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문가 "소비 양극화 심해"
지난 4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 지침 완화 후 처음으로 맞는 명절인 이번 추석에 '가성비'와 '프리미엄' 중 어떤 제품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지 관심이 쏠린다. /남용희 기자 |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지난해보다 열흘가량 빠른 추석(9월 10일)을 앞두고 주요 유통업체들이 추석 선물 세트 예약판매에 이어 본 판매에 들어갔다. 지난 4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 지침 완화 후 처음으로 맞는 명절인데다 고물가가 계속되며 실속 있는 선물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대형마트에서는 5만 원 이하의 실속 상품 등을 선보이고 있다. 반면 백화점은 실용성 있는 프리미엄 제품 등을 내세우며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소비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진단하고 있으며 올해 '가성비'와 '프리미엄' 중 어떤 제품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지 관심이 쏠린다.
◆ 대형마트 5만 원 미만 '실속 상품'으로 매출↑vs 백화점 '프리미엄'으로 소비자 공략
롯데마트에 따르면 지난 8월 1일부터 28일까지 추석 선물 세트 사전 예약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 이 중 5만 원 미만 선물 세트는 전년 대비 35% 늘었다. 현재 롯데마트는 사과와 배 선물 세트를 3만 원 이하에 선보이고 있으며 사전 판매 실적은 전년 대비 각각 300%, 100% 이상 늘었다. 롯데마트는 5만 원 미만 선물 세트를 지난해보다 약 10% 늘려 전체 상품의 절반가량 이상으로 구성했다.
이마트 역시 같은 기간 추석 선물 세트 사전 예약 매출이 전년 대비 47% 신장했다. 이 가운데 10만 원 미만 선물 세트 예약 비중은 90%다. 올해 처음 선보인 선물 세트 공동구매는 펀딩 시작 사흘 만에 완판됐다.
홈플러스도 추석 선물 세트 사전예약 판매를 시작한 지난 7월 21일부터 8월 21일까지 한 달간 매출이 전년 대비 18% 상승했다. 5만 원 이하 선물 세트 매출은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는 5만 원 이하 선물 세트를 전체 선물 세트 중 약 80%로 구성했다.
백화점업계는 지난 8월 19~23일부터 순차적으로 선물 세트 본 판매를 시작했다. 백화점 3사는 고급, 친환경 등의 상품을 중심으로 작년보다 물량을 대거 확대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8월 19일부터 진행하는 본 판매에서 프리미엄 선물 물량을 작년보다 40% 이상 늘렸다. 작년에 첫선을 보인 300만 원짜리 한우 선물 세트가 대표적이다. 롯데백화점은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를 위해 지속 가능한 양식어업 국제 인증을 획득했거나 스마트 양식장에서 항생제 없이 안전하게 키운 수산물 선물 세트, 동물복지 한우, 비건 간편식 선물 세트 등을 판매한다. 또한 10만 원대의 홍삼, 한우, 과일·견과류 선물 세트를 판매한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8월 22일부터 오는 9일까지 본 판매에 들어갔으며 100만 원 이상 고가 선물 세트 물량을 작년보다 20% 늘렸다. 지난해 해당 제품군 매출이 전년 대비 45% 증가한 점을 반영했다. 특히 한우 선물 세트를 역대 최대 물량인 9만5000세트 가량 선보이며 한우 선물 세트 중 100만 원 이상 초프리미엄 물량은 작년보다 50% 확대했다. 사과·배와 함께 프리미엄 디저트 선물 세트 물량도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렸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8월 22일부터 작년 추석보다 20% 늘린 선물 세트 45만여 개를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반응이 좋았던 이색 과일 세트 물량 비중을 30%에서 50%로 확대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지난 8월 23일부터 오는 9일까지 진행하는 본 판매에서 가치소비 선물 세트를 선보인다. 해당 제품은 △노 플라스틱 패키지 선물 세트 △동물복지 돈육 세트 △탄소 중립 인증 와이너리 '코노수르 와인 세트' 등이다.
특히 백화점에서는 올해 추석 선물로 스마트워치 등 스마트 기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뉴시니어(new senior·노년층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부모 세대가 늘어나면서 명절 선물로 각광받는 상품도 변화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추석 선물 세트 판매 기간이었던 8월 1일부터 29일까지 스마트워치·스마트밴드·무선이어폰 등 웨어러블(착용형) 기기 매출은 지난해 추석 선물 판매 기간 대비 48.1% 증가했다. 품목별로는 스마트워치 매출이 지난해보다 58.3% 늘었고, 스마트밴드와 무선이어폰 매출은 각각 45.6%와 51.3% 증가했다.
