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최초 디지털 손보사
'만년적자'에도 인력 보강·마케팅 강화
승계 구도 정리 분석엔 의견 분분
캐롯손보는 지난 2019년 5월 국내 업계 최초 디지털 손해보험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했다. 특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사진)의 야심작으로 업계의 기대를 모았다. /한화생명 |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한화그룹의 금융 계열사 중 하나인 디지털 손해보험사 캐롯손해보험이 출범 이후 만년 적자에 시달리며 그룹 내 아픈 손가락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캐롯손보의 적자 행진에도 한화는 오히려 인력을 보강하고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화가 캐롯손보 성장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이는 것을 두고 그룹 승계 구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대형 손보사들과 비교해 개발 인력 등 규모가 작은 캐롯손보가 승계 구도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는 시각도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캐롯손해보험은 올해 1분기 109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캐롯손보는 출범 이후 4년 연속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적자 규모는 해마다 늘었다. 출범 첫해인 2019년 91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이후 2020년에는 381억 원의 적자를 냈고 2021년에도 65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손실 규모는 795억 원에 달한다.
올해 1분기에는 지난해보다 적자 폭은 줄었으나 출범 후 4년이 되도록 적자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최대 주주인 한화손보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분위기다. 주력 상품인 미니보험인 특성상 수익성을 크게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지난해 9월 '구원투수'로 등판한 문효일 대표도 취임 1년째를 맞았지만 뚜렷한 실적 개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지난 5월에는 현대차그룹 광고계열사인 이노션과 한컴 등에서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로 일했던 배주영 씨를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선임하기도 했다.
캐롯손보는 최근에도 고급 기술 인력을 영입하고 있다. 캐롯손보는 지난달 7일 미국 실리콘밸리의 애플 본사에서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기계학습) 개발을 담당해 온 이진호 박사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 캐롯손보는 이진호 CTO 영입을 통해 데이터 기반의 상품 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기존 보험사와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캐롯손보는 최근 마케팅 분야에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7월에는 주력 상품인 '퍼마일자동차보험'의 새로운 광고 모델로 배우 고윤정 씨를 발탁하고, 8월부터 신규 광고를 TV와 유튜브, 디지털 채널 등을 통해 방영하고 있다.
디지털 손해보험사 캐롯손해보험이 출범 이후 만년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한화는 오히려 인력을 보강하고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캐롯손해보험 |
캐롯손보는 지난 2019년 5월 국내 업계 최초 디지털 손해보험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했다. 캐롯손보는 한화손해보험과 SK텔레콤, 현대자동차, 알토스벤처스, 스틱인베스트먼트 등이 합작해 만들어졌다. 출범 초기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이자 한화생명 최고디지털책임자(CDO)였던 김동원 사장의 야심작으로 업계의 기대를 모았다. 당시 김동원 사장은 젊은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여행·레저보험 등 소액단기보험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디지털 손해보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각에서는 한화가 적자에 허덕이는 캐롯손보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룹 승계 구도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화그룹이 장남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태양광과 방위산업,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 삼남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이 유통을 맡는 방향으로 승계 구도를 명확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동원 사장은 지난 2월 입사 9년여 만에 사장으로 승진해 최고글로벌책임자(CGO)로 선임되기도 했다. 한화그룹 내 '3세 경영'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캐롯손보가 빠른 시일 내 실적을 개선하고 성과를 내야 향후 김동원 사장이 그룹 내 금융부문을 완전하게 이끄는 승계 계획에 힘이 실릴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지난 7월 한화저축은행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 역시 승계 구도 정리를 위한 움직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동관 부회장이 관리하는 한화솔루션의 손자회사인 한화저축은행을 매각할 경우 승계 구도가 명확하게 정리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 캐롯손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승계 구도 정리를 위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면서 "경영 전략을 짤 때 지분 비율상으로는 한화손보가 대주주이긴 하지만 알토스나 티맵 모빌리티 등에도 주주가 있다. 의사 결정할 때도 당연히 의결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캐롯손보의 모회사는 54.6%의 지분을 가진 한화손해보험이다. 한화손보는 63.3%의 지분을 보유한 한화생명의 지배를 받는다. 캐롯손보와 한화손보를 포함해 한화투자증권, 한화자산운용 등 그룹 금융 계열사 지배 구조의 정점은 한화생명이다. 김동원 사장은 한화생명의 대주주인 한화 지분의 2.1%, 한화생명 지분의 0.03%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다만, 대형 손보사들과 비교해 개발 인력 등 규모가 작은 캐롯손보가 승계 구도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그룹 승계 구도와는 관계가 없어 보인다"며 "(캐롯손보가) 디지털 손해보험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사업 초기 꾸준히 자본과 인력을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 사업 초기인 만큼 흑자 전환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고, 중장기적인 큰호흡을 보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모가 작은 캐롯손보가 승계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 같다"면서 "오히려 마케팅보다 가격 할인 등 가격 경쟁력에 더 초점을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