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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 높던 에르메스·샤넬, 매출 상승세 꺾이자 뒤늦게 고객 편의 개선
입력: 2023.08.17 00:00 / 수정: 2023.08.17 11:25

샤넬 이어 에르메스도 현장 대기순번 폐지, 수요 감소 대응
명품계 하락세에도 시장 규모 여전…'유커', '따이공'도 기대


에르메스는 지난 13일 현장 대기 선착순 입장 시스템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우지수 기자
에르메스는 지난 13일 현장 대기 선착순 입장 시스템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우지수 기자

[더팩트|우지수 기자] 백화점을 이끌던 명품 매출 상승세와 함께 명품 업계의 높았던 콧대도 함께 꺾였다. 이들은 새벽녘부터 매장 앞에 대기하는 '오픈런' 고객이 줄자 이제서야 고객의 편의를 챙기며 입장 시스템을 손보기 시작했다. 샤넬에 이어 에르메스도 매장 개시 전에 고객 입장 순번을 매기는 '현장 대기' 시스템을 없앴다. 줄어든 수요에 방문 고객을 한 명이라도 늘리기 위해서다.

16일 <더팩트> 취재 결과 명품 소비가 올해부터 눈에 띄게 줄면서 백화점 명품관이 열기도 전인 새벽부터 줄을 서는 일명 오픈런 행렬도 지난해에 비해 뜸해진 모양새다. 지난달에는 샤넬이 매장이 영업을 시작한 후 방문하는 고객을 선착순으로 응대하겠다는 공지를 냈고 이어 지난 13일에는 에르메스가 전 매장에서 현장 대기를 없애고 온라인 접수 시스템으로 입장 순번을 정한다고 밝혔다.

샤넬 관계자는 "이번 공지는 명품 수요가 줄어 고객들이 새벽부터 매장 앞에서 대기하지 않도록 설명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에르메스 관계자는 "더 많은 고객이 매장을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한 선택"이라며 "팬데믹 기간 동안 제한된 인원만 응대해야 했던 시스템을 완화해 더 많은 고객이 에르메스 매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한 일시적 조치다. 온라인 접수 고객 응대가 마무리되면 이후에 매장으로 방문한 미접수 고객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니 더 '열린 매장'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명품업계는 '코로나 보복 소비'의 특혜를 톡톡히 봤다. 한국은 1인당 명품 소비 금액 1위라는 조사도 나올 정도로 명품시장의 다크호스로 꼽혔다. 백화점 3사(롯데·신세계·현대)의 매출 비중에서 명품이 30%를 차지하기도 했다. 산업통산자원부에 따르면 백화점 3사의 명품 매출은 △2020년 15.1% △2021년 37.9% △2022년 20.5%의 연간 성장률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는 2021년 대비 17.4%포인트(p)만큼 성장률이 감소했음에도 큰 폭으로 늘어난 수치라고 평가했다.

엔데믹 이후 명품 수요가 늘면서 서울 시내에선 매장 개장 전 입장 대기줄 일면 오픈런 행렬을 찾아볼 수 있었다. /더팩트DB
엔데믹 이후 명품 수요가 늘면서 서울 시내에선 매장 개장 전 입장 대기줄 일면 '오픈런' 행렬을 찾아볼 수 있었다. /더팩트DB

올해는 분위기가 반전됐다. 급격히 줄어든 명품 소비에 백화점 업계 실적도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롯데백화점은 2분기 영업이익 660억 원으로 지난해 2분기 대비 37% 줄었고 신세계백화점은은 24%가량 감소한 921억 원을 발표했다. 현대백화점 역시 영업이익 61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8% 하락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월 백화점 명품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7.2% 감소했고 이후 2월에서 6월까지 명품 매출 성장은 1~4%대를 맴돌았다. 그간 명품 브랜드의 가격대가 꾸준히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매출 축소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팬데믹 이후로 루이비통은 8차례, 샤넬은 6차례, 프라다는 6차례 이상 가격을 인상했다. 인상폭도 10%를 웃돌았다. 업계 관계자는 "물가가 오르는데 명품 가격은 더 오르니 구매를 고민하는 소비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하늘길이 열리면서 재개된 해외여행으로 소비 채널이 늘어난 것도 명품 매출 부진의 이유로 꼽힌다.

명품 열기가 식으면서 오픈런 행렬에 동참하는 소비자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최근 루이비통 매장에 들러 제품을 구매한 한 시민은 "1년 전만 해도 대기줄이 길어 기본 1시간은 기다렸다가 입장했는데 최근 찾았을 때는 대기줄 없이 바로 입장했다"며 "사실 요즘 명품 매장뿐 아니라 리셀 시장 열기도 식은 게 느껴진다. 국내 매장가격이 연이어 올라 해외 매장이 더 가격이 싼 경우도 생겨 한정품 오픈런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사라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다만 대표 명품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중 두 기업이 손님 맞이 시스템을 개편했다고 해서 다른 명품기업도 이 같은 흐름에 올라탈지는 미지수다. 최근 명품 소비 성장률이 꺾이긴 했지만 한국 시장은 여전히 아시아에서 외면할 수 없는 '알짜배기'다. 새벽부터 많은 사람이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려고 매장 앞에 몰리는 광경은 브랜드 가치를 대중에게 인식시키기에 여전히 효과적이다. 한 관광면세 전문가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와 보따리상인(따이공)이 국내 관광 시장으로 대거 돌아온다면 명품업계가 두 번째 열기를 되찾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손해경 인천재능대 호텔관광과 교수는 "지금도 명품계는 한 사람 당 구매 가능 수량을 정해놓고 판매하고 있다. 중국 고객이 몰려 한정 판매 제품들이 빨리 소진되고 이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난다면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 사전 대기 시스템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기업들이 오픈런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지금 시장 수요에서는 새벽부터 기다려야 하는 시스템이 홍보 효과나 직원 피로도 측면에서 불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부에서 내렸다고 본다.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index@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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