백화점업계는 8월 19~23일부터 순차적으로 선물 세트 본 판매를 시작했으며 백화점 3사는 고급, 친환경 등의 상품을 중심으로 작년보다 물량을 대거 확대했다. /현대백화점 제공 |
◆ 일부 소비자 "3만 원에서 최대 5만 원 정도가 적당"…유통업계는 의견 엇갈려
일부 소비자들은 '추석에 받는 선물 세트 가격으로 얼마가 적당한가'를 묻는 <더팩트> 취재진에 "3만~5만 원이 적당하다"고 답했다. 20대 이 모 씨는 "추석 패키지라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상품은 받을 때는 기분이 좋은데 (과일 상품 등은) 버려지거나 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양과 개수가 효율적인 선물 세트가 실용적"이라고 말했다.
지인과 가족에게 소비하는 가격이 다르다는 답변도 있었으며, 마트에서 구매하지 않고 모바일 최저가를 비교해 구매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30대 정 모 씨는 "지인용으로는 3~5만 원, 가족용은 10~15만 원을 지출한다"고 말했으며, 20대 박 모 씨는 "선물하고 싶은 키워드를 모바일로 검색해 해당 제품에 적당한 가격대를 골라 구매한다"고 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고물가로 인해 명절 선물을 주는 데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50대 오 모 씨는 "특별한 선물이 아닌 명절마다 주는 선물 세트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5만 원이 넘어가면 부담스럽다고 느낀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8월 2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74(2020=100)로 작년 같은 달보다 6.3% 올라 23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원화 가치 급락으로 인해 물가가 가파르게 올랐던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지난 6월 소비자물가는 6% 올라 2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3%대에 진입한 뒤 올해 3월(4.1%), 4월(4.8%), 5월(5.4%) 등을 기록하며 상승 폭이 더 가팔라지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가성비 선물 세트를 찾는 소비자가 늘 것이라는 의견과 아직 소비자들의 보복 소비가 이어지고 있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코로나19에 따른 거리두기 강화로 귀성길을 포기하는 소비자들이 많아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대신 프리미엄급 선물 세트를 보내는 수요가 높았다"며 "올해는 상대적으로 고향길에 오르는 고객이 늘 것으로 예상되고, 지속적으로 치솟는 물가 이슈로 가성비 선물 세트를 찾는 고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해 업계에서는 가성비 선물 세트 구색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지만 아직은 소비자들의 보복 소비가 나타나고 있다"며 "실속을 갖춘 프리미엄 상품의 수요가 늘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지난 명절엔 고가 선물 인기…전문가 "코로나19 이후 양극화 심해"
이번 추석은 지난 4월 코로나19 방역 지침 완화 후 처음으로 맞는 명절로,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비대면 명절을 보내며 고가 선물 세트의 인기가 높았다. 당시 유통업계는 '온라인 전용' 상품 등을 강화하고 '라이브 커머스 방송', 모바일·온라인 '선물하기' '안심 배송' 등 비대면 서비스에 주력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설에는 명절을 앞두고 정부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농축수산품 선물 한도를 1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상향하면서 대형마트들은 앞다퉈 프리미엄 선물 세트를 내놓았으며, 10만 원 이상 프리미엄 선물 세트가 강세를 보였다. 이마트가 지난해 12월 16일부터 47일간 진행한 설 선물 세트 판매 실적을 분석한 결과, 작년 설보다 매출이 7.7%가량 증가했다. 10만 원 이상 20만 원 미만 가격대의 선물 세트는 지난 설보다 22.8% 매출이 늘었고, 20만 원 이상 제품은 20.4% 잘 팔렸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소비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진단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백화점은 고가품 위주로 판매를 하고 마트는 중저가의 가성비 높은 선물 세트를 많이 판매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양극화가 더 심화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가 인상이나 경기가 안 좋은 것에 영향을 받는 계층도 있지만 상관없는 계층도 있다"며 "전반적으로는 백화점 프리미엄급 선물 세트보다는 가성비를 토대로 한 마트 선물 세트가 수량으로만 봤을 때 훨씬 많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