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면세업계가 면세품을 한시적으로 내국인에게 팔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한예주 기자 |
면세점, 보세물품 판매 규정 완화 요청…유통사 입점 브랜드와의 조율 필요
[더팩트|한예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면세업계가 수조 원에 달하는 재고품을 한시적으로 내국인에게 팔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사실상 수요가 전무한 상황에서 막대하게 쌓인 재고물품을 한시적으로나마 시중에 유통해 숨통을 틔워달라는 게 면세업계의 주장이지만, 유통 채널로 거론되는 백화점 아울렛 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정부의 허가가 떨어진다 해도 입점 브랜드들과 조율 문제 등 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17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최근 롯데·신라·신세계 등 국내 주요 면세점사업자와 한국면세점협회는 관세청과 회의를 열고 보세물품 판매 규정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업계는 이 자리에서 외산 재고품에 한해 통관을 거쳐 내국인에게도 팔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통상 면세품은 면세혜택을 받아 시중에 유통될 수 없다. 또 재고품을 백화점과 아웃렛 등에서는 할인을 적용해 판매를 촉진하는 것과 달리 면세품은 소각 폐기해야 한다.
면세업계는 관세청에 국민들이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매할 수 있고, 불필요한 폐기처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이 같은 요구가 허용된다면 면세품이 일반 유통망에 팔리는 최초의 사례가 된다.
현재 면세업계는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한 상황이다. 한국면세점협회 등에 따르면 면세점의 2월 매출은 1조1025억 원으로 전달(2조247억 원) 대비 반 토막 났다. 3월에는 매출이 또 그 절반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의 경우 4월 매출이 지난해 일평균 대비 98% 하락한 상황이다.
매출이 빠지자 재고품은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쌓이고 있다. 면세점에서 각 브랜드 판매사원들이 판매하는 물건들은 모두 면세점 사업자들이 브랜드들로부터 직접 구매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면세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롯데의 재고자산은 1조 원이 넘어섰고, 신라와 신세계는 각 8000억 원, 6000억 원 수준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요청을 했다"면서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전혀 나지 않는 상황에서 재고품이라도 소진할 수 있게 된다면 피해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매채널로 언급되고 있는 백화점에서는 입점 브랜드들과의 조율 등을 문제로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더팩트 DB |
면세품의 내국인 판매처로는 백화점과 아울렛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매장 형태나 인력 운용 등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내수 통관 허용을 요청한 것은 맞지만 아직 백화점 등 국내 유통 채널과 상의한 단계는 아니다"라며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백화점은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다. 면세품을 판매하게 되면 국내 백화점들은 집객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이미 백화점에 입점해있는 명품 브랜드들과의 조율 등 까다로운 문제가 남아있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백화점업계 한 관계자는 "백화점에 입점한 명품 브랜드들은 재고 판매를 반기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싫어할 것"이라며 "면세품 판매가 허용된다면 백화점은 안 되고, 아울렛에서 판매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유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매출에 대한 수수료 측정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백화점이 적극적으로 나설 만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현재 관세청은 면세업계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난 2017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당시 면세업계의 내국인 판매 허용 요구를 거절한 사례가 있고, 내부 검토에 다소 시간이 소요돼 빠른 시일 내에 조치가 이뤄지긴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hyj@tf.co.kr