기업 실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수익성 악화를 버티다 못한 기업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칼날을 빼 든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 신입사원 100여 명을 공개채용하겠다고 선포한 대표이사가 나타나 눈길을 끈다. 바로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을 이끄는 구지은 대표이사 부회장의 얘기다.
아워홈은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3일까지 하반기 신입사원 공개채용에 나섰다. 채용 예정 인원은 100여 명 수준으로 지난 2014년 이후 최대 규모다. 유통업계에서 희망퇴직 칼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대규모 채용에 나선 아워홈이 관심을 끌고 있다.
아워홈 관계자는 12일 <더팩트> 취재진과 통화에서 "지난해부터 아워홈은 해외사업 강화, 디지털 전환을 목표로 삼고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며 "이번 채용 역시 국내외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적합한 인재 모집을 하기 위해 대규모 채용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세대와 동국대, 서강대, 국방전직교육원 등 9개 대학교와 채용센터에서 채용설명회도 열었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가 대규모 채용에 나선 이유는 구지은 부회장의 신념이 반영된 것이 크다. 구 부회장은 인재 발굴에 앞장 서 왔다. 일례로 지난 2021년 12월 구 부회장은 직접 신입사원 최종면접에 면접관으로 등판했다. 구 부회장은 당시 면접관으로서 면접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서류를 꼼꼼히 살피고 궁금한 점은 직접 질문하는 등 인재 선발에 적극 나섰다. 직접 "MZ세대(밀레니엄+Z)가 생각하는 X세대의 절대 이해 안 되고 공감 안 되는 부분은",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덕질은" 등 질문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이와 관련, 아워홈 관계자는 "구 부회장은 평소 사회적 기업, 글로벌 인재, 열정과 창의를 인재경영 키워드로 자주 거론해왔다"며 "이번 대규모 채용도 구 부회장의 철학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최종면접에서 구 부회장이 다시 면접관으로 참여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아직은 정해진 것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비상장사인 아워홈 실적은 최근 3년 새 우상향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매출은 1조8354억 원, 영업이익은 536억 원으로 전년(매출 1조7407억 원·영업이익 254억 원)과 비교해 각각 5.4%, 109.3% 증가했다. 2021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2020년, 매출 1조6252억·영업손실 93억 원) 대비 각각 7.10% 올랐고, 흑자전환했다.
전국 대다수 지역에서 비가 내린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
◆ 유통업계 '경영효율화' 목적 '희망퇴직' 줄이어
아워홈과 별개로 현재 유통기업들은 희망퇴직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경영효율화'를 꾀하기 위해 인원 감축에 나섰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악화된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해 '긴급 처방'으로 인건비에 손을 댄 것으로 분석된다. 희망퇴직에 나선 대표 기업은 △SPC파리크라상 △롯데홈쇼핑 △롯데컬처웍스 △롯데마트 △11번가 등이다.
SPC파리크라상은 지난달 초 파리바게뜨, 쉐이크쉑 등 14개 브랜드 소속 15년 차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이유는 원부자재 가격, 인건비 등 비용 상승에 따른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큰 틀에선 실적 악화가 요인으로 분석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파리크라상 매출은 연결 기준 △4조7762억 원(2021년) △5조3095억 원(2022년), 영업이익은 △770억 원(2021년) △464억 원(2022년)을 기록했다. 2021년과 2022년을 비교하면 매출은 11.1%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39.7% 감소했다.
롯데홈쇼핑도 지난 9월 만 45세 이상이면서 근속연수 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잇따른 수익성 하락에 칼을 빼든 것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롯데홈쇼핑 2분기 매출은 2310억 원, 영업이익은 2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매출 2720억 원·영업이익 280억 원) 대비 각각 15.2%, 92.8% 대폭 줄었다. 올해 3분기 매출은 2190억 원, 영업손실은 8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매출 2560억 원·영업이익 210억 원) 대비 매출은 14.3% 줄었고, 수익성은 적자 전환했다.
롯데컬처웍스도 지난달 29일부터 근속 3년 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자구 노력을 펼쳤지만 실적 악화가 지속되자, 희망퇴직 카드를 꺼냈다. 올해 2분기 매출은 1270억 원, 영업이익은 2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매출 1210억 원·영업이익 110억 원) 대비 매출은 4.5% 늘었고, 영업이익은 79.5% 급감했다. 올해 3분기 매출은 1540억 원, 영업이익은 3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매출 1880억 원·영업이익 210억 원) 대비 각각 18.2%, 85.1% 줄었다.
롯데마트도 지난달 29일부터 전 직급별 10년 차 이상 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롯데마트는 급변하는 유통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이날 "실적 악화 요인보단 경영효율화를 이루기 위한 차원에서 희망퇴직을 시행한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2분기 롯데마트 매출은 1조4220억 원, 영업손실은 3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매출 1조4410억 원·영업손실 70억 원) 보다 매출은 1.3% 줄었고, 영업이익은 40억 원 개선됐다. 올해 3분기 매출은 1조5170억 원, 영업이익은 51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매출 1조5600억 원·영업이익 320억 원) 대비 매출은 2.8% 줄었고, 영업이익은 57.3% 늘었다.
11번가는 만 35세 이상이면서 근속 5년 이상 직원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올해 3분기 11번가 영업손실은 32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62억 원) 대비 적자 규모(37억 원)를 10.2% 줄이긴 했지만, 적자 늪에선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출은 1887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1899억 원) 대비 0.6% 줄었다. 11번가 관계자는 "이번 희망퇴직 프로그램 시행으로 보다 효율적인 조직과 견고한 인적 구성을 갖추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2025년 턴어라운드를 위해 지속적인 수익성 개선을 위한 작업을 추진 중이다"고 말했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7.2로 10월(98.1)보다 0.9포인트(p) 떨어졌다. /한국은행 |
◆ 업계 4분기 전망 불투명…소비자심리지수 '뚝'
유통업계가 희망퇴직에 나서게 된 이유는 경기 불황 여파가 크다. 지난달 2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1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의하면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7.2로 10월(98.1)보다 0.9포인트(p) 하락했다. 7월 103.2 이후 넉 달 연속 하락세다. 특히 9월(99.7)부터는 100 이하로 떨어졌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00보다 크면 낙관적으로 판단하고, 100 아래면 비관적인 상태로 본다. 업계에선 고물가·고금리 여파로 경기 전반에 대한 소비자들 인식이 악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내년 소매시장 전망까지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유통업계 회복세는 더딜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9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2024년 소비시장 전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핵심은 내년 소매시장이 올해 대비 1.6% 성장에 그칠 것이란 점이다. 응답자 중 56.8%가 내년 유통시장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유로는 △소비심리 위축(66.2%) △금리 인상·가계부채 부담 증가(45.8%) △고물가 지속(45.8%) △원유·원자재 가격상승(26.8%) 등이 꼽았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국내 시장에 주력하는 유통기업의 경우 소비자들의 동향이 실적에 영향을 미친다"며 "내년에도 경기가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유통기업들의 경영효율화를 위한 인력 감축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