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에스프레소 바' 인기에 SPC, GS25도 나서
한 고객이 1층 에스프레소 바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최근 에스프레소에 설탕 한두 숟가락을 넣어서 털어 마시고 나가는 형태의 카페가 확산하고 있다. /김미루 인턴기자 |
[더팩트ㅣ김미루 인턴기자] 카페 문화에 미숙하던 시절, 에스프레소는 어쩌다 실수로 시키는 음료에 불과했다. 아메리카노보다 저렴한 가격의 커피가 메뉴 제일 윗줄에 자리하니 눈길이 향했지만, 막상 시켰을 때는 처음 맛보는 사약 같은 쓴맛에 물을 벌컥벌컥 마셔야 했다. 누군가에게는 어색한 에스프레소가 최근 젊은 세대에게 사랑받고 있다. 요즘 '에스프레소 바'가 곳곳에서 보이는 이유다.
<더팩트> 취재진은 지난 22일 오후 3시 서울 양재동 파스쿠찌 에스프레소 바를 찾았다. 20대쯤 돼 보이는 검은 양복의 남자가 들어와 에스프레소 세트를 시켰다. 일반 에스프레소 한 잔과 목을 축일 탄산수, 에스프레소에 부드러운 휘핑크림이 올라간 '콘 파나'를 받아 들었다. 4500원에 탁구공만 한 크기의 음료 석 잔이 나왔다. 남자는 10분 남짓 빠르게 카페인을 충전하고 자리를 떴다. 이 남성 외에도 한 시간 동안 5명이 더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어로 '빠르다'는 뜻이다. 고온 고압으로 빠르게 뽑아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니 양이 적고 진하다. 여기에 물이나 얼음을 곁들이면 아메리카노다. 미국인이 즐겨 먹는다.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는 관광객이 아닌 이상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는다. 대신 에스프레소가 대중적이다.
이런 나폴리식 판매 형태가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으로 번질까. 유현준 건축가의 말처럼 한국에서 카페 사업은 커피를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5000원을 받고 두세 시간 정도 공간을 빌려주는 임대 사업으로 정착했다. 학생들이 카페를 독서실처럼 사용하며 '카공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에스프레소 두세 잔을 시켜 먹은 뒤 잔을 쌓아 올려 찍는 사진이 인기다. /김미루 인턴기자 |
이러한 트랜드 속에서 에스프레소 바를 내세운 틈새시장이 등장했다. 에스프레소 바 프랜차이즈 오우야가 지난 2020년 9월 합정에 개점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만 해방촌, 종로, 마곡 세 곳을 개점하며 점포를 늘린 것이 단적인 사례다.
서울 논현동 카페 델 꼬또네도 지난해 12월 개점했다. 높은 바 의자가 여섯 개뿐인 이 매장은 정오가 지나면 근처 직장인들로 바글바글하다. 바로 근처에 스타벅스와 폴바셋 등 대형 프랜차이즈가 즐비해 있지만, 경쟁력이 있다. 2평 남짓한 매장에 평일 방문객만 70명가량이다. 5분 만에 먹고 나가는 고객이 다수다. 아침 출근길이나 저녁 퇴근길에 들러 '원 샷' 하는 직장인도 쉽게 볼 수 있다.
원두에 자신 있는 업체 입장에서 에스프레소 바는 운영하기 좋은 아이템이다. 서울 상암동 일디오가 대표적이다. 2010년부터 원두 공급 업체로 이름을 알린 일디오는 지난해 10월 1층을 에스프레소 바 형태로 운영하는 카페를 열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강민재 바리스타는 "주변 상권에서 흔치 않은 콘셉트이기도 하고 원두에 자신이 있었다"며 "고객들이 금방 마시고 나가다 보니 높은 회전율도 고려됐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에스프레소 바 유행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카페에 오래 머물기 꺼려지는 와중에 에스프레소 바에 들르면 빠르게 카페인 섭취만 하고 갈 수 있어 인기가 좋다는 이야기다.
해외여행이 제한되는 상황에 이국적인 문화를 즐기려는 욕구가 충족됐다는 점도 한몫했다. 실제로 감염병 확산 이후 개점한 에스프레소 바들은 이런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조원진 커피 칼럼니스트는 "2017년 개점한 에스프레소 바 리사르 약수점과 달리 코로나19 확산 이후인 지난해 오픈한 청담점은 이국적인 인테리어를 눈에 띄게 활용했다"고 말했다.
편의점 GS25는 카페25에 에스프레소 전용 잔을 출시했다. 출시와 동시에 에스프레소 메뉴를 기계에 써 붙였다. /김미루 인턴기자 |
늘어나는 인기를 증명하듯 편의점 GS25는 지난 21일 카페25에 에스프레소 전용 잔을 출시했다. 기존에도 샷 추가 메뉴를 누르면 적은 용량의 커피를 내려 마실 수는 있었지만, 전용 잔이 없어서 아메리카노 큰 잔을 활용해야 했던 탓이다. 출시와 동시에 추출량을 변화시키고 에스프레소 메뉴를 기계에 써 붙였다.
GS리테일 관계자는 "합정, 강남 등 2030 세대가 찾는 주요 상권에 '에스프레소 바'가 확산한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GS25에 따르면 주요 온라인 사이트에서 커피 관련 단어 30개 중에 에스프레소 언급 횟수는 2019년 10위에서 2021년 3위까지 올랐다.
대기업에서도 에스프레소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 SPC 파스쿠찌는 대기업 최초로 본사 직영점에 에스프레소 바를 도입해 관심을 모았다. 다만 아직 가맹점에 적용하지는 않았다. SPC 관계자는 "본사 직영점이라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다"면서도 "가맹점에 에스프레소 바를 도입하려면 수익성이 먼저 입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바리스타들 사이에서는 에스프레소 대중화를 예견하고 있다. 2008년부터 성장을 시작한 스페셜티 커피 산업이 2017년을 기점으로 성숙하면서, 바리스타들은 커피의 '기본'인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표를 공유했다. 2020년부터는 스타 바리스타인 김사홍 씨를 주축으로 새로운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행사도 열렸다. 조원진 칼럼니스트는 "커피 애호가들 중심으로 에스프레소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며 "이 같은 흐름이 산업 판도를 바꿀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