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 최종 문턱을 넘었다. /더팩트 DB |
신청 1년 만에 中 공정당국 승인…최태원 '측면 지원' 조명
[더팩트|한예주 기자] 미국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를 앞두고 막바지 문턱을 넘은 SK하이닉스가 그간 D램(DRAM)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경쟁력을 살리고, 명실상부한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SK하이닉스는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 격인 중국의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으로부터 인텔 낸드 및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 인수에 대한 합병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PCle·SATA 엔터프라이즈급 SSD 제품을 자국 내 시장에 부당한 가격으로 공급해선 안 된다는 등의 6개 조건을 달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SK하이닉스 측은 이 조건들이 일반적인 합병 승인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제시되는 사항이라, 달성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인텔과 총 90억 달러(약 10조7000억 원) 규모의 사업 인수 계약을 맺은 이후 한국을 포함한 8개 국가의 반독점 담당 기관에 기업결합 심사를 요청했다. 7곳에선 심사를 마쳤지만 중국의 공정당국은 신청을 받은 후 1년이 지나도록 결론을 내지 않았다.
때문에 업계 일각에선 그동안 중국 당국이 해외 기업들의 인수합병(M&A)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던 점을 고려해 SK하이닉스의 인수 작업이 불발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반도체 패권을 두고 최근 미·중 갈등이 더욱 심화된 점도 불안 요소였다. 특히,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반입이 미국의 반대로 막혔다는 보도 등이 나오면서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가 불발될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최근 나온 매그나칩반도체 인수 무산도 승인 결정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이런 우려와 달리 계획대로 연내 승인이 날 수 있었던 데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중국 정·재계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최 회장은 베이징포럼·상하이포럼·남경포럼 등을 매년 개최했고 보아오포럼에도 오랜 기간 참여하면서 중국 정부는 물론 정·재계 네트워크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의 연내 승인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네트워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로 디램과 낸드 반도체 양날개를 달게 될 것을 ㅗ보인다. /더팩트 DB |
특히, 지난 9월에는 서진우 부회장을 중국사업총괄로 임명한 뒤 중국으로 보내 우시·다롄 정부 주요 관계자를 만나 중앙정부에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인수 승인 필요성을 설득하게 했다. 지난 3월 SK하이닉스 대표이사로 취임한 박정호 부회장도 M&A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인텔 낸드 인수팀을 진두지휘했다. 이를 통해 7개국의 조기 승인을 완료했고, 중국의 마지막 승인까지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인수 작업이 장기간 지연됐지만 끝내 불발되진 않았고, 올해를 넘기지 않고 합병이 승인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 "SK하이닉스는 중국 당국에 이번 인수가 한국과 중국 양국에 도움이 되는 사안이라는 점을 들며 승인을 적극적으로 요청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승인으로 SK하이닉스는 인수를 위한 실무 절차만 앞두게 됐다. 우선 70억 달러(약 8조3000억 원)를 지급해 인텔의 SSD 사업과 중국 다롄 공장 자산을 확보할 예정이다. 이후 2025년 3월 20억 달러(약 2조4000억 원)를 지급해 낸드 웨이퍼 설계·생산 관련 지적재산권(IP)과 다롄 공장 운영 인력 등을 넘겨받아 인수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번 인수가 마무리되면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사업은 대폭 강화될 전망이다. 메모리반도체는 크게 D램과 낸드플래시 제품으로 나뉘는데, 그동안 SK하이닉스는 D램에 비해 낸드플래시 사업이 다소 열세였다. 실제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글로벌 D램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매출액 기준 점유율은 27.2%로, 삼성전자(44.0%)에 이어 부동의 글로벌 2위다. 반면 낸드플래시는 13.5%로 3위에 그쳤다. 1위인 삼성전자(34.5%)와의 격차도 크다.
SK하이닉스의 연간 매출액을 살펴봐도 D램의 비중은 70%로 매우 높은 반면, 낸드플래시는 23%에 불과할 정도로 매출이 D램에 편중돼 있었다. 이런 기형적인 사업 구조는 D램 가격이 움직일 때마다 SK하이닉스의 전체 실적이 널뛰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번 인수가 마무리되면 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19.4%까지 커진다. 기존 2위인 일본의 키옥시아(19.3%)와 비슷하거나 제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낸드플래시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기업용 SSD 시장의 경우, 현재 세계 2위인 인텔(29.6%)과 SK하이닉스(7.1%)가 합치면 삼성전자(34.1%)를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설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인수가 작업이 일부 마무리 되면 미국에 본사를 둔 신설 회사를 기반으로 낸드 사업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8월 로버트 크룩 인텔 부사장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미국에 본사를 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할 것"이라면서 자신이 그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들어 미국 등 전 세계 각국에 낸드 판매 등을 담당할 10개 이상의 법인을 설립해둔 상태다.
SK하이닉스 측은 "중국 당국의 심사 승인을 환영한다"며 "남은 인수 절차를 잘 진행해 회사의 낸드와 SSD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hyj@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