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3조 원 기대감 ↑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2015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을 맡았다. 이후 박철규 체제 이어 현재는 이준서 부사장이 이끌고 있다. 왼쪽부터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박철규 한섬 해외패션부문 사장·이준서 삼성물산 패션부문 부사장. /더팩트 DB·삼성물산 패션부문 |
[더팩트|이중삼 기자] 한 대기업 오너일가 차녀가 패션부문 사령탑에 앉아 3년 간 진두지휘하다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실적 정체가 회사를 떠난 주원인으로 지목됐는데 정확한 이유는 밝혀진 것이 없다. 당사도 알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후 회사는 변화를 꾀하기 위해 전문경영인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뜨뜻미지근한 실적을 기록한 탓인지 2년 뒤 자리에서 내려왔다. 다음으로 등판한 이 인물은 앞선 이들과 달랐다. 회사 창립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가하면 자체 브랜드 매출 성장세도 일궈냈다. 회사는 앞으로 신(新)명품 브랜드 발굴과 온라인 사업 확대에 중점을 둘 방침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이끈 이서현 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겸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 박철규 현 한섬 해외패션부문 사장 그리고 이준서 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부사장까지의 얘기다.
이서현 이사장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차녀다. 장남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장녀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다. 이 이사장은 서울예고와 파슨스디자인스쿨을 나와 2002년부터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제일모직 전무, 제일모직 부사장, 삼성물산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을 거쳐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는 경영에서 손을 떼고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겸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 이사장은 2015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이끌었는데 3년 간 실적이 저조한 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이 이사장이 재임 당시 삼성물산 패션부문 매출은 △1조8430억 원(2016년) △1조7495억 원(2017년) △1조7594억 원(2018년), 영업이익은 △-452억 원(2016년) △326억 원(2017년) △254억 원(2018년)을 기록했다. 언뜻 보면 외형 성장과 수익성 모두 상승 흐름을 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장직을 맡기 전 실적과 비교하면 잘한 게 아니다. 2014년 매출은 1조8509억 원, 영업이익은 560억 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2015년의 경우 매출이 1조7382억 원이었는데 2017년·2018년과 비교하면 크게 성장했다고 보기 어렵다.
당시 실적 저조에 원인 가운데 하나로 '에잇세컨즈'가 있었다. 에잇세컨즈는 이 이사장이 기획 단계부터 공들여 2012년 론칭한 브랜드다. 이 이사장은 에잇세컨즈를 2020년까지 매출 1조5000억 원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러나 에잇세컨즈는 목표치에 크게 다가가지 못하면서 패션부문 전체 매출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쳤다. 실제 삼성물산 패션부문 측은 2019년·2020년 등 코로나19 이전 에잇세컨즈 매출은 부진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개별 브랜드 실적 공개는 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당시 실적 저조라는 이유로 사장직에서 물러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했다. 이 이사장은 2018년 12월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를 통해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옮겼다. 특히 이 이사장이 물러나면서 삼성그룹이 패션사업을 아예 매각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기도 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더팩트> 취재진과 전화통화에서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으로 간 사실 이 외에는 알 수가 없다"고 짧게 답했다.
참고로 삼성물산은 삼성의 모기업으로 1938년 설립됐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통해 △건설 △상사 △패션 △리조트 △급식·식자재유통 △바이오 등 산업을 영위하고 있다. 패션부문 매출비중은 삼성물산 전체 4.6%이다. 상사부문으로 46.8%이며 건설부문 33.8%, 바이오부문 7.0%, 급식·식자재유통 6.0%, 리조트부문 1.8% 순으로 패션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 전문경영인 박철규 부사장 등판…2년 만에 '용퇴'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이 이사장이 물러난 뒤 전문경영인 체제를 앞세워 실적 반등에 나섰다. 2019년 박철규 상품총괄 부사장이 새로운 리더로 삼성물산 패션부문 수장에 오른 것이다. 박 부사장은 30여 년간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 근무한 패션계 '베테랑'이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89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제일모직 패션부문 수입사업부장 △제일모직 패션부문 전무 △삼성물산 패션부문 상품총괄 부사장 등을 거쳐 2019년 삼성물산 패션부문 부사장이 됐다. 현재는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패션전문기업 한섬에서 해외패션부문 사장직을 맡고 있다.
