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안 협의 '소극적' 태도 일관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과 임병용 전 GS건설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10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지난 4월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 안단테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관련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최지혜 기자 |
[더팩트ㅣ최지혜 기자] 붕괴사고로 입주가 지연된 인천 검단 아파트(AA13) 입주예정자의 보상안 테이블에 앉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소극적인 태도로 논의에 임하고 있다. LH는 단지 공급의 주체임에도 시공사인 GS건설보다 뒤로 한발 물러서 시공사보다 작은 보상규모를 제시해 업계의 눈총을 받는다.
입주를 앞둔 아파트가 무너졌다면 시공사와 시행사 중 어느 편의 책임이 더 무거울까. 올해 4월 지하 주차장이 무너져 새 집에 입주하지 못하게 된 검단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에 대한 피해 보상안이 나왔다. 단지를 공급한 LH와 시공사인 GS건설은 입주예정자들이 임시거처를 마련할 수 있도록 현금을 무이자로 대출해 주기로 했다. 또 중도금 대위변제와 지체보상금도 제공한다.
입주예정자협의회는 오는 24일 보상안 수용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이들은 당초 12월 새 집에 입주할 예정이었지만 붕괴사고 발생으로 향후 약 5년간의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종 보상안이 나온 가운데 책임분담 비중은 다소 GS건설 측으로 기울어진 모양새다. 이번 사고는 시공사가 전면 재시공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지난해 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와 대비되고 있다. 그러나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과 분양을 모두 맡았던 화정 아이파크와 달리 검단 아파트의 경우 시공사와 분양사업자가 다르다는 점에서 입주예정자에 대한 보상 분담이 이슈의 도마에 오른다.
GS건설과 LH의 보상안을 나눠 보면 양측의 분담 비중이 명확해진다. 금액 규모가 가장 큰 현금지원의 경우 GS건설이 LH보다 40% 이상 높은 금액을 제시했다. 현금은 입주예정자들의 재시공 기간의 주거 지원을 위해 무이자 대출하는 형태로 제공된다. 당장 12월 입주 예정이던 집에 이사할 수 없게 되면서 입주예정자들의 임시거처를 마련하기 위한 전세금 등이 필요한 것이다.
양측이 최종 제시한 총액은 전용면적 84㎡ 기준 1억4000만 원이다. GS건설은 이 가운데 9000만 원을 담당한다. LH는 이보다 절반가량 낮은 5000만 원을 내기로 했다. 물론 이는 이달 초 간담회에서 GS건설과 LH가 제시한 8000만 원, 4400만 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LH는 당시 전용 84㎡ 분양가의 계약금에 해당하는 금액만을 제시했고, 지난 21일에는 금액을 600만 원 높여 불렀다. 지원된 현금은 대출 형태로 제공돼 향후 양측이 돌려받게 된다. 양측의 순수 부담은 현금 지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자다.
이와 함께 LH는 입주예정자들에게 입주 지연에 따른 지체보상금을 줘야 한다. 이는 협상의 여지 없는 법 규정 사항이자 계약서에 명시된 조항이다. 민법 제398조 제1항(배상액의 예정)과 분양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을 따른다. 이에 따라 LH는 입주예정자들이 이미 납부한 분양대금에 연 8.5%의 고정이율로 입주 지체보상금을 산정해 전용면적 84㎡ 계약자 기준 5년간 약 9100만 원을 잔금에서 공제하기로 했다. 분양 주체는 LH이므로 계약서 상의 입주지연 책임도 시행사가 지게 되는 것이다.
입주예정자들이 요구해 왔던 중도금 대위변제의 경우 보상 주체가 불분명한 것이었다. 입주지연에 따라 중도금 대출기한이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추가 이자비용을 보상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단지는 계약금 10%, 1차 중도금 20%, 2차 중도금 20%, 잔금 50%로 분양됐다. 중도금은 각 세대 분양가의 40%에 해당하고, 이 대출로 발생하는 이자를 내는 것이 GS건설과 LH가 부담해야 하는 보상비용의 골자다. 당초 중도금은 LH가 입주예정자들로부터 납부받은 것이므로 대위변제도 LH가 제공해야 한다는 여론에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대위변제 역시 GS건설이 제공하기로 했다.
이한준 LH 사장이 지난 8월 1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
일련의 보상 비중 분담을 보면 LH는 협상 가능한 영역에서 최소한의 보상만을 제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법적 책임의 소지가 분명한 지체상금을 제외한 모든 보상 규모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이 같은 LH의 태도는 결국 '전면 재시공' 결정을 GS건설이 단독으로 냈기 때문이라는 논리에서 비롯됐다. GS건설은 지난 7월 사과문과 함께 단지를 전면 재시공하고 입주지연에 따른 모든 보상을 하겠다고 밝혔고, 이는 시행사인 LH와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시공사가 재시공 결정에 앞장섰다는 사실이 LH의 책임을 덜어주는 열쇠가 될 수는 없다. 각종 원인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 사고 관련 LH의 책임이 GS건설보다 결코 가벼울 수 없음을 일관적으로 나타냈다.
국토부의 원인조사에선 시공뿐 아니라 설계와 감리 등 전반적인 공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났다. 이와 함께 정기 안전점검 미실시, 안전관리비의 용도와 다른 사용 등 안전관리 미흡, 품질관리 계획 등 품질관리 미흡, 구조계산서와 설계도면의 불일치, 설계와 다른 시공 등도 지적됐다. GS건설은 해당 단지를 시공했지만, 설계와 감리는 LH와 계약한 별도 업체가 맡았다. 안전과 품질관리 역시 시행사의 소관으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LH건설이 공급한 단지에선 추가 부실시공 사례가 쏟아졌다. 지난달 나온 국토부의 2개월간의 전수조사 결과 무량판구조가 적용된 전국 민간아파트 378개 단지 중 철근이 누락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공급한 단지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와 달리 LH가 공급한 단지에선 22곳에서나 철근 누락이 발견됐다. LH가 공급한 121개 단지의 18%는 철근이 빠진 것이다.
LH는 7월 7일이 돼서야 사과문을 냈다. 7월 5일 국토부의 사고원인조사 결과 발표와 6일 GS건설의 전면 재시공 결정이 이어진 뒤 마지막으로 입장을 낸 것이다. LH는 이한준 사장 명의의 사과문에는 "입주 예정자들의 걱정과 아픔을 덜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모든 과정에서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확실하고 투명하게 조치하겠다"는 형식적인 내용만 담겼을 뿐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없었다. 이조차 LH가 이번 사고 책임의 최고 주체로서 적극 나서지 않으면서 사과의 진정성에도 의문부호가 달린다.
LH는 국민의 주거를 책임지는 최대규모 공기업이다. LH의 운영비는 국토부 예산으로 충당되고, 국토부의 곳간은 국민의 혈세로 채워진다. 이번 사고 관련 입주예정자들의 보상 테이블에 앉은 LH의 태도에선 매년 '전관예우', '땅 투기' 등 문제가 끊이지 않는 LH의 근본적인 운영 방식이 묻어난다. LH가 보여주기 식의 '혁신'과 '사과'만을 주장하고, 실질적인 국민의 주거에 있어서는 사기업 건설사인 GS건설보다도 책임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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