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 DB그룹 회장이 다음 달 1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다. /DB그룹 제공 |
지난해 영업이익 1조 시대 열어
[더팩트│황원영 기자] 김남호 DB그룹 회장이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아버지인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수장 자리에 오르게 된 김 회장은 짧지 않은 1년을 보냈다.
김남호 회장은 취임 후 DB손해보험과 DB금융투자 등 금융 계열사의 안정적인 수익을 발판삼아 반도체 사업 확장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이어졌지만 최초로 그룹 영업이익 1조 시대를 열며 의미 있는 성과를 기록했다. 지난 5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정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 집단)에 포함되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2015년 준대기업으로 밀려난 지 6년 만이다.
올해는 김 회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유례없는 저금리와 업황 악화로 그룹 핵심 계열사인 DB손보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금융에 치우친 기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디지털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성장궤도에 오른 DB하이텍을 안착 시켜 동부그룹 시절 영광을 되찾는 게 최종 과제다.
◆ 김남호 회장, 금융 입지 다지고 IT 키웠다
30일 DB그룹에 따르면 김 회장은 다음 달 1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앞서 부친 김 전 회장이 2017년 9월 전격 사임한 후, 장남인 김 회장은 지난해 7월 DB그룹 회장으로 선임돼 50년 만에 2세 경영 시대를 본격화했다.
김 전 회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그룹 이미지가 하락한 상황에서 김 회장은 신뢰회복과 경영정상화 등의 숙제를 안았다.
김 회장 취임 당시 시장은 주가 상승으로 화답했다. 오너 리스크에서 벗어난 데다 2분기 호실적이 기대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DB손보 주가는 김 회장 취임 후 보름 만에 11.90% 상승했으며, 같은 기간 DB하이텍과 DB금융투자 등의 주가 역시 각각 10.40%, 4.75% 증가했다.
김 회장은 이 같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DB그룹 체질 개선에 본격 착수했다. 그는 취임 후 "금융과 IT, IT와 반도체 간의 다양한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금융업을 제외한 새로운 수익 마련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DB손보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온 김정남 당시 대표이사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며 경영 안정을 꾀하고, 본인은 수익다각화에 나섰다.
이 같은 전략은 금융계열사의 실적 증대로 이어졌다. DB손보는 올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DB손보의 1분기 당기순이익은 1902억 원으로 전년 동기(1376억 원)보다 38.2% 늘어났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1786억 원보다 48.7% 늘어난 2655억 원, 매출액(원수보험료)은 8.1% 증가한 3조6412억 원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DB금융투자는 순이익 448억 원을 거뒀다. 지난해 1분기 대비 1300.0% 급등한 규모다. 영업이익도 591억 원으로 1213% 증가했다. 특히 파생상품부문이 실적 반등을 견인했다. 파생상품 부문 영업이익은 253억 원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42%를 차지했다. 김 회장이 2015년부터 3년간 동부금융연구소에서 쌓은 역량도 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올해 1분기 DB손해보험은 당기순이익 1902억 원, 영업이익 2655억 원을 각각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DB손해보험 제공 |
반면, 금융그룹에 치우친 포트폴리오는 약점이 됐다. 지난해 말 DB그룹 총자산 71조7952억 원 중 금융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69조4138억 원에 이른다.
김 회장은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반도체·IT에 집중하며 미래 먹거리 확보에 나섰다. 그는 취임 직후 당시 최창식 DB하이텍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며 IT 반도체 부문에 힘을 실어줬다.
DB하이텍은 8인치 공정을 주력으로 시스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업체다.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8074억 원)을 냈다. 올해 1분기 매출 역시 분기 기준 역대 최고(2437억 원) 수준이다. 연간 기준 매출 1조 원을 달성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김 회장은 올해 3월 DB아이앤씨 의사회 의장에 오르면서 IT 부문 강화에 주력했다. DB아이앤씨는 DB하이텍 지분 12.42%를 보유하고 있다. DB하이텍은 DB메탈 지분 27.83%를 갖고 있어 사실상 DB그룹 제조부문의 실질적 지주사로 꼽힌다. 지난 1분기에는 108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 옛 동부그룹 영광 되찾나
이 같은 경영 성과에는 김 회장의 오랜 경력이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회장은 2009년 1월 동부제철 차장으로 입사한 뒤 동부팜한농 등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실무경험을 쌓았다. 오랫동안 경영수업을 받은 덕에 흔들림 없이 그룹을 이끌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40대 젊은 총수답게 안팎으로 적극적인 소통경영을 이룬 점도 유효했다. 그는 취임 당시 "현장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고객과 소비자의 목소리를 소중히 여기는 경영자가 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DB아이엔씨 데이터센터, DB금융투자 여의도 본사, DB하이텍 상우공장 현장을 잇달아 방문하며 임직원과 대면했다. 올해에는 SBS골프 방송에 출연해 DB그룹 제35회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를 응원하는 등 현장 경영을 이어갔다.
취임 1년간 다진 밑바탕을 거름 삼아 동부그룹 시절의 영광을 되찾는 게 과제다. 동부그룹은 부친이 1969년 창업 이후 동부건설을 발판으로 금융·철강·반도체·농업 산업 전반을 아우르며 2000년 10대 그룹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그룹 모태기업인 동부건설을 비롯해 동부제철, 동부팜한농, 동부익스프레스 등을 잇달아 매각한 뒤 금융그룹으로 체질 개선에 나섰다. 지난해 자산 기준으로 재계 39위에 머물러 있다.
DB하이텍으로 변화의 씨앗을 심은 만큼 '김남호호'가 순항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금융 쏠림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올해 금융 분야의 경우 저성장, 저금리, 고령화 등의 삼중고에 핀테크 업체들이 경쟁에 가세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김 회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임직원들에게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변화를 통한 성장 기반 구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미래 성과 창출에 적합한 문화와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DB그룹의 성장 동력인 금융계열사를 다짐과 동시에 IT계열사 강화로 수익 개선에 나서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DB그룹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IT와 반도체 사업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며 "각 사는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한편 회사의 역량과 미래 트렌드를 반영한 신사업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신사업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화라는 메가 트렌드에 뒤떨어지지 않고 발맞춰나갈 수 있도록 치밀하게 검토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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