당시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기존 상품총괄 박 부사장이 패션부문장이 되면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글로벌 시대에 맞게 국내를 넘어서 글로벌 패션 회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전했다.
실제 박 부사장은 취임 이후 실적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전개했다. 남성복사업을 하나로 통합해 조직을 축소하고 대표 브랜드인 빈폴의 리뉴얼을 단행해 젊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등 사업 효율화를 꾀했다. 그러나 실적에선 능력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삼성물산 패션부문 매출은 △1조7321억 원(2019년) △1조5455억 원(2020년), 영업이익은 △322억 원(2019년) △-356억 원(2020년)을 기록했다. 업계에선 이 이사장처럼 박 부사장도 실적에 발목을 잡혀 용퇴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렇게 박 부사장은 연임 없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에잇세컨즈는 이서현 이사장이 기획 단계부터 공들여 2012년 론칭한 브랜드다. /이중삼 기자 |
◆ 이준서, 회사 창립 후 최대 매출 '리더십' 주목…'부' 떼고 사장 승진 여부 관심
2021년 1월 이준서 부사장이 삼성물산 패션부문에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이 부사장은 창립 이래 최대 실적 달성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결과적으로 앞선 두 인물과는 확연히 다른 리더십을 보여준 셈이다. 이 부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92년 제일모직에 입사했다. 이후 △삼성물산 패션부문 경영지원담당 △에잇세컨즈 사업부장, 전무 △삼성물산 패션부문 상해법인장 등을 거쳐 2021년 1월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령탑에 올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삼성물산 패션부문 매출은 △1조7668억 원(2021년) △2조11억 원(2022년), 영업이익은 △1003억 원(2021년) △1803억 원(2022년)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1조496억 원, 영업이익은 114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매출 9883억 원·1041억 원) 대비 613억 원, 104억 원 늘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회사 창립 후 처음으로 매출 '2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LF·신세계인터내셔날·한섬 등 경쟁사 가운데 연 매출 2조 원 달성은 첫 사례다. LF는 지난해 1조9685억 원 매출을 올렸고 한섬은 1조5422억 원, 신세계인터내셔날은 1조5538억 원을 기록했다.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에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전 브랜드 매출이 지난해 대비 두 자릿수 이상 신장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신명품(메종키츠네·르메르 등) 뿐만 아니라 빈폴과 남성·여성복, 에잇세컨즈 등 전 브랜드 매출이 지난해 대비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으로부터 받은 '에잇세컨즈·빈폴 매출 추이' 자료에 의하면 에잇세컨즈는 2021년의 경우 2020년 대비 매출이 30% 수준 늘었다. 2022년에는 2021년 대비 30% 가까이 신장했고 2023년 상반기도 상승곡선을 그렸다. 빈폴도 적게는 5%에서 많게는 20% 가까이 신장했다. 특히 매장 수도 현재 에잇세컨즈는 전국 71개, 빈폴(멘·레이디스·골프·액세서리) 200여 개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또 수년 간 이뤄진 브랜드 구조조정으로 체질 개선 작업에 나선 것도 매출 성장에 보탬을 준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부진한 브랜드를 하나씩 정리해갔다. 특히 자체 간판 브랜드로 키운 빈폴스포츠와 삼성그룹의 모태 사업인 직물사업도 접었는데 이런 과감한 구조조정 작업이 빛을 발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성장세는 브랜드 체질 개선 작업을 몇 년 간 해오면서 신명품 브랜드 등 MZ세대에 방점을 찍은 마케팅 전략이 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이런 추세라면 몇 년 안에 매출 3조 원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앞으로 비이커·10꼬르소 꼬모 등 편집숍을 중심으로 한 신명품 브랜드 지속 발굴·성장, 온라인 사업 확대 등에 나설 계획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삼성물산은 △상사 △건설 △패션 △리조트 부문 가운데 유일하게 패션부문만 부사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 연말 이준서 부사장의 사장 승진 여부도 관심이 쏠린다. 패션부문 제외하고 다른 사업부문은 대표이사 사장이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