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녹십자그룹은 허일섭(오른쪽 사진) 녹십자홀딩스 회장과 그의 조카 허은철 GC녹십자 사장,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사장과 함께 '3촌 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더팩트 DB, GC녹십자 |
경영권 분쟁 불씨 해소 못한 녹십자
[더팩트ㅣ장병문 기자] 올해도 국내 굴지의 제약기업 GC녹십자를 향하는 시선이 불안하다. GC녹십자그룹은 '3촌(村)'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경영권 분쟁을 일으킬 만한 요인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흔을 앞둔 허일섭(69) 녹십자홀딩스 회장의 지분 향방이 경영권 분쟁의 뇌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GC녹십자그룹은 지난해부터 고 허영섭 GC녹십자 선대회장의 두 아들 허은철(51) GC녹십자 대표이사 사장과 허용준(49)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이 이끌어가고 있다. 형인 허은철 사장이 핵심 계열사를 맡고 있으며, 동생 허용준 사장은 숙부인 허일섭 회장과 함께 지주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허은철, 허용준 사장이 형제 경영 체제를 확고하게 다지고 안정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한다. 허은철 사장이 지난 2015년 사장에 오른데 이어 동생 허용준 사장도 지난해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하면서다. 반면 위태위태하다는 시선도 공존한다. 숙부인 허일섭 회장의 지배력이 조카들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허일섭 회장이 향후 어떤 그림을 그리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지가 관건이다. 허일섭 회장은 슬하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자녀 가운데 장남 허진성(39) GC녹십자홀딩스 성장전략실장이 계열사와 지주사를 오가며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허일섭 회장은 녹십자홀딩스의 최대주주로 지분 12.16%(2021년 12월 기준)를 들고 있다. 그의 아내 최영아 씨가 0.33%, 장남 허진성 실장이 0.68%, 장녀 허진영 씨가 0.27%, 차남 허진훈 씨가 0.64%를 보유하고 있다. 허일섭 회장 일가의 지분은 14.08%다. 녹십자홀딩스는 GC녹십자 지분 50.06%를 소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반면 허은철 사장과 허용준 사장의 녹십자홀딩스 지분은 각각 2.60%, 2.91%로 허일섭 회장 일가와 큰 차이를 보인다. 대신 목암생명과학연구소(8.73%)와 목암과학장학재단(2.10%), 미래나눔재단(4.38%) 등이 허은철, 허용준 형제의 우군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허은철·허용준 사장의 부친인 고 허영섭 회장이 사망 전 녹십자홀딩스와 녹십자 주식 각각 30만주, 20만주를 연구소와 재단에 기부해서다.
현재 허은철 사장이 목암과학장학재단 이사장을, 허용준 사장이 미래나눔재단 이사장을, 허일섭 회장이 목암생명과학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향후 그룹이 허은철, 허용준 사장의 두 형제 경영 체제가 될지, 허일섭 회장의 아들 허진성 실장과 함께 4촌 경영 체제가 될지 뒷말이 무성하다. 그룹의 경영권 흐름의 향방은 허일섭 회장의 은퇴 시점에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69세인 허일섭 회장은 일흔을 앞둔 고령인 데다가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녹십자홀딩스는 허일섭 회장의 은퇴에 관련해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녹십자홀딩스 관계자는 향후 경영권 승계에서 대해서 "이사회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짧게 답했다.
녹십자홀딩스는 분쟁 없이 매끄럽게 경영권을 승계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은 오너들간 합의를 통해 경영권을 승계하는 경우가 있다.
두산그룹과 GS그룹, LS그룹 등은 사촌 경영이 정착된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오너일가 구성원들이 지분을 쪼개 가지고 있다.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대주주가 없다는 것이다. 지배적인 오너가 없어 집단 경영 체제를 선택했다. 공식 또는 비공식 '가족 회의'를 통해 경영권 승계와 같은 그룹의 중대사를 결정하고 있다. 가족간 합의로 결정된 룰에 따라 갈등을 최소화하고 있다.
반면 회사를 나누는 기업도 있다. GC녹십자그룹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형제회사인 한일시멘트와 분리됐다. 고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는 한일시멘트와 녹십자그룹을 일궜다. 허채경 창업주는 장남 허정섭과 3남 허동섭, 4남 허남섭에게는 한일시멘트를 승계했고 2남 허영섭과 5남 허일섭에게 녹십자를 물려줬다. 허채경 창업주는 건자재와 제약이라는 전혀 다른 두 사업체를 나누었지만 GC녹십자그룹의 경우 제약바이오 산업에 집중돼 있어 그룹을 나누기에는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많은 기업들이 가족 경영 형태로 기업을 이끌어왔지만 최근에는 전문경영인을 두는 기업도 늘고있다"며 "오너의 소유와 경영 참여를 분리하는 것도 분쟁을 막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jangb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